헌팅포차나 클럽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뒤, 며칠 지나 경찰서에서 강간 고소가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는 사건이 있습니다. 당사자로서는 합의된 만남이었다고 믿고 있던 터라 충격이 크지만, 이 유형은 감정적으로 대응할수록 불리해지는 전형적인 사건군입니다. 무엇이 다투어지는지부터 냉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들의 중심 쟁점은 대부분 술입니다. 상대방이 술에 취해 있었다면 강간이 아니라 준강간 —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간음 — 의 구성이 검토되는데, 대법원은 이른바 블랙아웃(마신 술로 기억이 끊긴 상태)과 패싱아웃(의식 자체를 잃은 상태)을 구별합니다. 기억을 못 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심신상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구별의 요체입니다.
실제 무죄가 선고된 사건들을 보면 판단 요소가 분명합니다. 피해자가 부축 없이 스스로 걸어 들어갔는지, 대리운전을 직접 부르고 기사와 대화했는지, 편의점에서 물건을 골라 본인 카드로 결제했는지, 상황에 맞는 대답을 했는지 같은 사정이 CCTV와 블랙박스, 결제 기록으로 확인되면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의 의사능력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가 어느 쪽으로 쌓여 있는지가 사건의 실질을 결정합니다.
책임의 또 한 축은 인식입니다. 준강간은 상대가 그런 상태였다는 것만으로 성립하지 않고, 그 상태를 알면서 이용했다는 점까지 증명되어야 합니다. 외관상 멀쩡해 보였고 실제로 대화와 이동, 의사표현이 가능했던 사안에서 법원이 인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예들이 있습니다. 거꾸로 유죄로 간 사건들에서는 만취한 상대를 뒤따라가 부축해 데려가는 모습이 영상과 이동 기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투는 지점이 어디인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수사기관이 진술을 평가하는 방식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은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는지, 객관적 정황과 부합하는지를 종합해 신빙성을 판단합니다. 피의자 쪽에서 보면 같은 기준이 자기 진술에도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처음 조사에서 감정적으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거나, 불리해 보이는 부분을 감추려다 번복하게 되면, 그 번복 자체가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정황으로 평가됩니다. 첫 진술 전의 준비가 결과의 큰 부분을 좌우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록의 보전입니다. 만남 전후의 메시지와 통화 기록, 술자리 결제 내역, 이동 경로, 함께 있던 일행의 연락처를 원본 그대로 확보해야 합니다. 업소와 숙박업소의 CCTV는 보존기간이 짧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므로, 고소 사실을 안 즉시 CCTV 보존 요청부터 해 두는 것이 이 유형에서 가장 시급한 조치입니다.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분명합니다. 상대방에게 연락해 따지거나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2차 가해나 증거인멸 시도로 평가되어 구속 사유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행동입니다.
억울함이 크면 무고로 맞고소부터 하고 싶어지지만, 무고죄는 신고 내용이 허위임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성립하는 죄라 무혐의 결과만으로 곧바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맞고소는 본 사건의 방어가 정리된 뒤에 시점과 근거를 갖추어 판단할 문제입니다. 지금은 기록을 지키고, 첫 진술의 방향을 정하는 것 — 이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함께 읽을 글 — 무혐의로 끝난 뒤 고소인을 무고로 문제 삼을 수 있는지는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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