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인데요, 조사받으실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경찰 출석요구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절차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죄명이 무엇이든 이 단계의 규칙은 같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출석요구는 임의수사여서 그 자체로 강제력이 없습니다. 날짜를 통보받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19조)은 조사 일시·장소를 피의자와 협의하도록 하고, 피의자가 출석일시의 연기를 요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조정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정이 맞지 않거나 준비가 필요하면 사유를 밝히고 연기를 요청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으면 체포영장 청구의 요건이 됩니다(제200조의2 제1항). 연기와 불응은 다릅니다. 연락을 끊거나 잠적하는 것이 아니라, 출석 의사를 분명히 남기면서 날짜를 조정하는 것이 안전한 경계선입니다.
출석 전에 알아낼 수 있는 것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수사준칙 제19조는 출석요구를 할 때 피의사실의 요지 등 출석요구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적은 출석요구서를 보내도록 하고, 전화로 요구하는 경우에도 같은 내용을 고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화만 받고 죄명도 모른 채 출석 날짜부터 잡는 경우가 많은데, 죄명과 피의사실의 요지는 물어볼 권리가 있는 정보입니다. 어떤 사건인지,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고소 사건인지 인지 사건인지를 확인한 뒤에 날짜를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고소장 자체의 열람·등사는 별도 절차와 제한이 있어 사건마다 범위가 다르지만, 적어도 무엇으로 조사받는지 모르는 상태로 출석할 이유는 없습니다.
참고인이라는 말에 안심하는 것은 이릅니다. 대법원은 형식적인 입건 절차 전이라도 수사기관이 조사대상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아 실질적으로 수사를 개시한 때에는 이미 피의자의 지위가 인정되고, 진술 내용이 자신의 피의사실에 관한 것이어서 실질이 피의자신문이라면 진술을 듣기 전에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하며, 이를 위반해 작성된 조서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2도8698 판결). 참고인 조사 도중 질문이 내 행위를 추궁하는 방향으로 바뀌면, 그 자리에서 피의자 전환 여부와 권리 고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조사 중단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조사실에 들어가면 두 개의 권리가 뼈대입니다. 하나는 진술거부권입니다. 신문 전에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진술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지받아야 하고(제244조의3), 이 고지가 부실하면 그 조서 자체의 증거능력이 문제 됩니다. 다른 하나는 변호인 참여권입니다. 신청이 있으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변호인을 신문에 참여시켜야 하는데(제243조의2), 대법원은 그 '정당한 사유'를 변호인이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기밀을 누설할 염려가 있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로 좁게 해석하고(대법원 2008. 9. 12. 자 2008모793 결정), 변호인이 부당한 신문방법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참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합니다(대법원 2020. 3. 17. 자 2015모2357 결정). 변호인은 피의자 옆에서 조언하고 메모할 수 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마지막 관문이 남습니다. 조서 열람입니다. 피의자신문조서는 열람하게 하거나 읽어 들려주어야 하고, 진술한 대로 기재되지 않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증감·변경을 청구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조서에 추가 기재되어야 합니다(제244조). 몇 시간 조사받은 피로로 대충 넘기는 분들이 많은데, 재판에서 다투게 되는 것은 내 기억이 아니라 그 조서의 문장입니다. "~한 사실이 있지요"라는 질문에 한 애매한 답변이 자백처럼 정리되어 있지 않은지, 말한 취지와 다른 요약이 없는지 문장 단위로 읽고, 고쳐지지 않으면 서명 전에 이의 내용을 조서에 남겨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서명·날인은 조서 내용에 동의한다는 표시이므로, 수정 요구가 반영되기 전에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리하면 전화를 받은 날 할 일은 세 가지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죄명과 피의사실 요지를 확인하고, 준비에 필요한 시간만큼 일정을 조정하는 것. 조사는 준비된 날에 받는 것이지, 잡혀 준 날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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