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빈 변호사입니다.
"이사 나가는 날, 집주인이 도배·장판 값이라며 보증금에서 훌쩍 빼겠다고 합니다." "이게 다 제가 내야 하는 비용이 맞나요?"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할 시점에 오히려 이런 통보를 받으면, 계산이 맞는 건지 그냥 우기는 건지부터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뗄 수 있는 것은 밀린 차임과 정당한 원상회복비용 정도로 한정됩니다. 이걸 모르고 넘어가면 정당하지 않은 보증금 공제를 그대로 확정시켜 받아야 할 돈을 그냥 놓치게 되고, 반대로 다퉈야 할 부분을 미루면 시간이 지날수록 입증도 어려워집니다.
이 글에서는 임대인이 공제할 수 있는 범위, 통상적인 마모는 왜 임차인 부담이 아닌지, 과다·부당 공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입증부터 반환청구까지 이어지는 절차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집주인이 도배·장판 비용이라며 보증금에서 200만원 넘게 뺐다고 합니다. 이거 다 내야 하는 게 맞나요?"
1. 임대인이 공제할 수 있는 것 — 미납차임과 정당한 원상회복
임대차 보증금은 계약이 끝나면 전액 반환이 원칙입니다. 임대인이 여기서 뺄 수 있는 항목은 무제한이 아니라 정해져 있습니다.
- 밀린 차임(월세) — 아직 정산되지 않은 금액만 공제할 수 있고, 이미 냈거나 정산이 끝난 부분까지 다시 빼는 경우가 실무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 정당한 원상회복비용 — 임차인의 고의·과실로 실제 손상이 발생한 부분에 한해서만 인정되고, 손상과 무관한 항목까지 끼워 넣으면 그만큼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 계약서상 특약 비용 — 특약으로 명시된 항목이라도 문구가 애매하면 범위를 두고 다시 다퉈야 하므로, 특약 내용과 적용 범위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 실제 발생분 초과 금액 제외 — 실제로 든 비용을 넘어서는 금액은 아무리 명목이 그럴듯해도 공제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즉 "원상회복"이라는 이름만 붙었다고 전부 정당한 공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 비용이 임차인의 책임에 해당하는지, 금액이 실제 발생분에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문제는 이사 나가는 당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집주인이 불러주는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 자리에서 항목을 하나하나 따지지 못하고 서명부터 하면, 나중에 다시 다투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2. 통상적인 마모는 임차인 부담이 아닙니다
여기서 많은 분쟁이 발생합니다.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마모(통상손모)는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원상회복 비용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흔적까지 임차인에게 물릴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리입니다.
- 못 자국·압정 자국 — 액자나 시계를 걸며 생기는 정도의 경미한 흔적은 생활하면서 불가피하게 남는 것이어서, 이를 이유로 도배 전체 비용을 물릴 수는 없습니다
- 자연 마모된 벽지·장판 — 시간이 흐르며 색이 바래거나 낡는 것은 임차인의 잘못이 아니라 세월이 만든 결과이므로, 교체 비용을 임차인에게 전가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 가구 배치로 인한 눌림 자국 — 침대나 소파를 놓았던 자리에 남는 눌림은 정상적인 사용의 결과일 뿐이어서, 원상회복 대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 고의·과실 파손만 부담 — 통상적인 마모가 아니라 부주의나 고의로 생긴 파손이어야만 비로소 임차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반면 반려동물로 인한 훼손, 무단 개조·시공, 명백한 부주의로 인한 파손 등은 임차인이 부담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결국 핵심은 '누구의 잘못으로 생긴 손상인가'이지, 단순히 '집에 흔적이 남았는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구분이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집주인이 "어쨌든 새로 도배는 해야 하니까"라는 식으로 통상 마모까지 뭉뚱그려 청구하는 경우가 흔하고, 이 경계를 혼자 정확히 그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분쟁을 키우는 원인이 됩니다.
3. 과다·부당 공제, 어떻게 대응할까
임대인이 도배·장판 전체 교체비, 근거 불명확한 청소비, 통상 마모분까지 한데 묶어 공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공제는 항목별로 뜯어보면 다툴 여지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공제 항목별 명목 확인 — "원상회복비"처럼 한데 묶인 금액을 항목별로 하나씩 나눠 어떤 명목으로 얼마가 잡혔는지부터 확인해야 다툴 부분이 보입니다
- 견적서·영수증 등 근거 요구 — 실제로 그만큼의 비용이 들었다는 자료를 요구하면, 근거 없이 부풀려진 금액은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통상 마모분 구분 — 청구 금액 안에 임차인이 부담할 필요가 없는 자연 마모 비용이 섞여 있는지 항목별로 걸러내야 합니다
- 입주 당시 상태와 비교 — 처음 들어올 때의 상태와 비교해 과다 청구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원래부터 있던 하자까지 떠안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소액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하기엔, 이런 공제가 몇 백만원 단위로 쌓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정당한 근거 없이 뺀 금액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다만 이 확인 작업을 이사 나가는 당일, 짐을 옮기며 동시에 해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항목을 제대로 따지지 못한 채 공제에 동의하는 서명부터 하고 나면, 이후에 근거를 다시 요구하기가 훨씬 까다로워집니다.
4. 입증·협상·반환청구까지
과다 공제를 다투려면 결국 입증이 관건입니다. 입주 당시 사진, 계약서 특약사항, 하자 상태를 기록해 둔 자료가 있다면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 입주·퇴거 당시 사진과 기록 확보 — 처음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상태를 사진으로 남겨두면, 어떤 손상이 원래 있었고 어떤 손상이 새로 생겼는지를 가르는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 공제 항목별 근거와 금액 정리 — 상대가 제시한 명목과 금액을 항목별로 다시 정리해두면, 어느 부분이 과다한지 한눈에 드러납니다
- 협상 우선, 불응 시 내용증명 — 먼저 근거를 제시하며 협상을 시도하고,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내용증명으로 정식 반환청구 의사를 남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 지급명령·소송까지 검토 — 그래도 반환되지 않으면 다툼 가능성에 따라 지급명령이나 보증금반환청구소송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근거를 갖추고 정확한 금액을 짚어 청구하면 협상 단계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다 공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내 사안에서 어디까지가 정당한 공제인지부터 확인해 보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어느 항목까지가 통상 마모이고 어느 항목부터가 실제 부담 대상인지, 이 경계를 혼자 판단해서 협상에 나섰다가 오히려 상대의 논리에 밀려 정당한 금액까지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근거를 정리하는 단계에서부터 점검받아두는 것이 결과를 지키는 길입니다. 공제 명목이 서너 개만 겹쳐도 금액은 수백만 원 단위로 벌어지는 만큼, 상대가 보내온 정산 내역을 그대로 수긍하기 전에 항목별로 따져볼 여지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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