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대응의 필요성
과거의 사건은 입체적이고 동적(動的)으로 전개되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현재 그 사건을 인식하는 것은 추론이나 재구성과 같은 사유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어 다분히 평면적이고 정적(靜的)인 작업입니다. 또한 이들은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아니어서 이미 주어져 있는 법을 해석하여 구체적 사건에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을 원님처럼 실정법을 벗어나 오로지 정의나 형평의 관점에서만 사건을 다룰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향후 형사사건으로 수사나 재판을 임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수사나 재판이 갖는 이러한 특성을 감안하여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하에서 언급하는 7가지 사항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체크를 해야 합니다.
체크리스트 7개항
[1] 벌금형이 가능한지
형사범죄와 형벌에 관한 규정은 “사람을 살해한 자(A)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B).”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형법 제250조 제1항), A 부분이 범죄구성요건, B 부분이 형벌(법정형)에 관한 규정입니다.
이때 문제되는 범죄사실에 적용되는 형벌규정에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벌금형도 규정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성폭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의한 통신매체이용음란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 경우 벌금형 처벌도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으면 수사 단계에서 기소유예가 나오지 않는 이상 최대한의 선처가 이루어져도 집행유예만 가능하게 됩니다(선고유예도 가능하나 요건이 훨씬 까다로움).
형벌규정의 확인을 위해서는 그 전제로 적용될 법률을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형법 외에도 다양한 특별형법이 존재하고, 특별형법에서는 형법보다 법정형이 가중되어 있고 고소제한의 특례, 심신미약 감경의 특례,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 등이 규정되어 있어 그 요건에 해당하면 우선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성폭법, 아청법(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가중된 형벌규정을 두고 있어 유의해야 하고, 교통범죄의 경우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경제범죄의 경우 특경법(특정경제범죄의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사이버 명예훼손의 경우 사이버 모욕과 달리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비방할 목적’과 같은 요건상의 차이는 존재).
재판 단계에서는 공소장에 죄명과 적용법조(적용되는 법률 조항)가 기재되어 있어 이를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수사 단계에서는 법률전문가와 상담하여 적용되는 법률조항을 머저 파악해야 합니다. 참고로, 미수의 경우 미수범 처벌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되는 것이어서(형법 제29조), 미수범 처벌 규정이 있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수범은 감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형법 제26조 제2항), 이를 실무상 ‘미수감경’이라 합니다.
[2] 집행유예가 가능한지
집행유예 가능성은 다른 사례에 비추어 징역형 선고가 예상되는 경우에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당 범죄사실에 대해 집행유예가 가능한지는 다양한 사례 경험이나 판례 분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전문적 영역이지만, 징역형의 법정형이 ‘몇 년 이상’으로 된 형벌규정의 경우에는 구조적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형(금고형 포함)을 선고할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법정형 자체가 1회 감경(법정형의 1/2)이 있더라도(작량감경) 3년 이하로 선고할 수 없는 중범죄의 경우, 예컨대 법정형이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추가로 감경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집행유예 가능성이 봉쇄됩니다. 1회 감경하더라도 3년 6월(3년 초과)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징역형의 법정형이 ‘몇 년 이하’로 된 경우에는 집행유예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3] 친고죄,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지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의 경우에는 모두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기소되지 않고) 바로 종결될 수 있게 됩니다. 설사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는 유죄 여부를 불문하고 사건이 그 상태에서 바로 종결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32조).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는 실무상 ‘합의’의 유무로 판단되고, 이를 증명하는 서류로서 ‘합의서’가 제출됩니다.
이들 범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합의서는 양형을 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나, 이들 범죄의 경우 합의가 있게 되면 유무죄 판단 없이 사건이 바로 종결되고 범죄전력으로 남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참고로, 성폭력범죄(디지털 성범죄 포함)는 현재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님을 유의해야 합니다.
[4] 어떠한 부수처분이 존재하는지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 사회봉사명령 또는 수강명령과 같은 부수처분이 따를 수 있고, 보호관찰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폭력범죄로 유죄판결 또는 약식명령을 받으면 대부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어 이러한 등록정보가 공개ㆍ고지되도록 하고 있습니다(성폭법 제47조, 아청법 제49조, 제50조 등). 다만, 이러한 공개ㆍ고지는 등록대상자의 불이익이 상당히 크므로 실무상 제한적으로 선고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재범예방에 필요한 수강명령(집행유예의 경우) 또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벌금형, 약식명령), 그리고 사회봉사명령 또는 보호관찰이 부수처분으로 선고될 수 있는데, 그 요건은 형법과 다르게 별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신상정보 등록은 성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는 불이익이 따르는 것인데, 경미한 성범죄로 약식기소가 되거나 벌금형 선고를 받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참고로, 부수처분 외에 다른 법률에 따른 추가적인 불이익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성폭력범죄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공무원 결격사유에 해당하므로 공직 임용에 일정 기간 제한을 받게 됩니다.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는 사실상 공직 임용이 어렵습니다(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6호의3, 제6호의4). 그리고 공무원 임용 후 재직 중 성폭력범죄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아 확정되는 경우, 성폭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아 확정된 경우는 당연퇴직 사유로 하고 있습니다(국가공무원법 제69조 제1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현재 공무원 신분을 갖고 있다면 사건 대응을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5] 어떠한 증거가 존재할 수 있는지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심증만으로 유죄 인정을 할 수 없는 것이 형사재판입니다. 반면에 부인하기 어려운 과학적 증거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단지 직접증거(범죄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부인을 하게 되면 양형상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직접 경험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가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나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에는 고소하는 측이나 고소를 당하는 측 모두 가해자나 범죄사실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존재하는지가 관건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이버 수사 또는 포렌식을 통해 어떤 증거가 확인될 수 있는지를 추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의 존재 가능성은 전문적 영역에 해당하여 혼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법률전문가와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유리한 양형요소, 불리한 양형요소의 파악
형사사건은 무죄를 다투는 경우도 상당수 있지만, 전체적인 비율로 봐서는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처벌을 가볍게 받기 위해 수사나 재판에 임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양형(量刑), 즉 형을 정하는 데 유리한 요소와 불리한 요소를 파악해야 합니다. 감각적으로 인식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 요소를 빠뜨리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발간된 양형기준을 반드시 참조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도 법률전문가와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7] 범죄혐의 부인 또는 자백에 따른 계획 수립
마지막으로, 범죄혐의를 부인하는 경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감안할 때 그 실익이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사실을 자백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나 재판도 사람이 한다는 점, 많은 형사사건이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의 평가에 의해 사실 인정이 이루어진다는 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떤 돌발적 상황으로 증거의 어떠한 부분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 자신의 기억도 왜곡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결과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법리도 추상적인 경우가 많아서 이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는 경우 그 결론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계속 범죄혐의를 부인하였음에도 범죄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와 범죄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경우 각각의 결과가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수사나 재판을 받는 로드맵이 달라지게 되므로 계획의 수립 역시 달리해야 합니다. 물론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만, 자신의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직업, 향후 계획 등을 다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차 변호사 관련 경력]
법무법인 세영 파트너 변호사
사법시험 47회, 사법연수원 37기
고려대 법학과 졸업
경북대 과학수사학석사(과학수사, 법의학, 보건의료 전공) / 경북대 법학박사(행정법 전공)
국선전담변호사(성폭력/국민참여재판 전담 재판부)
경찰서 민원상담 변호사, 경찰서 민원조정위원회 외부위원(현)
군사법원 국선변호인(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현), 계명문화대 경찰행정과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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