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이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 모두가 피해를 입자마자 곧장 충격과 분노를 느껴 가해자에게 욕을 퍼붓거나, 가해자의 연락을 차단하거나, 즉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맡은 데이트폭력이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의뢰인들은 그런 경우가 오히려 더 적었습니다.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움과 동시에 가해자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관계, 현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현상유지하고싶은 양가감정을 느끼면서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망설임 끝에 나중에 고소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의뢰인들이 주로 범하는 오류는 일단 가해자를 고소하여놓고, 자신이 피해를 당한 직후 고소를 하지 않았다는 점 또는 상대방의 범행 이후에도 상대방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거나, 상대방과 한때 연인이었다는 점 등이 자신의 약점이 되어, 상대방이 무죄가 나오거나 상대방의 처벌이 약해질까봐 두려운 나머지 수사기관에 자신이 겪은 사실을 앞뒤가 맞지 않게 진술하거나, 있었던 사실을 숨기고 말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상대방의 관련 증거 제시로 인해 진술과 다른 사정이 밝혀지게 하는 등 의뢰인 자신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려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하고 나서야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것입니다.

성폭력 범죄는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구조화된 성을 기반으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므로, 피해자라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게 되기 전까지는 피해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고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피해상황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편 누구든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하였더라도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을 거부할 수 있고, 피해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이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나이, 성별, 지능이나 성정, 사회적 지위와 가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인지 여부는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상황에 기초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러한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섣불리 경험칙에 어긋난다거나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즉 이제는 사회적인 인식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수긍할 수 없는 반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만 사로잡혀있는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복잡한 심경이 얽혀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충분히 공고화되어있으니 더이상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내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수사절차나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로서 해야할 것은, 자신이 겪은 일과 그때의 감정을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게 진술하되, 당시에는 왜 그렇게 생각하였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와 관련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설득력있고 법리 구성에 맞게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피해 사실을 일관되고 합리적으로 주장하여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게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고소대리를 의뢰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해자는 상대방과의 사이에서 겪은 일 중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기억해내거나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다가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다수이며, 형사 법리적으로 어떤 점이 중요한 지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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