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에선 총으로 살해해도 정당방위라고? - 절도범 상해치사 사건(2)
지난 포스팅에서 주거지에 무단침입한 도둑을 폭행해서 사망하게 한 사건의 내용과 그를 바탕으로 한 정당방위의 인정 요건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습니다.
잠깐 정리를 해보자면,
B가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 A의 집에 침입했다가 A에게 발각이 되었는데, A는 B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 차례 구타했고 이로 인해 쓰러진 B가 도망을 가려고 하자 발로 뒤통수를 수 회 밟거나 차고, 뒤이어 거실에 있던 빨래건조대와 본인이 차고 있던 벨트로 계속해서 B를 폭행하여 결국 B가 사망한 사건에서, A의 변호인은 A의 행동이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된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법원에서는 최초의 폭행은 방위의사로 한 것으로 정당방위로 볼 수도 있으나, 이어진 폭행은 공격 의사로 한 행동이고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과도한 것이므로 정당방위나 과잉방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다만 B의 범행이 사건의 발단이 된 점이나 A가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등을 유리한 요소로 참작하여 A에게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었죠.

그런데 이에 대해서 “서양에서는 집에 침입하면 총으로 쏴서 살해해도 정당방위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 그 사건 재판에도 비슷한 내용이 주장되었기 때문에 과연 외국에서는 정당방위를 어떻게 인정하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외국의 입법례는 이 사건의 법원 판결문을 기반으로 말씀 드립니다.
우리나라가 정당방위 인정에 인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외국에서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정당방위를 폭 넓게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정당방위 넓게 인정하는 국가가 어디일 것 같으세요?
먼저 가장 정당방위가 폭넓게 인정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국가는 미국인데요, 아마도 “서양에서는 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총을 쏘아도 정당방위다.”라는 말은 미국을 생각하고 한 말일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비교적 경미한 침해에 대해서 치명적인 반격의 여지를 인정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말한, 맨손으로 덤비는 사람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 적어도 주거의 영역에서는 허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미국에서도 침입자가 도망 중인 경우처럼 치명적인 공격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응징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즉 방위의사가 아닌 명백한 공격의사로 한 행위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 영상과 같이 이미 저항할 의사가 없이 도망을 시도하는 사람을 무차별 폭행하는 경우에는 미국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한편 미국법의 기초가 된, 미국과 법체계가 유사한 영국에서는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물리력을 행사하여 상대가 사망한 경우에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치명적인 공격이 허용되려면 먼저 ‘후퇴할 의무(duty of retreat)’를 이행해야 합니다. 즉 피할 수 있으면 먼저 피해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사람의 신체나 생명에 대한 것이 아닌 재물에 대한 정당방위는 극히 엄격한 요건에서만 인정됩니다.
프랑스에서는 방위 수단과 침해의 중대성 사이에 불균형이 있으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재산 범죄를 저지하기 위하여 살인을 하는 경우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고, 방위의 수단이 범죄의 중대성에 비례하고 추구한 목적에 엄격하게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경미한 법익을 보호라기 위해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맨손으로 공격하는 자에 대해서 칼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 경우와 같이 자신에 대한 침해 위험에 비해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정당방위 인정에 엄격한 건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범행을 이어가려는 의사 없이 도망을 가려는 자에 대해서 공격의사를 가지고 상당한 정도를 넘어서는 폭행을 하는 경우에는 외국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방위를 넓게 인정하는 게 결코 좋은 건 아니에요. 정당방위를 넓게 인정하자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범죄자의 인권이 아닌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인데요, “니가 먼저 때린 거니까 나는 반격해도 괜찮아.”라는 걸 너무 강조하면 사적인 제재나 복수를 허용하는 결과가 되어 버릴 수 있으니까요. 마트에서 빵 하나 훔치다 잡힌 사람 흠씬 두드려 패고, 누가 나 밀쳤다고 흉기 휘두르고 이런 게 허용되면 안 되겠죠.
그래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 선진국에서도 정당방위가 무한정 인정되지 않도록 규제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당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얘기한 사건에서도 법원이 최초 폭행은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적극적인 공격행위가 아니라 방위행위의 범위 내라면 설령 상대방의 피해가 훨씬 크더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당한 침해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피하는 게 우선이겠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요.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