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일사부재리' 원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형사 사법체계에서 아주 중요한 원칙인데요, 오늘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대해서 가상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A, B, C는 만나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다음날 C는 술집에서 멀지 않은 인근 공터에서 여러 차례 칼에 찔려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술집 입구를 촬영하는 CCTV에는 A와 C가 함께 술집을 나섰고 B는 두 사람보다 약 30분 정도 먼저 술집을 나서는 장면이 찍혀있었습니다. 술집을 나온 이후 세 사람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CCTV가 없었고요.
그런데 술집 주인이 A와 C가 심하게 말다툼을 하였고 가게를 나설 때에도 서로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면서 서로 욕설을 하였다는 목격자 진술을 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경찰에서는 A를 용의자로 보고 A의 차량을 수색했는데 A의 차량에서는 C의 혈흔이 묻은 칼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경찰은 A는 평소 C가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C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도 확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 범행의 동기 등 모든 것이 A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고 자신은 C에게 몇 마디 욕설만 하고 헤어졌다는 A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A를 C에 대한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납니다. B가 피고인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실은 C가 A뿐 아니라 자신도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먼저 집에 돌아가는 척 하고 술집을 나와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A와 C가 헤어지자 C를 사망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살해했다고 자백을 한 것이지요. 범행 도구 역시 지문을 닦은 후 C의 집으로 찾아가 주차되어 있는 차안에 몰래 넣어두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A가 억울하게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백을 한다고 한 것이지요. 특히 B는 C가 칼에 찔린 횟수나 위치 등 공개되지 않은 정보까지 너무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였고, 법원에서는 A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후 A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고 검찰은 B를 살인 혐의로 기소합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또 다시 의외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A가 C를 살해하는 동영상이 증거로 제출된 것입니다. 우연히 인근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블랙박스에 A가 사건현장에서 C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명백한 증거로 인해서 B에게는 무죄가 선고됩니다.
이와 같이 명백한 증거가 나온 경우에, A는 다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게 될까요?
물론 B는 살인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위증죄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위증죄의 법정형 범위 안에서 무거운 형을 선고 받은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위증죄에 대해서는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할 수 없으므로 B는 5년을 넘는 형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A는, B에게 위증을 시켰다면 위증교사로 최대 5년 형을 받을 수 있지만, 시킨 게 아니라 B가 알아서 주도적으로 한 경우라면 처벌을 받지 않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최대 2년 6개월의 형을 받습니다. 살인죄로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 되는 것은 바로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인데요,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 다시 재판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때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제가 다른 글에서 몇번 말씀 드린 것처럼 형사법은 지금까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재심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거나 무거운 형을 받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만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검사가 무죄를 유죄로 바꾸어 달라거나 처벌을 세게 해달라는 재심을 청구할 수는 없어요. 다만 재심에는 아주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심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제가 위에서 이야기한 A의 사례는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극단적인 예이고요, 저 예만 보고 일사부재리 원칙이 악법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참고로 일사부재리 원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에도 '이중위험금지 원칙'이라고 해서 수정헌법 제5조에 동일한 범죄로 거듭 기소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사부재리 원칙은 왜 있는 것일까요?
일사부재리 원칙은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여론이 바뀌었다고 무죄를 받았던 사람을 다시 유죄로 만들거나, 형을 다 마친 사람을 다시 교도소에 보내는 걸 허용하면 안 되겠죠.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권력을 잡은 쪽이 다른 쪽을 탄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원칙이 없다면 검사가, 정확히는 국가권력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평생 재판만 받게 할 수 도 있습니다. 이미 재판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 계속해서 다시 기소를 하는 거죠.
또 제대로 된 수사를 하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일단 재판에 넘겨서 유죄 나오면 좋고 아니면 다시 수사해서 다른 증거 찾아서 다시 기소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를 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수사를 해야만 억울하게 처벌 받은 사람이 생기거나 진범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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