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인 A와 B는 함께 빈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칩니다. 특수절도죄입니다. 이후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치밀한 계획 덕분에 경찰에서는 범행을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A는 모든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경찰의 압박에 겁을 먹은 B는 자신들의 범행을 상세히 자백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① 둘 다 절도로 처벌 받지만 B가 더 가벼운 벌을 받는다.
② 둘 다 절도로 처벌 받지만 A가 더 가벼운 벌을 받는다.
③ A만 처벌 받는다.
④ B만 처벌 받는다.
⑤ 둘 다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흔히 법조인들은 이를 ‘자백보강법칙’이라고 부르는데요, 쉽게 말해서 증거가 자백밖에 없으면 무죄 판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납득이 안 되시죠? 범행을 모두 자백했는데, 자백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다고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형사법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 침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무리 많은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범도 나치 정권이 ‘합법적’으로 살해한 사람의 숫자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지요.

전에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진 약촌오거리 사건, ‘소년들’로 만들어진 삼례 나라슈퍼 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8번째 사건 등은 모두 경찰의 강압적인 조사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한 사건들이었지요.
이와 같이 국가 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여러 가지 제도 중 하나가 자백이 있더라도 보강증거가 없으면 유죄 판결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자백보강법칙입니다.
물론 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언론의 자유가 크게 확대된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수십 년이 지나서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국민들은 고문과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에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고문은 아디더라도, 사건을 하다 보면 요즘에도 경찰관들이 “그냥 인정하면 벌금 내고 끝나요.”라든지 “별 거 아닌 데 부인하면 오히려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와 같은 회유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이 가능하다면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조사실에 앉아서 자백만 끌어내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발로 뛰어서 증거 수집해고 과학수사 하라는 것을 강제하는 것도 자백보강법칙의 의의입니다.
그럼 앞서 본 A와 B는 어떻게 될까요?
B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지만 자백 외에 이를 보강할 다른 증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B는 자백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A는 자백을 하지 않았지만, A의 유죄를 입증할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B의 진술입니다. B의 자백은 자신에게는 자백이지만 A에 대해서는 자백이 아닌 목격자 내지 증인의 진술에 해당하죠. 그렇다면 B의 자백이 신빙성이 있다면 이것을 증거로 A에게 유죄 판결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무상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백을 보강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강증거는 유죄 입증을 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지 않고, 그저 B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대부분은 보강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공범 중 한 명이 자백을 하면 다른 한 명도 이를 알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 유죄판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