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어릴 적에, 친구들끼리 아옹다옹하다가 진짜로 기분이 상해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게 되는 경우 안경을 쓴 친구 중에는 "때려봐. 안경 쓴 사람 얼굴 때리면 살인미수다!"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안경 쓴 사람을 때리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정말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지요.
요즈음 아이들도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법적으로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는 경우에는 정말 살인미수죄가 성립하는 걸까요?
특별히 법에서 과실(=실수)로 한 행동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범죄가 성립하려면 '고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고의'의 종류에 따라서 성립되는 범죄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A가 B를 칼로 찔러서 B가 다친 경우, 만일 A가 B를 살해하겠다는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A에게는 살인미수죄가 인정됩니다. '미수'는 범죄행위를 시작했지만 행위를 완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하므로 B가 사망하지 않은 이상(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살인의 미수가 되는 거지요. 그러나 A가 B를 죽이고자 하는 생각은 없이 다치게 하려는 의도로 행동했다면 A는 '(특수)상해의 고의'로 행동한 것이므로 (특수)상해죄로 처벌받습니다.
그런데 다툼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에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고의(혹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고의=미필적 고의)로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냥 다치게 하겠다는 상해의 고의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살인의 고의로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고의'라는 것은 사람의 내심의 의사이므로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총이나 칼과 같은 물건을 사용해서 사람을 공격하였다면 누가 봐도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맨손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맨 주먹으로 사람의 얼굴을 때리는 경우 살인의 고의가 아닐 가능성이 높고, 설령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살인미수가 아닌 폭행 또는 상해죄로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이 안경을 썼는지 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 쓴 사람의 얼굴을 때리면 살인미수라는 말이 나온 것은 안경으로 인해 상대방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맨손으로 상대방을 때린 경우라고 하더라도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아 살인(미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가 100Kg가 넘는 격투기 선수가 몸무게가 50Kg에 불과한 노인이나 여성의 얼굴을 있는 힘껏 가격하는 경우 격투기 선수는 상대방이 사망하면 살인죄, 사망하지 않아도 살인미수죄가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행동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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