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에서는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권리 근거 규정의 요건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합니다. 입증책임이란 소송상 증명해야 하는 사실의 진위가 불명할 때, 당해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법률판단을 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위험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A가 B를 상대로 빌려준 돈 100만 원을 갚으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다면, A는 B에게 100만 원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요건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부담합니다. 따라서 B가 A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주장(부인)하고, A가 B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법원은 A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A가 B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게 되는 위험을 말합니다.
한편, 의료사고를 이유로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이하 ‘의사’)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권리 근거 규정은 대부분 민법 제750조 이하의 불법행위책임입니다.
그리고 불법행위책임의 요건 사실은 ①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행위, ②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 ③ 가해행위의 위법성, ④ 가해자의 책임능력입니다.
따라서 환자는 의료소송에서 ①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에 고의 또는 과실(이하 ‘과실’)이 존재하고, ② 의료과실로 손해가 발생하였으며, ③ 과실 있는 의료행위의 위법성, ④ 의사의 책임능력을 모두 주장·입증할 책임을 부담합니다.
다만, 의사의 의료행위에 과실이 있는 경우 별도로 위법성을 따질 실익이 적고(③요건), 현실적으로 의사의 책임능력이 문제 되는 상황은 상정하기 어려우므로(④요건), 의료소송은 주로 ①요건인 의료과실 존재 여부와 ②요건인 의료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주장·입증이 핵심을 이룹니다.
그런데 일반인이 의사의 전문분야에 관한 과실과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다른 불법행위책임과 같이 피해자에게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면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의사에게 과실 없음 또는 인과 관계없음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위축시켜 오히려 다수의 환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 법원은 의료소송에 있어 입증책임의 기본원칙을 따르면서, 다만 환자가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을 증명하고 의사의 반대증명이 없는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입증책임 완화라고 합니다.
한편, 의료소송에 있어 입증책임 완화에도 불구하고 의료과실의 존재, 의료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의학지식이나 법률에 해박하지 않은 일반인이 진료기록부를 하나하나 비교·분석하여, 소송과정에서 쟁점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 의사를 대리하여 의료과실 유무를 다투는 사건을 경험하다보면, 상대방인 환자 개인이 의료과실이 의심되는 부분 또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주장과 증거신청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이나 사건의 핵심을 놓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과실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사건 초기부터 의료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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