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를 비롯한 형사사건은 그 유형에 따라 대응 방법과 내용 및 해결 포인트가 각각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은 강제력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성관계가 이뤄지거나 그 과정에서 상해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함으로써, 그 불법성 및 처벌 등이 중대하고 오랜 유형의 성범죄인 강간에 대해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강간의 경우 서로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행위의 양상이나 죄질, 재범의 위험성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각의 경우로 나눠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 서로 아는 사람인 경우
(1) 상호 관계 및 행위 양상
최근 판례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이거나 클럽 등에서 부킹을 통해 만나서 그날 혹은 몇 번 만나면서 진한 스킨쉽까지 나누던 사이 뿐만 아니라 친구나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도, 그러한 관계 여하와 상관 없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했는지를 기준으로,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은 강제력을 사용하거나 (경우에 따라) 거부의 의사 표현을 무시하거나 동의 없이 성관계를 했는지를 살펴서 강간으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예: 부부의 경우에 대한 판례로서,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도1478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따라서 ‘사귀던 사이’라든가 ‘어느 정도 스킨쉽을 나누던 사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연인이나 부부 사이라는 주장만으로는 무죄 판단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2) 쟁점 및 증거
1) 쟁점
강간의 경우에는 그 실행상 은밀성 때문에 증거에 의한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등 형사 절차에서 대부분 아래 2가지에 대해 피해자와 피의자 등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다투게 됩니다.
(가)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
최근 성범죄 발생 건수가 이전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성범죄를 바라 보는 시각이 피해자 중심적으로 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입법 및 형사 사법기관 역시 성범죄를 엄벌하는 방향으로 기조가 옮겨 가고 있으며, 성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인 여성의 인권의식의 성장 및 활발한 사회운동으로 이제는 신고와 고소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행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또한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 전국 해바라기 센터 등 공적인 기관에 의한 강간 피해자의 보호 및 대응 방법 안내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유전자 검사를 포함해서 의료기관에 의한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관련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성관계 자체의 유무에 대한 다툼은 그리 크지 않고 보통의 경우 대체로 피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관계가 정리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나) “동의 하에 관계했다”
실질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다퉈지게 되는데 증거(진술의 신빙성)와 관련해서 주로 문제 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아래에서 별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2) 증거
법적인 주장을 하려면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서 증거를 반드시 첨부해야 하고 특히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증거재판주의를 천명한 형사소송상의 대원칙에 입각해서 절차가 진행됩니다.
(가) 객관적 증거
거의 대부분 은밀하게 이뤄지는 강간의 경우, CCTV 영상, 블랙박스 영상ㆍ음향, 컴퓨터 저장물, 영상 녹화, 음성 녹취, 사진, 카톡이나 문자, 이메일, 진단서나 진료기록, 주변인 진술서 등의 객관적인 입증자료의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만 당연히 이러한 객관적인 증거 자료는 가능한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두는 게 좋습니다.
(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형사소송법은 제308조에서 '자유심증주의'라는 제목으로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판례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그 판단은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여야 하고,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하나, 이는 모든 가능한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를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이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참조)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형사사건과는 달리 대부분의 강간에서는 그 실행상 은밀성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의 확보가 곤란하고 주관적인 피해자의 진술이 거의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인 경우가 많은데, 판례는 그러한 진술의 신빙성은, 구체성, 일관성, 경험칙/논리 부합성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함과 아울러, 피해자가 허위로 피의자 등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인지 감수성
강간 사건의 경우 사건마다 일어나는 정황이 다르고 범행 방법도 다른데 무죄를 다투는 경우, 사실 과거에는, 피해자에게, 왜 그런 곳에 갔느냐, 소리치면서 저항할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느냐, 성폭행을 당하는데 죽을 각오로 반항하지 않았느냐, 왜 구호요청을 하지 않았느냐, 숙박업소에 따라 갔다면 이미 동의한 것이 아니냐, 고소는 왜 빨리 하지 않았느냐 등의 논리로 무죄를 다투었고 경우에 따라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판례는,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참조)...”라고 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입니다.
(4) 피해자다움
한편, 피의자 등이 피해자 주장의 신빙성을 탄핵하고자 예컨대 아래와 같은 근거들을 들면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말과 행동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① 성관계 이후 친근한 문자를 보냈다
②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참이 지나서야 고소했다
③ 심각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별다른 이상 없이 일상생활을 했다
이러한 주장은 소위 ‘피해자다움’이라는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에 기반한 그릇된 근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서, 진술의 신빙성 중 특히 경험칙/논리 부합성이라는 기준의 충족 여부 검토 단계에서 강간 성립과 관련한 상호 공방이 오갈 때 거의 빠짐 없이 거론되고 있는 사항이니만큼 무시할 수 없고 참고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판례는 최근 “...범행 후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2020. 8. 20. 선고 2020도6965 판결, 대법원 2020. 9. 3. 선고 2020도8533 판결 등 참조)라고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경우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상대로 저항하기 힘든 폭행이나 협박 등을 사용한 성폭력은 굉장히 죄질이 나쁘고 재범의 위험성도 높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따라서 구속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됐다고 하더라도 불기소처분으로 종결되지 않고 재판까지 간다고 보고 상호 공방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주로 가해자가 만취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례가 상당히 많은데, 가해자 입장에서는 만취 상태임을 이유로 ‘심신상실’ 혹은 ‘심신미약’의 형법상 책임조각/감경사유가 존재함을 주장하거나 계획적/의도적 범행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들어 감형사유가 존재함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대부분 잘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3. 상대가 아동ㆍ청소년인 경우
(1) 강간(폭행/협박/위계/위력을 수단으로 하는 경우)
1)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성폭력처벌법) 제7조에 따라, 강간의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는 물론 13세 이상의 아동ㆍ청소년인 경우보다 법정형을 더 가중해서 처벌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세칭: 아청법)과 같이 폭행이나 협박보다 경미한 수단인 위계나 위력으로써 간음한 경우도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경우와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 피해자가 13세 이상 아동ㆍ청소년인 경우
성폭력처벌법 제7조 및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13세 이상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강간한 경우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 비해 가중처벌하도록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고, 폭행이나 협박보다 경미한 수단인 위계나 위력으로써 간음한 경우도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경우와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위헌성 논란도 있었는데 판례는 합헌으로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7도4818 판결 참조).
(2) 의제강간(연령만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폭행/협박/위계/위력을 수단으로 하지 않는 경우에도, 소위 ‘미성년자의제강간’이라 하여 피해자가 13세나 16세(최근 신설) 미만인 때에는, 형법과 아청법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해서 처벌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13세나 16세 미만이라고 하더라고 폭행/협박/위계/위력을 수단으로 한 경우에는 더 높은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는 위 (1)강간(폭행/협박/위계/위력을 수단으로 하는 경우)에 따라 처벌됩니다.
[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 ①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②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19세 이상의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신설/시행 2020. 5. 19.>
[아청법]
제8조의2(13세 이상 16세 미만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간음 등) ① 19세 이상의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아동ㆍ청소년(제8조에 따른 장애 아동ㆍ청소년으로서 16세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해당 아동ㆍ청소년을 간음하거나 해당 아동ㆍ청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간음하게 하는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신설 2019. 1. 15. / 시행 2019. 7. 16>
4. 상해 혹은 사망의 결과 발생
성관계 그 자체에서 혹은 그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에 의하거나 혹은 성관계에 수반돼서, 즉 넓게 강간의 기회에, 상해나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당연히 법정형이 훨씬 더 높게 규정돼 있습니다(예: [형법] 상해나 치상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치사의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살인의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
실제로 강간의 기회에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상해에는 반드시 외관상 상처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 증상이나 수면장애 등도 포함되며, 따라서 피해자가 강간 도중에 상해가 발생했다며 상해진단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관계 자체에서 발생하는 등 강간의 기회에 상처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판례는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는 피해자의 신체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극히 경미하여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고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다리에 푸르거나 붉은 약간의 멍이 든 상처)라면,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신체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었다거나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된 것으로 보기 어려워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소위 ‘상대적 상해 개념 긍정설’)...(대법원 2004. 3. 11. 선고 2004도483 판결)”고 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정신과적 증상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극심한 심리적 충격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판례에서도 상해로 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성범죄 유형별 대응 방법(4) - 준강간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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