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재성 변호사입니다.
2023년 12월 세종시의 한 도로 한가운데, 시동이 켜진 차 안에서 운전자가 잠들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출동한 경찰은 운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지구대로 데려갔고, 운전자는 지구대 벤치에 누워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경찰은 음주측정기를 운전자의 입 근처에 여러 차례 가져다 댔고, 결국 운전자가 누운 채로 불어넣은 수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1%였습니다.
1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도 유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측정 전에 입을 헹굴 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였지요. 물 한 컵이 빠졌을 뿐인데 측정 결과 자체를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판결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지금 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고 계신 분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입 헹굼 물 제공, 언제부터 의무가 되었나
술을 마신 직후에는 입 안에 남은 알코올 때문에 호흡측정 수치가 실제보다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 내부 지침인 교통단속처리지침에 2017년부터 측정 전에 입 안의 잔류 알코올을 헹궈낼 물을 주도록 하는 규정이 들어왔습니다.
이 절차가 내부 지침을 넘어 법령이 된 것은 2023. 7. 4.부터 시행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27조의2입니다. 이 조항은 호흡조사 측정 시 "입 안의 잔류 알코올을 헹궈낼 수 있도록 운전자에게 음용수를 제공할 것"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1심은 물 제공 절차를 "경찰 업무 지침"에 불과하다고 보았는데, 대법원이 정면으로 뒤집은 지점이 바로 여기거든요.
대법원은 왜 증거능력을 부정했나
대법원 형사1부는 2026. 10. 1. 선고 2025도16613 판결에서, 위 시행규칙 조항은 「대외적 구속력이 있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원심은 물을 주지 않은 것을 측정 결과의 신빙성, 즉 수치가 얼마나 믿을 만한가의 문제로만 보았습니다. 술을 마신 뒤 20분 이상 지났으니 입 안 알코올의 영향은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였지요.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증거능력, 즉 증거로 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운전자가 실제로 입을 헹궈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물을 제공하고 헹구도록 안내·권고하면 절차는 지킨 것으로 봅니다. 2) 반대로 「운전자가 잠들어 있다는 사정만을 들어」 이 절차가 면제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했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못 받았으면 무죄일까요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번 판결은 파기환송이지 무죄 확정이 아닙니다. 환송 뒤 법원이 다른 증거로 음주운전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사건마다 따로 판단됩니다.
또 이 시행규칙 조항은 2023. 7. 4.부터 시행되었으므로, 그 이전에 있었던 단속에도 같은 결론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물을 건네고 헹구라고 안내했는데 본인이 마시지 않거나 거절했다면, 절차는 지켜진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을 안 마셨으니 무효"가 아니라 "경찰이 물을 주고 안내했는가"가 기준인 셈입니다.
당장 기억해 두실 것
1) 단속 직후라면 그날의 기억을 바로 적어 두십시오. 측정 장소, 측정 횟수, 물을 받았는지, 헹구라는 말을 들었는지, 측정 시각을 시간 순서대로 메모해 두시면 나중에 영상과 대조할 기준이 됩니다.
2) 조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영상과 기록부터 확보하셔야 합니다. 단속 현장의 보디캠, 지구대 CCTV,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 측정기 출력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보존 기간이 지나 사라질 수 있으므로, 변호인을 통해 보존과 열람을 빨리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측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음주측정거부는 별도의 죄로 처벌되고 법정형도 가볍지 않습니다. 절차에 의문이 있으면 측정에 응하면서 물을 요청하고, 수치에 불복한다면 혈액채취를 요구하는 방법을 택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리하며
이번 판결의 요지는 단순합니다. 입 헹굼 물 제공은 2023년 7월부터 법령상 절차이고, 이를 생략하고 얻은 호흡측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치가 몇이었느냐보다 그 수치가 어떤 절차로 나왔느냐가 먼저 따져진다는 점에서, 수사 절차를 다투는 변론의 출발점이 하나 더 분명해졌습니다.
형사 사건을 오래 다뤄온 저로서는, 음주운전 사건에서도 결과를 바꾸는 단서는 대개 수치가 아니라 절차의 기록 속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음주운전으로 단속되셨거나 경찰·검찰 조사, 재판을 앞두고 계신 분이라면 측정 당시의 절차를 한번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사안별로 적용 법리와 대응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문의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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