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나 개인 간 금전거래를 하면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을 모두 갚으면 근저당권도 말소하는 것이 보통인데, 채권자가 “아직 받을 돈이 남았다”며 말소에 협조하지 않으면 부동산을 매도하거나 새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빌린 적도 없고 근저당권 설정에 동의한 적도 없는데, 나중에 등기부를 확인해 보니 다른 사람이 위임장이나 인감 관련 서류를 이용해 근저당권을 설정해 둔 경우입니다.
두 상황 모두 근저당권설정등기 말소청구소송을 검토할 수 있지만 소송에서 밝혀야 할 내용은 다릅니다. 실제 채무가 있었지만 모두 갚은 사건인지, 처음부터 채무가 없었던 사건인지, 근저당권 설정서류 자체가 위조된 사건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근저당권은 채권을 담보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실제 담보하는 채권이 모두 없어지면 근저당권 역시 존속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1억원을 빌리면서 자신의 부동산에 채권최고액 1억3천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후 원금과 약정된 이자 등 피담보채무를 모두 갚았다면 B는 근저당권 말소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등기부에 적힌 ‘채권최고액’이 실제 빚의 액수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근저당권은 앞으로 발생하거나 변동할 채무를 일정한 한도 안에서 담보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채권최고액이 1억3천만원으로 적혀 있다고 해서 실제 채무도 1억3천만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실제 채무가 채권최고액보다 더 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소송에서는 결국 실제로 어떤 돈을 빌렸고, 얼마를 갚았으며, 지금 남아 있는 채무가 얼마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피담보채권까지 당연히 존재한다고 보는 것도 아닙니다. 대법원은 근저당권설정행위와 별도로 그 근저당권이 담보하는 채권을 발생시키는 법률행위가 있어야 하고, 피담보채권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근저당권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72070 판결,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다107408 판결).
그래서 채권자가 “아직 3천만원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차용증과 계좌내역, 이자 지급내역, 변제 당시 문자나 영수증 등을 놓고 실제 남은 금액을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소송에서 일부 채무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실제 근저당권 말소소송에서는 이 문제가 자주 생깁니다. 채무자는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채권자는 연체이자나 별도의 대여금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계산해 보니 채무자의 주장과 달리 500만원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근저당권 말소청구 전체가 기각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피담보채무 전액을 변제했다고 생각하고 근저당권 말소를 청구했지만 소송 결과 일부 채무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 남은 채무를 지급하고 나면 근저당권을 말소해 달라는 취지까지 청구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1995. 7. 28. 선고 95다19829 판결).
쉽게 말해 법원이 “500만원이 남아 있으니 소송에서 졌다”라고 끝내는 대신, “원고가 500만원을 지급하면 피고는 근저당권을 말소하라”는 형태로 판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청구취지를 구성한다면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피고는 원고로부터 잔존 피담보채무 ○○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별지 기재 부동산에 관하여 마쳐진 ○○등기소 ○○년 ○월 ○일 접수 제○○호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
다만 소송에서 원고가 “남은 빚이 있다면 갚고 말소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채무가 전혀 없다는 판결만 원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면 법원이 임의로 이런 조건부 말소판결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채무액 자체가 다투어지는 사건이라면 처음부터 변제내역을 최대한 정확히 정리하고, 혹시 일부 잔액이 인정되는 경우까지 고려해 청구 구조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채권최고액만 갚으면 언제나 근저당권을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근저당권 말소에서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채무자 본인이 근저당권을 설정한 경우인지, 다른 사람의 채무를 위해 내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경우인지입니다. 채무자 본인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경우라면 피담보채무 전액이 없어져야 근저당권 말소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제 채무가 채권최고액보다 많다면 채권최고액만 지급했다고 해서 바로 말소를 요구하기 어렵습니다(대법원 1981. 11. 10. 선고 80다2712 판결).
반면 다른 사람의 빚을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만 제공한 물상보증인이나 근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을 나중에 취득한 제3취득자는 말소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범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등기부에 채권최고액이 2억원이라고 적혀 있으니 2억원만 갚으면 무조건 말소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채무자인지, 누가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피담보채권 자체가 오래되어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도 살펴봐야 합니다. 담보하는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고 그 효과를 주장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근저당권 역시 부종성에 따라 함께 소멸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실제 채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미 소멸했다면 이를 이유로 근저당권 말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내 동의 없이 위조된 서류로 근저당권이 설정됐다면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채무 변제 사건보다 입증이 어려운 것이 위조 근저당권 사건입니다. 부동산 등기부에 근저당권설정등기가 이미 마쳐져 있다면 그 등기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소유자가 “나는 이런 근저당권을 설정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바로 등기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소를 요구하는 소유자 쪽에서 등기서류가 위조됐거나 대리권 없이 근저당권이 설정됐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2다99112 판결).
이런 사건에서는 근저당권 설정 당시 사용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위임장, 당시 작성된 등기 관련 서류, 인감 관련 자료 등을 확인하고 본인이 실제 작성한 문서와 비교해야 합니다.
서명이나 필체가 문제 된다면 평소 본인이 작성한 계약서, 금융기관 서류, 관공서 제출서류처럼 작성자가 명확한 비교자료가 중요합니다. 인영이 문제라면 당시 실제 사용하던 인장과 문서에 찍힌 인영이 어떻게 다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소송에서는 필요한 경우 문서나 필적, 인영 등에 관한 감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문제 되는 문서만 제출하는 것보다 작성 시기가 비슷하고 본인이 작성했다는 사실이 확실한 비교자료를 함께 확보하는 편이 좋습니다. 원본 문서가 남아 있다면 감정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위조행위와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됐다면 그 판결 역시 민사소송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동일한 사실관계에 관한 확정 형사판결은 민사법원이 사실관계를 판단할 때 유력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리인인 줄 알았다”는 근저당권자의 주장도 확인해야 한다
위조 근저당권 사건에서는 근저당권자가 “나는 그 사람이 소유자의 대리인인 줄 알고 거래했다”며 표현대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지인이 소유자 대신 거래하면서 위임장을 제출했다면 근저당권자는 자신도 속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소유자 이름을 사용했다고 해서 표현대리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126조에 따른 표현대리가 문제 되려면 우선 그 사람에게 일정한 기본대리권이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근저당권자가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데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는 소유자가 과거 그 사람에게 어떤 권한을 준 적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할 권한까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근저당권자 쪽의 확인 과정도 따져볼 수 있습니다. 거래 규모가 큰데도 본인에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는지, 제출된 서류 사이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돈은 실제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같은 사실을 살펴봐야 합니다.
위조 여부만 다투다가 표현대리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소송 구조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설정 과정 전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저당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면 누구를 상대로 소송해야 할까
오래된 근저당권은 최초 채권자에게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채권과 근저당권이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어 등기부에 근저당권 이전의 부기등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때 근저당권설정등기 자체를 말소하려면 원칙적으로 현재 근저당권 명의인인 양수인을 상대로 해야 합니다. 이미 권리를 넘긴 과거 근저당권자를 함께 피고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3다5016 판결).
등기부를 보면 최초 근저당권설정등기 아래에 근저당권 이전 부기등기가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피담보채무가 모두 소멸해서 근저당권 자체를 없애려는 경우라면 주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하면 됩니다. 주등기가 없어지면 그에 딸린 부기등기도 함께 정리되므로 부기등기마다 별도의 말소청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근저당권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A에게서 B로 근저당권을 이전한 행위만 무효라는 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전 부기등기 자체의 말소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기부에 여러 개의 부기등기가 있다고 해서 모두를 피고로 넣고 모든 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이 원래 근저당권인지, 근저당권 이전행위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근저당권에 압류나 가압류가 걸려 있다면 승낙 문제까지 봐야 한다
근저당권자는 한 명이지만 그 근저당권이 담보하는 채권에 다른 채권자가 압류나 가압류를 해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근저당권자만 상대로 승소했다고 해서 곧바로 말소등기가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근저당권 말소로 권리에 영향을 받는 등기상 이해관계인이 있다면 그 사람의 승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근저당권부 채권에 압류를 한 채권자가 있다면 근저당권 말소로 그 압류 역시 영향을 받습니다. 자발적으로 승낙하지 않는다면 소송에서 말소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근저당권이 담보하는 채권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채권에 대한 압류나 가압류 역시 기초를 잃게 됩니다. 대법원도 피담보채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해당 압류권자 등이 근저당권 말소에 필요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해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다107408 판결).
그래서 소송 전에는 등기부만 한 번 출력해서 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근저당권 이전이나 압류, 가압류 등 부기등기가 붙어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놓치면 판결을 받고도 실제 말소등기 단계에서 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근저당권 말소소송은 ‘빚을 갚았다’는 말보다 현재 남은 채무와 등기 구조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무를 모두 변제했는데 근저당권자가 말소를 거부한다면 가장 먼저 차용증과 전체 금융거래내역을 맞춰봐야 합니다. 원금이 얼마였는지, 언제 얼마씩 갚았는지, 이자는 어떤 기준으로 계산하기로 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실제 잔존채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부 채무가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금액을 지급받는 것과 동시에 근저당권을 말소하도록 하는 조건부 청구까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라면 접근 방법이 달라집니다. 등기는 일단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위임장과 설정계약서, 서명과 인영, 실제 대출금의 지급처, 당시 본인이 누구에게 어떤 권한을 줬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문서와 필적 등에 관한 감정을 통해 위조 사실을 밝히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현재 빚을 모두 갚았는데 채권자가 근저당권 말소를 거부하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근저당권이 내 부동산에 설정돼 있다면 등기부만 보고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법률사무소 강현에서는 근저당권설정계약서와 차용증, 원금과 이자 지급내역, 등기 당시 사용된 서류와 위임관계, 현재 근저당권 명의자와 압류 또는 가압류 여부까지 함께 검토해 피담보채무 소멸을 이유로 말소를 청구할 수 있는지, 위조나 무권대리를 이유로 원인무효를 주장해야 하는지, 제3자의 승낙청구까지 함께 필요한 사건인지 구체적으로 판단해 드리고 있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