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신청이 반려되고 두 달쯤 지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뒤에야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명의인이 이의제기를 했는데도 채권소멸절차를 멈추지 않은 금융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있습니다. 이 판결을 축으로, 실제로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한 사례를 짚어 보겠습니다.
1. 코인 판매 대금이 묶였고, 이의신청은 두 번 반려됐습니다
의뢰인은 P2P 플랫폼에서 코인을 사고팔아 온 분이었습니다. 2025년 가을 코인을 팔고 1천만 원대 초반의 대금을 받았는데, 돈은 구매자 본인이 아니라 한 법인 명의 계좌에서 들어왔습니다. 그 돈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섞여 있었고, 같은 날 오후 계좌가 지급정지됐습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4조 제1항(지급정지)에 따라, 피해자가 구제를 신청하면 은행은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되는 계좌를 즉시 정지합니다. 명의인의 사정은 그다음에 듣습니다.
의뢰인은 다음 날 이의신청(법률상 명칭은 이의제기)을 했습니다. 코인 판매 내역과 플랫폼 문의 내역 등을 붙였고, 플랫폼도 정상 거래였다는 거래확인서를 발급해 줬습니다. 정지가 잠시 풀렸다가 한 달쯤 뒤 다시 묶이자 이의신청을 한 번 더 했습니다.
은행은 두 번 모두 반려했습니다. P2P 거래라 상대방의 실명과 자금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고,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를 거친 거래가 아니어서 자금세탁이 우려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 뒤로 절차는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채권소멸절차 개시를 공고했고(제5조), 공고일부터 2개월이 지나 예금채권이 소멸했습니다(제9조). 2026년 초 의뢰인 계좌에서 700만 원대가 피해환급금으로 피해자에게 지급됐습니다(제10조).
2. 법은 이의제기가 있으면 채권소멸절차를 ‘종료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7조 제1항(이의제기)은 명의인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합니다. 해당 계좌가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는 경우, 또는 그 돈을 재화나 용역의 대가로 받았거나 그 밖의 정당한 권원으로 취득했다는 점을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하는 경우입니다. 다만, 거래대금이라고 해도 명의인이 해당 계좌의 사기 이용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는 제외됩니다. 금융회사는 거래 경위와 거래행태, 거래내역 등을 함께 확인합니다.
이의제기가 있으면 같은 법 제8조 제1항에 따라 금융회사와 금융감독원은 지급정지와 채권소멸절차 등을 종료하여야 합니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은 피해자가 이의제기 사실을 통지받은 날부터 2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지급정지를 풀지 않도록 하고, 명의인이 법정 사유에 해당함을 객관적인 자료로 충분히 소명하고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면 그 전에 해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둡니다.
정리하면 법정 요건을 갖춘 이의제기에 따른 채권소멸절차 종료와 지급정지 해제는 구별됩니다. 채권소멸절차를 종료하더라도 피해자 통보 후 일정 기간이나 관련 소송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지급정지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 판결이 있습니다.
3. 채권소멸절차를 멈추지 않은 금융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9. 26. 선고 2017가단5034144 판결입니다. 원고의 계좌에는 원고의 고유자금과 통신판매중개 거래를 위해 보관하던 자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면서 지급정지가 됐습니다.
원고는 두 차례 이의제기 신청서를 냈습니다. 묶인 예금은 피해자가 넣은 피해금이 아니라 고유자금이거나 정상 거래를 위해 보관하던 돈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피해자 목록과, 피해자가 넣은 돈을 판매자나 피해자에게 어떻게 보냈는지 정리한 내역도 붙였습니다. 그런데도 채권소멸절차는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적법한 이의제기가 있었는데도 채권소멸절차를 종료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4. 법원은 세 단계로 판단했습니다
첫째, 이 판결은 당시 법에 따른 이의제기에 필요한 ‘소명’의 정도를 둘로 나눴습니다. 당시 법은 지급정지를 2개월 안에 풀려면 사기이용계좌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소명하고 상당한 이유가 인정돼야 한다고 정합니다. 반면 채권소멸절차를 끝내는 데에는 그런 조건을 두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둘째, 채권소멸절차가 어떤 절차인지 짚었습니다. 판결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채권소멸절차는 금융회사와 같은 사인이 법원의 심판 없이 명의인의 재산권을 강제적으로 박탈하여 피해자에게 환급하는 것이므로 명의인이 채권소멸절차에 동의하거나 동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에만 정당성을 가진다”
그래서 채권소멸절차만 종료시키는 이의제기는 묶인 예금이 피해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해명(解明)’ 정도로 족하고, 충분히 소명하거나 상당한 이유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셋째, 이의제기를 걸러 낼 권한이 있는지 봤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의제기 사실을 통지받는 지위에 있을 뿐이고(제7조 제2항),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하거나 반려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법은 이의제기가 있으면 채권소멸절차를 끝내고, 지급정지만 유지한 채 피해자와 명의인 사이의 권리관계를 소송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원고는 제7조 제1항에서 정한 적법한 이의제기를 했으니 제8조 제1항에 따라 채권소멸절차를 종료했어야 하고, 종료하지 않았으니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5. 이 사건에 대입하면 반려 사유는 법이 묻는 것과 달랐습니다
2017년 판결이라 그 뒤 개정된 조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현행 조문은 정당한 대가로 받은 돈이라는 점의 객관적 소명과 함께, 사기 이용에 관한 명의인의 인식이나 중대한 과실도 고려합니다. 제7조 제2항도 이의제기가 법정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접수하도록 정합니다. 따라서 과거 판결의 ‘해명’ 기준을 현재 모든 신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 은행의 조치가 적법했는지는 당시 적용법과 제출 자료를 기준으로 따져야 합니다.
이 사건 의뢰인은 코인이라는 재화를 넘기고 대금을 받았습니다. 이의제기 때 판매 내역 등 거래 자료를 냈고, 플랫폼도 정상 거래였다는 확인서를 발급해 줬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당시 이의제기가 법정 요건을 갖췄다는 주장을 검토했습니다. 다만 거래 자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요건이 충족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은행이 든 반려 사유는 상대방의 실명과 자금 출처였습니다. 다만 송금인의 신원이나 자금 출처가 언제나 무관한 사정은 아닙니다. 거래대금이라는 자료와 실제 거래 경위를 함께 살펴, 은행이 제시한 사유가 법정 요건을 부정할 구체적 근거인지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은행이 채권소멸절차 종료 의무를 어겼고, 그 결과 의뢰인이 700만 원대 예금채권을 잃었다며 그 금액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했습니다.
참고로 P2P로 코인을 사고파는 일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다만 업처럼 반복하면 특금법 문제가 따로 생길 수 있어 함께 점검해야 합니다.
6. 은행은 ‘심사해서 반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대 논리도 있습니다. 은행 측은 이의제기의 ‘접수’와 ‘승인’은 다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반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뉴스토마토 2026. 2. 26.). 2026년 5월부터 은행권은 소명자료를 갖춘 이의제기에 5영업일 안에 심사 결과를 알려 주도록 절차를 표준화했습니다(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2026. 5. 4. 보도자료). 실무는 ‘심사’를 전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2017년 판결은 당시 법 아래에서 채권소멸절차 종료에 필요한 소명의 정도를 따진 판단입니다. 이후 조문은 법정 요건에 해당하는 이의제기의 접수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은행에 심사 권한이 전혀 없다는 근거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핵심은 당시 법정 요건을 갖춘 이의제기였는지, 은행이 어떤 자료를 검토하고 무슨 이유로 반려했는지입니다. 종료 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인정돼야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지급정지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2026년 1~5월 5대 은행에서 지급정지된 계좌는 7만 2천여 건으로 1년 전(3만 2,683건)의 두 배가 넘습니다(한국경제 2026. 6. 3.). 반면 2025년 10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1년 전보다 35.5% 줄었습니다(YTN 2026. 6. 3.). 범죄는 줄었는데 묶인 계좌는 늘었으니, 정상 거래를 하다 휘말린 명의인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봅니다.
7. 피해자를 상대로 하는 길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돈이 넘어가기 전이라면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소송이 계속 중이면 채권소멸절차를 진행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제5조).
다만 이 소송에서는 정당하게 받은 돈이라는 점을 명의인이 증명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5. 8. 선고 2024가합101778 판결은 이런 소송을 적법하다고 보면서도, 거래대금이라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명의인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돈이 이미 넘어갔다면 더 그렇습니다. 피해자도 속아서 돈을 잃은 사람이고, 환급금은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받은 돈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반려를 결정하고 예금을 소멸시킨 은행에 책임을 묻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8. 다툼의 출발점은 반려 사유서 한 장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돌아보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은행이 보낸 반려 사유서였습니다. 거기 적힌 이유가 제7조 제1항이 묻는 것과 달랐기 때문에, 2017년 판결을 근거로 은행에 책임을 물을 길이 열렸습니다.
반려 통보를 받으셨다면 사유부터 다시 읽어 보십시오. 상대방 실명 확인이나 자금세탁 우려를 들었다면, 그 사정이 거래 경위와 명의인의 인식 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대가로 받았다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라면 자료를 보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지금 손에 있어야 할 서류는 세 가지입니다.
반려 사유가 적힌 통지(문자·서면)
이의제기 때 낸 자료 사본
채권소멸 공고와 피해환급금 지급 내역
반려 사유가 법이 정한 요건과 어긋나는지는 조문과 판결을 나란히 놓고 봐야 드러납니다. 채권소멸 공고 뒤 두 달이 지나기 전이라면 이의제기 기한과 소송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미 돈이 빠져나갔다면 적용법·반려 사유·환급 내역을 함께 대조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개인의 상황에 맞는 정확한 법률 자문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소개한 사건은 개별 사안에 관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적용 법령에 따라 대응 방법 및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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