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피해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까지 확정된 뒤, 이 빚을 정리할 방법으로 개인파산을 알아보는 분들의 상담이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 중 상당수는 “어차피 돈이 없으니 파산해서 면책받으면 끝난다”, “형사 합의는 못 했지만 민사 빚은 파산으로 지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면책결정을 받고 나서 피해자가 급여나 예금을 다시 압류하면, 그제야 면책이 되지 않는 빚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채무자회생법은 면책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채권을 따로 정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는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들어 있습니다. 횡령은 고의범이므로, 횡령으로 생긴 손해배상 채무는 이 예외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래에서는 파산 면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횡령 손해배상이 왜 면책의 예외가 되는지, 그리고 이미 빚이 생긴 분들이 무엇부터 점검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파산 면책은 모든 빚을 없애주지 않고, 법이 정한 예외가 있습니다
면책은 파산채권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제도이며, 일부 채권은 처음부터 제외됩니다.
개인파산을 신청하면 면책신청도 함께 한 것으로 보고(채무자회생법 제556조 제3항), 법원은 면책불허가사유가 없는 한 면책을 허가해야 합니다(제564조 제1항). 면책이 확정되면 채무자는 파산채권자에 대한 채무 전부에 관하여 책임을 면하게 됩니다.
다만 면책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제566조 단서는 면책이 되더라도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 청구권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를 실무에서 비면책채권이라고 부릅니다. 이 목록에 들어가는 채권은 면책결정이 확정된 뒤에도 채권자가 그대로 청구하고 강제집행할 수 있습니다.
면책을 받은 채무자는 파산절차에 의한 배당을 제외하고는 파산채권자에 대한 채무의 전부에 관하여 그 책임이 면제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청구권에 대하여는 책임이 면제되지 아니한다. 1. 조세 2. 벌금ㆍ과료ㆍ형사소송비용ㆍ추징금 및 과태료 3.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4.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이 가운데 횡령과 직접 맞닿는 것은 제3호입니다. 제4호는 생명·신체 침해에 대해서는 중대한 과실만으로도 면책을 막지만, 재산 침해인 횡령은 제3호가 요구하는 ‘고의’가 있어야 비면책채권이 됩니다.
파산 면책은 만능이 아니며, 제566조에 열거된 채권은 면책결정 뒤에도 그대로 남습니다.
2. 횡령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횡령죄는 고의범이고 불법영득의사까지 요구하므로, 그 손해배상은 고의 불법행위로 평가됩니다.
형법상 과실로 재물을 횡령한 경우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횡령죄가 성립했다는 것은 곧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그 재물을 자기 것처럼 처분한다는 인식과 의사, 즉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점이 파산 실무에서 결정적입니다. 과실로 낸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은 면책될 수 있지만, 고의로 남의 돈을 가져다 쓴 책임은 제566조 제3호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은 횡령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업무상 임무에 위배한 경우 형법 제356조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까지 올라갑니다. 이렇게 형사 책임이 인정된 사안에서 민사상 손해배상 채무만 ‘실수로 생긴 빚’처럼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횡령 사건에서 가장 흔한 항변은 “나중에 갚을 생각이었다”는 것인데, 대법원은 불법영득의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업무상횡령죄에서의 불법영득의 의사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반하여 보관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과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를 말하고, 사후에 이를 반환하거나 변상, 보전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도3399 판결).
즉 갚을 의사가 있었다는 사정은 고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하고, 그렇다면 그 손해배상 채무가 면책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형사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이라면 그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가 민사에서도 강한 증거로 쓰이므로, 파산 단계에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횡령 손해배상은 고의 불법행위의 전형이므로, 파산 면책으로 정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채권자목록에 적어도, 부당이득으로 청구해도 결론이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비면책 여부는 채권의 이름이 아니라 그 발생 원인이 고의 불법행위인지로 가려집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피해자를 채권자목록에 성실히 기재하면 그 빚이 면책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채권자목록 기재는 제566조 제7호처럼 ‘목록에서 빠뜨린 채권’이 비면책이 되는 것을 막아줄 뿐이고, 목록에 적었다고 해서 제3호의 비면책 성격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를 일부러 빼면 악의로 기재하지 않은 청구권이 되어 별도로 문제가 됩니다.
청구 형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가 횡령금을 ‘부당이득 반환’이나 ‘대여금’ 형식으로 청구하더라도, 채무가 생긴 실질이 횡령이라면 피해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으로 구성해 비면책채권임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면책 이후 피해자가 강제집행에 나서면 채무자는 청구이의의 소 등으로 다투어야 하는데, 이때 채권의 발생 원인이 고의 불법행위가 아님을 채무자가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따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빚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리지만(민법 제766조), 판결로 확정되면 그 시효는 10년으로 늘어나고(민법 제165조) 피해자가 이자와 함께 집행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한편 파산 자체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횡령금을 도박이나 과다한 낭비에 쓴 사실이 있다면 제564조 제1항 제6호의 면책불허가사유가 되어, 비면책채권 문제 이전에 면책 자체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목록에 적든 청구 이름이 바뀌든, 횡령에서 비롯된 채무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4. 개인회생도 같고, 벌금·추징금은 어느 절차에서도 남습니다
파산 대신 개인회생을 택해도 고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은 변제 후 남은 부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빚을 정리하는 다른 길인 개인회생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채무자회생법 제625조 제2항은 변제계획에 따라 변제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책임을 면제하되, 제4호에서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면제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3년에서 5년의 변제기간 동안 계획대로 갚더라도 그 기간에 다 갚지 못한 횡령 피해 금액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형사 처분에 따른 금전 부담은 더 확실합니다. 벌금·과료·추징금은 파산에서는 제566조 제2호, 개인회생에서는 제625조 제2항 제3호에 따라 어느 쪽에서도 면책되지 않습니다. 횡령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받든 벌금형을 받든, 그 금전 책임은 채무 정리와 별개로 이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파산이나 개인회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횡령과 무관한 카드값·대출·세금 이외의 일반 채무는 정상적으로 면책될 수 있고, 피해자 채권만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하면 변제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피해자와 분할변제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상력도 이 구조를 이해해야 생깁니다.
파산이든 개인회생이든 횡령 피해자에 대한 채무는 남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그 밖의 채무입니다.
5. 형사 절차와 채무 정리, 이런 순서로 대응합니다
횡령 사건은 형사 합의와 민사 채무 정리를 따로 보지 말고 하나의 계획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보통 ①피해자의 고소로 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조사 → ②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③기소되면 수원지방법원 형사재판 → ④피해자의 민사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 배상명령 신청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 변제와 합의 여부가 양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파산을 먼저 신청해 버리면 오히려 합의 가능성을 스스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미 횡령 채무가 생겼다면 아래 순서로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형사 사건의 진행 단계(수사·재판·확정)와 피해 금액, 이미 변제한 금액이 얼마인지부터 정확히 정리합니다.
전체 채무를 횡령 피해자 채무와 그 밖의 채무로 나누고, 후자만으로 파산이나 개인회생의 실익이 있는지 계산합니다.
피해자와 분할변제나 감액 합의가 가능한지 먼저 시도하고, 합의서에 형사 처벌불원 의사와 변제 일정을 함께 적어둡니다.
이 세 가지가 정리되면 형사 양형 단계의 유리한 사정과 민사 채무 정리의 방향을 함께 잡을 수 있습니다.
마치며
횡령 사건을 겪은 분들은 형사 재판과 민사 채무가 한꺼번에 몰려오다 보니, 일단 파산부터 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결정을 서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기대가 어긋나면 이미 늘어난 시간과 비용을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돈을 가져간 것으로 지목된 쪽에서는 어떤 채무가 면책되고 어떤 채무가 남는지를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합의와 변제 계획을 형사 단계부터 세워야 양형과 채무 정리를 함께 풀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를 입은 쪽에서도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했다고 해서 받을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확정판결과 형사 기록을 갖추고 있다면 면책 이후에도 청구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횡령 사건에서 돈을 가져간 것으로 지목된 쪽과 피해를 입은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초기에 형사 대응과 채무 정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면책이 되는 빚과 되지 않는 빚을 먼저 가려야 하는 시점이라면,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횡령 손해배상 판결이 확정됐는데, 파산하면 정말 아무 효과가 없나요?
A. 그 피해자 채무에 대해서는 면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제566조 제3호가 고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면책에서 제외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일반 채무는 면책될 수 있습니다.
Q. 형사 합의를 하고 처벌불원서를 받았다면 손해배상 빚은 없어지나요?
A. 합의서에 채무 면제나 청구 포기 문구가 들어 있어야 없어집니다. 처벌불원만 적었다면 형사 양형에는 유리하지만 민사 채무는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Q. 과실로 회사 돈을 잘못 쓴 경우에도 면책이 안 되나요?
A. 재산 손해에 대한 과실 불법행위는 제566조 제3호의 고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면책될 수 있습니다. 다만 사건이 횡령으로 처벌됐다면 고의가 전제되므로 이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Q. 개인회생으로 가면 횡령 피해자 채무도 줄일 수 있나요?
A. 변제계획안에는 포함할 수 있지만, 계획에 따라 갚고 남은 금액은 제625조 제2항 제4호에 따라 면제되지 않습니다. 결국 남는 부분은 별도로 갚아야 합니다.
Q. 피해자를 채권자목록에서 빼면 문제 삼지 못하지 않나요?
A. 오히려 악의로 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청구권은 제566조 제7호에 따라 면책에서 제외될 수 있고, 허위 기재는 면책불허가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는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
Q. 횡령한 돈을 도박에 썼다면 면책 자체를 못 받나요?
A. 도박 등으로 재산을 현저히 감소시켰다면 제564조 제1항 제6호의 면책불허가사유에 해당합니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법원이 경위를 고려해 면책을 허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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