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에서 빼기 전에 확인할 한 가지
"횡령이 확인된 직원이 퇴사하는데, 변제금은 마지막 월급과 퇴직금에서 충당하기로 합의서를 받아 두면 되는 것 아닌가요?"
횡령을 확인했고, 직원도 인정했고, 변제 약속까지 받았습니다. 남은 일은 급여와 퇴직금 정리뿐이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서명받은 합의서까지 있다면 더 그렇습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변제 약속 자체가 아니라, 그 약속에 임금과 퇴직금이 섞여 있는지입니다. 횡령금과 임금은 서로 다른 채권이고, 법은 이 둘을 섞는 데 엄격합니다.
횡령금과 임금은 맞바꿀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은 임금을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도록 정합니다.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을 때만 일부 공제가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초과 지급된 임금의 반환채권을 제외하면, 대출금이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채권으로 임금을 상계(서로 가진 채권을 맞대어 없애는 것)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초과 지급 임금의 예외도 계산 착오처럼 임금을 정산하는 성격이 분명한 경우로 좁게 인정됩니다. 퇴직금도 임금의 성질을 가지므로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여러 법원은 근로자의 횡령 여부가 임금·퇴직금 지급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따로 판단되어야 하며, 설령 횡령이 있었더라도 손해배상채권으로 임금을 상계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횡령 피해가 사실이어도 급여에서 일방적으로 뺄 수는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제36조는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과 그 밖의 모든 금품을 지급하도록 정합니다. 이를 어기면 금품청산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퇴직금 미지급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위반으로 따로 처벌됩니다. 횡령 피해를 이유로 상계에 동의받았다고 주장한 사업주에게 고의를 인정해 유죄로 판단한 사례도 있습니다.
퇴직금 충당 합의, 어디까지 유효할까
근로자 동의를 얻은 상계는 자유로운 의사에 터잡았다고 인정할 합리적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할 때에만 허용되고, 법원은 이를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합의서에 "자유로운 의사로 동의한다"고 적어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법원은 문구가 아니라 자유의사를 인정할 객관적 이유가 있는지를 봅니다.
반대 방향도 막혀 있습니다. 횡령처럼 고의로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직원 쪽에서도 자기 퇴직금으로 상계했다고 내세울 수 없습니다(민법 제496조). 회사는 임금·퇴직금을 모두 지급한 뒤에도 횡령금 전액을 따로 청구할 수 있으므로, 급여에서 미리 빼 둘 이유가 없습니다.
퇴직금은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퇴직 전 포기 약정은 무효이고, 월급에 퇴직금을 미리 얹어 지급하는 분할 약정도 중간정산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중간정산은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므로(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8조 제2항), 횡령 정리를 위해 회사가 일방적으로 미리 정산하는 방식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퇴직한 뒤의 포기는 허용되지만, 퇴직 직후 횡령 의심 상태에서 체결한 포기·부제소(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 약정을 심리적 궁박과 현저한 금액 불균형을 이유로 무효라고 본 사례가 있습니다.
금액을 회사 산정에 따르기로 한 확인서의 효력을 직접 판단한 판결은 확인되지 않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근로자가 공제 금액을 알지 못한 채 동의했다면 자유의사를 인정받기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횡령금은 분리해서 회수합니다
분리 지급: 임금·퇴직금은 먼저 전액 지급하고, 횡령금은 별개의 채권으로 회수합니다. 횡령금을 뺀 나머지만 공탁하는 처리는 피하십시오.
금액 특정: 확인서와 약정에 횡령 기간·건수·금액과 산정 근거를 특정합니다.
임의성 기록: 고소 여부와 결부해 압박하는 문언을 피하고, 숙고 기간과 자문 기회를 부여한 경과를 남깁니다.
시효 관리: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3년 시효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진행하므로, 횡령을 확인한 날을 기준으로 따로 관리합니다.
공탁금 수령: 행위자가 형사사건에서 공탁한 금액은 일부 변제에 충당한다는 유보 의사를 밝히고 수령합니다.
서면으로 받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회사가 보호되지 않습니다. 합의서가 임금과 횡령금을 섞고 있다면, 서면이 오히려 회사가 상계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회수와 지급은 따로 설계합니다
회사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는 일과 임금·퇴직금을 지급하는 일은 별개의 절차로 설계하셔야 합니다. 퇴사일부터 14일 안에 임금과 퇴직금을 먼저 정리하고, 횡령금은 금액과 근거를 특정한 변제 약정이나 소송으로 따로 회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행위자가 이후 파산 등으로 면책을 받더라도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면책되지 않으므로, 서둘러 급여에서 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충당 합의서를 받아 두었다면 지급 기한이 지나기 전에 법률 전문가에게 그 효력과 처리 방향을 확인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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