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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액 증명이 어려운 손해배상 소송, 법원이 변론 취지로 배상액 정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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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액 증명이 어려운 손해배상 소송, 법원이 변론 취지로 배상액 정하는 법 

강대현 변호사

영업을 방해받거나 계약을 위반당해 손해를 입은 것은 분명한데, 그 손해가 정확히 얼마인지 숫자로 증명하려면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원칙적으로 청구하는 쪽이 손해가 발생한 사실뿐 아니라 구체적인 손해액까지 증명해야 하고, 액수를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되더라도 배상 자체를 받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런 불합리를 보완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해 상당한 금액을 직접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규정이 어떤 요건에서 작동하는지, 법원이 실제로 무엇을 근거로 손해액을 정하는지, 그리고 이 규정을 믿고 손해액 증명을 아예 포기해도 되는지까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손해배상 소송의 두 관문 — 손해의 발생과 손해액의 증명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원고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은 사실 두 단계로 나뉩니다. 첫째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이고, 둘째는 그 손해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즉 손해액입니다. 민사소송은 변론주의를 원칙으로 하므로 당사자가 주장하고 증명하지 않은 사실을 법원이 함부로 인정해줄 수 없고, 두 단계 모두 원칙적으로 청구하는 쪽에 증명책임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증명의 난이도가 사건마다 크게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계약서·진단서·시설 훼손 사진 등으로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그 손해를 정확한 금액으로 환산하는 작업은 사건의 성질에 따라 극도로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영업방해로 매출이 줄었다면 방해가 없었을 경우의 가정적 매출을 계산해야 하고, 계약 위반으로 거래 기회를 잃었다면 놓친 이익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식입니다.

과거에는 법원이 증명책임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손해액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청구 자체를 배척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이 오히려 배상을 면하는 결과가 된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하는 법리를 발전시켰고 이후 이를 법률에 명문화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 살펴볼 손해배상 액수 산정에 관한 규정입니다.

손해배상 소송의 증명책임은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그 액수라는 두 단계로 나뉘고, 이 규정은 그중 액수 단계의 증명 곤란만을 완화하는 장치다.

손해액 증명을 어렵게 만드는 사건들 — 언제 문제 되나

손해액 증명이 특히 어려워지는 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된 유형이 있습니다. 영업방해나 부정경쟁행위로 인한 매출 감소분처럼 방해가 없었을 때를 가정해 산출해야 하는 손해, 계약 위반으로 놓친 거래 기회처럼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다시 구성해야 하는 손해, 설계·시공 하자처럼 여러 원인이 겹쳐 손해 항목을 하나하나 분리해내기 어려운 손해가 대표적입니다.

  • 영업방해·부정경쟁행위로 인한 매출 감소분 — 방해가 없었을 때의 가정적 매출을 산출해야 함.

  • 계약 위반으로 놓친 거래 기회(일실이익) — 실현되지 않은 미래 이익을 사후에 재구성해야 함.

  • 설계·시공 하자로 인한 복합적 손해 — 여러 원인이 겹쳐 손해 항목별 분리가 어려움.

  • 손해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상대방만 보유해 원고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

이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손해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다툼의 여지가 적은데도, 그 액수를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 상대방 쪽에만 있어 원고가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상태에서 원칙적인 증명책임 법리만 고수하면, 잘못은 분명한데 배상은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 판례를 명문화한 규정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는 '손해배상 액수의 산정'이라는 제목으로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에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배상 액수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 조문은 2016년 3월 개정으로 신설되어 같은 해 9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이 새로 만들어진 법리는 아닙니다. 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다6951, 6968 판결은 이미 통상적인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극히 곤란한 경우 법원이 증거조사의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액수를 심리·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제202조의2는 이렇게 판례로 축적된 법리를 그대로 법률에 옮겨 담은 조문이라는 점에서, 조문 신설 전 사건에도 사실상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는 새로운 권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손해액 증명이 극히 곤란한 사건에서 법원이 취해야 할 태도를 판례가 먼저 정립하고 이를 법률로 명문화한 규정이다.

법원이 곧바로 재량을 쓰지 않는다 — 먼저 거치는 석명권 행사

이 조항이 있다고 해서 손해액 증명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곧바로 법원의 재량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8다301336 판결은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만 손해액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과 증명이 미흡한 경우,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136조에 따른 석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증명을 촉구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권으로 손해액을 심리·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서 원고는 건물 리노베이션·증축에 관한 설계 및 감리계약을 맺었다가 설계도면의 하자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원심은 손해액에 관한 주장과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그대로 배척했습니다. 대법원은 원고가 하자 보수비용을 이미 지급했을 가능성이 있는 자료가 있었는데도 원심이 석명권을 행사해 이를 밝히거나 관련 간접사실을 종합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손해액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청구를 기각하기 전에, 법원 스스로 증명을 보충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절차적 의무를 확인한 것입니다.

법원이 손해액을 정할 때 실제로 보는 간접사실들

석명권 행사를 거치고도 구체적인 손해액을 여전히 알 수 없다면, 법원은 증거조사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로 드러난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해 상당한 금액을 정합니다. 2018다301336 판결은 이때 법원이 살피는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 계약관계인지, 거래가 반복된 사이인지 등.

  •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 잘못의 정도와 손해 사이의 관련성.

  • 손해의 성격 — 일회성 손해인지, 계속되거나 확대되는 손해인지.

  •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제반 정황 — 사후 대응, 복구 노력, 추가 지출 여부 등.

이 네 가지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하나의 금액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입니다. 예컨대 당사자들이 오랜 거래관계에 있었다면 과거 거래 규모가 손해액 추정의 출발점이 되고, 손해 발생 이후 원고가 실제로 지출한 복구 비용이 있다면 그 금액이 최소한의 손해액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완벽히 증명되지 않은 손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금액을 확정합니다.

법원이 정하는 손해액은 임의의 숫자가 아니라, 당사자 관계·손해 발생 경위·손해의 성격·사후 정황이라는 간접사실을 종합해 도출한 금액이다.

실제 사례로 보는 적용 — 증명이 부족해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앞서 본 2018다301336 판결의 사실관계는 이 규정이 실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원고는 병원 이전을 위해 건물 리노베이션과 증축에 관한 설계 및 감리계약을 체결했다가, 설계도면에 하자가 있다며 설계사무소와 건축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1심과 원심은 원고가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고가 하자를 보수하는 비용을 실제로 지급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가 기록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원심으로서는 이 부분에 관해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해 증명을 촉구하거나, 그것도 어렵다면 당사자들의 관계와 손해 발생 경위, 손해의 성격, 그 이후의 정황 등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을 종합해 손해액을 인정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금액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했더라도, 손해와 관련된 자료를 최대한 제출해두면 법원이 재량으로 금액을 정할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을 이 사례가 확인해 줍니다.

이 규정이 구제해주지 않는 경우 — 한계와 예외

이 규정을 지나치게 믿고 손해액 증명을 처음부터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제202조의2가 완화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손해액을 특정하는 증명의 곤란이지,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와 그 손해가 상대방의 잘못으로 생겼다는 인과관계의 증명까지 대신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손해 발생 자체가 불분명하거나 인과관계가 다투어지는 사건이라면, 액수 산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증명이 막혀 이 조항이 적용될 여지 자체가 없습니다.

또한 이 조항이 정하는 것은 법원의 재량이지 당사자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채 법원의 판단만 기다리면, 법원도 금액을 가늠할 간접사실 자체가 없어 청구가 그대로 배척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법원이 종합적으로 산정한 금액이 원고가 기대한 금액보다 낮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이는 재량에 따른 결과이므로 상급심에서 다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능한 범위의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제출하는 쪽이 결국 유리한 금액을 받는 길입니다.

특별법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가 — 일반규정의 위치

2018다301336 판결은 이 규정의 적용 범위에 관해서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는 특별한 정함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특별법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 일반적 성격의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즉 개별 법률에 손해액 산정에 관한 별도 규정이 없다면, 이 조항이 보충적으로 작동해 증명 곤란을 구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저작권법처럼 개별 법률이 손해액 추정이나 법정손해배상 등 자체적인 산정 방법을 별도로 마련해둔 경우에는, 그 특별 규정이 먼저 적용되고 제202조의2는 그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별 규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서 보충적으로 쓰입니다. 자신이 다투는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에 손해액 산정에 관한 특칙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해배상을 청구하는데 정확한 손해액을 계산하지 못하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한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는데 그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라면,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해 상당한 금액을 직접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인과관계는 별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Q.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는 아무 사건에나 적용되나요?

A. 손해액을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적용됩니다. 단순히 증명이 번거롭거나 자료를 준비하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 성질상 정확한 액수 산정이 곤란한 사건에 국한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Q. 법원이 정하는 금액은 아무 근거 없이 임의로 정해지나요?

A. 아닙니다.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 발생 이후의 제반 정황 등 증거조사와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간접사실을 종합해 정해집니다. 근거 자료가 많을수록 법원이 인정하는 금액도 실제 손해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특별법에 손해액 추정 규정이 있으면 이 조항은 아예 쓸 수 없나요?

A. 특별법에 손해액 산정에 관한 별도 규정이 있다면 그 규정이 먼저 적용됩니다. 다만 그 특별 규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일반규정인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가 보충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Q. 손해액 증명을 아예 포기하고 법원 재량에만 맡겨도 되나요?

A. 권장하지 않습니다. 이 규정은 증명이 불가능한 부분을 법원이 보충하는 장치이지, 증명 노력 자체를 대신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관련 자료를 최대한 제출해야 법원이 판단할 근거가 생기고, 아무 자료가 없으면 청구가 배척될 수도 있습니다.

Q. 법원이 산정한 손해액이 부당하게 낮다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나요?

A. 다툴 수는 있지만, 손해액 산정은 사실심 법원의 재량에 속하는 영역이라 그 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산정의 근거가 된 간접사실 인정에 오류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다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맺음말

손해배상 소송에서 손해액 증명이 어렵다는 사정이 곧 패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해 상당한 금액을 직접 정할 수 있고, 그 전에 당사자에게 증명을 보충할 기회를 주는 절차도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은 손해액 증명의 곤란만을 구제할 뿐, 손해 발생 사실과 인과관계까지 대신 증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결국 관건은 완벽한 숫자를 처음부터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와 관련된 자료를 최대한 모아 법원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근거를 만들어주는 데 있습니다. 손해액 산정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건일수록 어떤 자료가 간접사실로 쓰일 수 있는지 미리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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