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항소심에서 변론이 끝나고 선고만 남은 상황에서, 검사나 피해자 측이 새로운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는 피고인과 가족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병원 진단서, 처벌불원 의사 철회서, 추가 피해 진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이런 자료가 피고인이나 변호인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없이 그대로 형량에 반영되는 경우입니다. 대법원은 이런 절차를 위법하다고 못박은 판결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변론종결 후 제출된 불리한 양형자료를 법원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 기준이 된 판결의 구체적 내용과 실무 대응법을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변론종결과 양형자료 — 증거조사가 끝나는 시점의 의미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할 때 법원이 참작해야 하는 사항은 형법 제51조에 정해져 있습니다.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이 그것입니다. 이 사항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양형자료라 부르는데, 검사와 피고인·변호인 모두 형사소송법 제294조에 따라 증거를 제출하고 신청할 권리를 갖습니다. 정상에 관한 증거를 신청할 때는 그 취지를 명시해야 한다는 절차도 형사소송규칙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변론종결은 이 증거조사와 증거신청이 모두 마무리됐다는 뜻입니다. 재판장이 변론을 종결하면 그다음 순서는 원칙적으로 판결 선고이고, 당사자가 새로운 사실이나 자료를 다툴 기회는 형식적으로는 닫힙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변론종결 후에도 판결 선고 전까지 검사의 의견서, 피해자 측의 탄원서나 진단서가 법원에 접수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접수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법원이 이 자료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 정도, 합의나 처벌불원 의사의 존부와 철회 여부가 양형에 미치는 비중이 커서, 변론종결 후 이런 자료가 새로 등장하는 경우가 다른 범죄유형보다 잦은 편입니다. 그만큼 이 시점에 법원이 지켜야 할 절차가 무엇인지가 실질적으로 중요해집니다.
변론재개는 법원의 재량인가, 의무인가 — 형사소송법 제305조
형사소송법 제305조는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직권 또는 검사,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신청에 의하여 결정으로 종결한 변론을 재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문언만 보면 재개 여부는 법원의 재량사항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이 재량이 사실상 좁아져 재개 의무에 가까워진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근거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에서 나옵니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적법절차의 원칙을, 제27조는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합니다. 형사소송법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검사와 피고인 양 당사자의 공격·방어활동으로 실체심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 법관이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기초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직접심리주의를 기본원칙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형사소송법 제307조의 증거재판주의(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와 제308조의 자유심증주의가 더해지면, 양형판단 역시 법정에서 검증된 자료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피고인에게는 형사소송법 제293조에 따라 증거조사 결과에 대한 의견진술 기회와 증거신청권이 절차적으로 보장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조사결과에 반박할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변론종결 후 불리한 새 자료가 나왔는데 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이 보장 자체가 형해화됩니다.
형사소송법 제305조의 변론재개는 문언상 법원의 재량이지만, 변론종결 후 피고인에게 불리한 새로운 양형자료가 나온 경우에는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사실상의 절차 의무로 작동한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 — 변론종결 뒤 나온 피해자 사망진단서
이 법리를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이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1도5777 판결입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치상)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피고인과 검사 모두 항소했고, 피고인은 항소심 변론종결일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항거불능 상태 여부와 인과관계를 다투는 데 집중했을 뿐 양형에 관한 별도 주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변론종결일에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런데 원심 판결선고를 앞두고 피해자의 변호사가 피해자의 사망진단서를 첨부해 "피고인의 2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엄벌에 처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원심 법원은 변론을 재개하지 않은 채 예정된 선고기일에 그대로 판결을 선고하면서, 판결이유에서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그 결과 양형기준상 권고형 범위(징역 5년~8년)를 넘어선 징역 9년이 선고됐습니다. 1심 대비 형량이 두 배 이상 뛴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조치를 위법하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피해자의 사망 사실과 이 사건 범행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공판과정에서 어떤 공방도 이뤄진 적이 없는데, 원심이 이를 새로 심리하지 않고 서면 하나로 단정해 형벌가중적 양형조건으로 삼았다는 것이 핵심 이유였습니다.
왜 위법인가 — 방어권과 증거재판주의가 요구하는 절차
대법원이 제시한 논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방어권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93조·제294조가 보장하는 의견진술권과 증거신청권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가 나오면 그에 반박하거나 반대 증거를 낼 기회가 있어야 실질적 의미를 갖습니다. 변론재개 없이 서면 하나로 사실관계를 확정해버리면 이 권리가 애초에 행사될 여지조차 없어집니다.
둘째는 증거재판주의와 공판중심주의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을 증거에 의하도록 정하고 있고, 판례가 채택한 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는 그 증거가 법관 면전에서 직접 조사된 것이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2021도5777 사건에서 원심이 문제 삼은 것은 정확히 이 지점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사망과 범행 사이의 인과관계는 그 자체로 사실인정에 해당하는데, 이를 공판정에서 검증하는 절차 없이 사망진단서라는 서면만으로 단정해버린 것입니다.
셋째는 절차적 세부 장치입니다. 형사소송규칙 제132조의2 제2항은 정상에 관한 증거를 신청할 때 취지를 명시하도록 하고, 같은 규칙 제134조의11 제2항·제3항은 피해자의 의견진술을 갈음하는 서면을 제출받으면 피고인에게 그 취지를 통지하고 공판정에서 명확히 하도록 정합니다. 이런 장치들이 이미 마련돼 있는데도 이를 건너뛰고 곧바로 선고에 이르렀다는 점이 원심의 잘못으로 지적됐습니다.
변론종결 후 검사나 피해자 등에 의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새로운 양형조건 자료가 제출됐다면, 사실심법원은 변론을 재개해 피고인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주는 등 필요한 양형심리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성범죄 항소심에서 흔히 벌어지는 장면들
변론종결 후 새 자료가 나오는 상황은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피해자 측이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철회하거나, 반대로 합의서를 뒤늦게 제출하는 경우
피해자의 치료경과가 악화되거나 새로운 진단서·소견서가 제출되는 경우
검사가 변론종결 후 구형을 상향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는 경우
피고인의 재범이나 유사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 관련 자료가 접수되는 경우
이 중 모든 경우가 변론재개 의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이 강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새로운" 양형조건입니다. 이미 공판과정에서 충분히 다퉈진 사정을 정리한 서면이거나, 검사의 단순한 구형 의견처럼 새로운 사실관계를 담고 있지 않은 자료라면 그 자체만으로 재개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판단의 무게중심은 그 자료가 판결이유에서 실제로 가중 또는 감경의 핵심 근거로 쓰였는지, 그리고 공판과정에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인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변호인 입장에서는 변론종결 후 접수되는 서면의 존재 자체를 놓치지 않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서면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선고기일을 맞으면, 판결이유를 보고서야 뒤늦게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변론재개 없이 선고됐다면 — 상고이유와 파기환송 이후
변론재개 없이 불리한 자료가 그대로 반영돼 선고된 판결은 상고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1호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를 상고이유로 정하는데, 2021도5777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변론재개 절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고 이 잘못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 이 조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절차위반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자동으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불리한 자료가 판결이유에서 실제로 형을 가중하는 핵심 근거로 명시됐는지, 그리고 그 부분이 없었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개연성이 있는지가 함께 판단됩니다. 2021도5777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사망 사실 외에 1심과 항소심 사이에 다른 양형조건 변경이 거의 없었고, 판결이유에서도 이 사정을 형벌가중의 핵심 근거로 명시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파기 사유로 인정됐습니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 절차는 원심법원으로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변론재개를 거쳐 문제된 자료에 대해 피고인 측이 의견을 진술하고 필요하면 반박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갖게 되며, 법원은 이를 반영해 다시 양형을 판단하게 됩니다. 파기환송 후에도 결과적으로 형이 다시 올라갈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방어할 기회는 확보됩니다.
변호인과 피고인이 변론종결 전후로 챙겨야 할 점
이런 절차 위반을 사전에 막거나 사후에 다투려면 몇 가지 실무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변론종결 후에도 재판부에 상대방이 제출한 서면이 있는지 기록 열람·등사로 주기적으로 확인할 것
이례적으로 새 자료가 접수된 정황이 파악되면 형사소송법 제305조에 따라 변론재개 신청서를 직접 제출할 것(신청권자에 피고인·변호인도 포함된다)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선고됐다면, 판결이유에서 그 자료가 가중 또는 감경 근거로 명시됐는지 확인할 것
상고이유를 구성할 때는 변론종결일자·문제 서면의 접수일자·판결 선고일자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절차위반의 경위를 분명히 밝힐 것
변론재개 신청 자체가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청이 기록에 남아 있으면 이후 상고이유를 구성할 때 법원이 문제를 인식하고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됩니다. 신청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사후 다툼의 국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변론재개는 피고인 쪽에서도 신청할 수 있나요?
A. 형사소송법 제305조는 신청권자로 검사·피고인·변호인을 모두 정하고 있어, 변론종결 후 상대방이 제출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피고인이나 변호인도 변론재개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개 여부는 법원의 결정 사항이라 신청만으로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Q. 검사가 변론종결 후 구형만 서면으로 올리는 경우도 위법인가요?
A. 구형 자체는 양형에 관한 검사의 의견 진술일 뿐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자료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 곧바로 변론재개 의무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형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판결의 사실판단·양형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자료 그 자체입니다.
Q. 이 법리는 항소심에만 적용되나요?
A. 대법원이 밝힌 법리는 '사실심'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1심과 항소심 모두에 적용됩니다. 1심 변론종결 후에도 검사나 피해자 측이 불리한 새 자료를 제출하면 같은 절차적 보장이 필요합니다.
Q. 변론재개 없이 선고된 판결은 무조건 파기되나요?
A. 절차위반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자동으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고, 그 잘못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돼야 상고이유가 됩니다. 새로운 자료가 실제로 가중 또는 감경의 핵심 근거로 판결이유에 적시됐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Q. 반대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가 변론종결 후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A. 이 법리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자료를 전제로 한 것이라, 유리한 자료가 나온 경우까지 법원에 재개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법원이 재량으로 변론을 재개해 반영하는 것은 가능하고, 이를 신청하는 것 자체는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Q. 변론재개 신청이 기각되면 더는 다툴 방법이 없나요?
A. 변론재개 신청 기각 자체를 독립적으로 다툴 방법은 마땅치 않지만, 이후 선고된 판결에서 그 미반영된 사정이 실제로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면 상고이유로 다시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변론재개는 조문만 보면 법원의 재량사항이지만, 변론종결 후 피고인에게 불리한 새로운 양형조건 자료가 나온 상황에서는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절차로서 사실상 거쳐야 할 단계가 됩니다. 성범죄 사건처럼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이 양형에 미치는 비중이 큰 유형일수록, 변론종결 후에 나오는 자료를 법원이 어떻게 다루는지가 형량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재판이 끝났다고 안심하기보다, 선고기일 전까지 상대방이 어떤 자료를 제출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변론재개를 직접 신청하는 것이 방어권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수원고등법원이나 수원지방법원 형사항소부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경우에도 이 원칙은 다르지 않으므로, 변론종결 이후의 절차를 세심하게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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