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사기나 횡령 사건에서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피의자·피고인 측이 피해자에게 한꺼번에 갚기 어렵다며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나눠 갚겠다는 분할 변제 합의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피고인분들 중 상당수는 “일단 합의서에 도장만 찍어 놓으면 재판부가 알아서 선처해 줄 것이다”,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나눠 갚겠다고 약속만 해도 진정성은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합의서 작성 자체에만 힘을 쏟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고 결과를 받아보면, 기대만큼 형이 줄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법원의 실무는 사기·횡령 양형기준에 따라 합의서라는 서면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얼마나 확실하게 피해가 회복되었는지를 기준으로 감경 폭을 엄격히 구분하는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분할 변제 합의서가 어떤 경우에 실제로 양형에 반영되고, 어떤 경우에는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는지, 그리고 합의서를 준비할 때 무엇을 함께 갖춰야 하는지 양형기준과 관련 법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분할 변제 합의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형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합의서는 재판부가 참작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일 뿐, 서면의 존재 자체가 감경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그리고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분할 변제 합의서는 이 중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하는 여러 사정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 자체가 독립된 감경사유로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합의서 한 장을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형이 낮아진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재판부가 실제로 살피는 것은 서면의 형식이 아니라 그 이면의 실질입니다. 언제,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갚기로 했는지, 그리고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함께 봅니다.
특히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처벌이 더 무거워질 것을 걱정한 피해자가 사실상 궁박한 상태에서 서명한 합의서, 혹은 구체적인 지급 시기나 금액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성실히 갚겠습니다” 정도의 문구만 담긴 합의서는, 재판부가 형식적인 것으로 보고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분할 변제를 약속했다는 사정은 이미 성립한 범죄사실 자체를 지우지 못합니다. 대법원은 업무상횡령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법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업무상횡령죄에서의 불법영득의 의사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반하여 보관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과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를 말하고, 사후에 이를 반환하거나 변상, 보전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도3399 판결).
즉 나중에 분할로라도 갚겠다는 다짐이 있었다는 사정은, 범죄가 이미 완성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 다짐이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오직 형을 정하는 단계, 즉 양형뿐입니다.
분할 변제 합의서는 참작 자료의 출발점일 뿐, 그 자체가 형을 깎아주는 문서는 아닙니다.
2. 재판부는 합의서보다 ‘얼마나, 얼마나 확실하게’ 회복됐는지를 봅니다
사기·횡령 양형기준은 ‘실질적 피해회복’과 ‘상당한 피해회복’을 나누어 감경 폭을 다르게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사기범죄 및 횡령·배임범죄 양형기준은 피해회복 정도를 두 단계로 구분합니다. 형을 크게 낮추는 특별감경인자로는 ‘실질적 피해회복(공탁 포함)’을, 상대적으로 완화된 일반감경인자로는 ‘상당한 피해회복(공탁 포함)’을 각각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실질적 피해회복’은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끝에 합의에 준할 정도로 피해를 회복시켰거나, 그 정도의 회복이 확실시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재산적 피해만 있는 사건이라면 대체로 손해액의 상당 부분, 실무상 약 3분의 2 이상에 이르는 회복이 있어야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다뤄집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보면, 분할 변제 합의서만 작성되어 있고 아직 실제로 지급된 금액이 없는 단계라면 원칙적으로 ‘회복’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특별감경인자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부동산 담보 제공, 급여나 퇴직금에 대한 압류·양도 동의, 신뢰할 수 있는 연대보증인 확보처럼 이행이 사실상 확실시된다고 볼 만한 구체적 장치가 함께 갖춰졌다면, 그 정도에 따라 예외적으로 고려될 여지가 있습니다.
공탁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공탁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실질적 피해회복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그 공탁금을 받아갈 의사가 있는지, 피고인이 법령상 공탁금을 되찾아갈 수 있음에도 회수하지 않을 것인지, 피해 법익의 성질과 규모는 어떠한지를 함께 살펴 실질적 피해회복에 해당하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종이 위의 약속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확실하게 돈이 돌아왔는지가 감경 등급을 가릅니다.
3. 이행 가능성이 없는 분할 계획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변제 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반성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만듭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소득·자산·기존 채무 상황을 함께 살펴, 제시된 분할 계획이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지를 검토합니다. 고정 수입이 뻔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매달 큰 금액을 갚겠다고 제시하는 계획은, 실제 이행보다 재판을 넘기기 위한 임기응변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합의한 분할 변제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체로 집행유예가 곧바로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행유예의 취소·실효는 형법이 별도로 정한 사유, 즉 유예기간 중 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확정되는 경우 등에 한합니다. 그러나 약속한 변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피해자가 별도의 민사소송이나 강제집행에 나서는 등 분쟁이 재점화되고, 이는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또한 이행을 담보할 장치, 예를 들어 지급기일을 넘기면 즉시 잔액 전부를 갚기로 하는 기한이익 상실 조항이나 연대보증, 담보 제공 없이 “성실히 갚겠습니다”라는 문구만 담긴 합의서는, 실무에서 진지한 노력의 증거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행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장치가 있는지가 합의서의 무게를 좌우합니다.
지킬 수 없는 계획을 종이에 옮겨 적는 것만으로는, 재판부의 신뢰도 반성의 진정성도 얻기 어렵습니다.
4. 이득액에 따른 처벌 구간 자체는 변제로 바뀌지 않습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가중처벌 구간은 범행 당시 이득액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사후 변제는 그 구간 자체를 낮추는 사유가 아닙니다.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 제355조·제356조의 횡령·업무상횡령죄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어,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이 적용 여부는 범행 당시 취득한 이득액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이후 분할 변제 합의나 일부 이행으로 이득액 자체가 소급해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무상 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구간 안에서도 처단형의 하한과 상한 사이에서 구체적인 선고형을 정할 때, 그리고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지를 판단할 때 피해회복 정도를 중요한 사정으로 고려합니다. 즉 변제는 적용되는 법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해도, 그 법조 안에서의 구체적인 형량과 집행유예 여부에는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사기나 횡령 유용은 초기에는 소액으로 시작되더라도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반복되며 포괄일죄로 묶여 합산 이득액이 커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분할 변제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는 이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구간에 들어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5. 분할 변제 합의서, 이렇게 준비해야 실제로 힘을 받습니다
고소·수사부터 재판까지, 합의서를 언제·어떻게 제출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집니다.
사기·횡령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및 수사 → ②피의자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분할 변제 합의서는 이 중 어느 단계에서 제출하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데, 수사 초기에 제출된 구체적이고 이행 가능한 계획일수록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여부 판단에서도, 이후 재판 단계의 양형에서도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합의서를 준비하기 전에는 감정적으로 서둘러 서명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실행 가능성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피고인의 소득·자산·기존 채무 현황을 정리해, 제시하려는 분할 금액과 기간이 실제로 감당 가능한지 확인합니다.
담보 제공, 연대보증, 기한이익 상실 조항 등 이행을 뒷받침할 장치를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반영합니다.
지급 시기·금액·계좌를 명확히 특정하고, 실제 입금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 내역(계좌이체 확인증 등)을 별도로 보관합니다.
이러한 준비를 갖춘 뒤 사기·횡령 사건 대응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합의서 문구와 제출 시점을 조율한다면, 서면 한 장이 아니라 실제로 반영되는 양형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며
분할 변제 합의서를 두고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은,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마음에 합의서 문구 하나하나보다 “일단 서명부터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조급함을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를 입은 쪽에서는 분할로라도 받겠다고 응하기 전에, 그 계획이 실제로 지켜질 수 있는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를 합의서에 미리 담아두는 것이 이후 분쟁을 줄이는 길입니다.
반대로 변제 의무를 지게 된 쪽에서도 “합의서만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는 재판부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계획인지, 그 이행을 담보할 장치가 있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저는 사기·횡령 사건에서 피해를 회복하려는 쪽과 변제 계획을 준비해야 하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분할 변제’라는 단어도 그 안에 담긴 구체성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합의서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양형이 달라질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분할 변제 합의서만 제출하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나요?
A. 합의서 자체만으로 집행유예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재판부는 이득액, 범행 경위, 실제 이행된 금액과 함께 계획의 이행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Q. 아직 한 푼도 갚지 못했는데 합의서라도 내면 도움이 되나요?
A.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 피해회복으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담보 제공 등 이행이 확실시되는 구체적 사정이 함께 있다면 일부 참작될 여지가 있습니다.
Q.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데, 분할 변제로 그 적용을 피할 수 있나요?
A. 어렵습니다. 가중처벌 여부는 범행 당시 취득한 이득액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사후 변제로 그 이득액 자체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같은 구간 안에서의 구체적 형량과 집행유예 여부에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피해자가 분할 변제에 합의했다가 나중에 번복하면 그 합의서는 무의미해지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합의서가 작성된 사실과 그때까지 실제 이행된 금액은 여전히 양형 자료로 남습니다. 다만 번복 이후에도 계획대로 이행을 계속했는지가 함께 평가됩니다.
Q. 공탁을 하면 분할 변제 합의서보다 무조건 유리한가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탁도 피해자의 수령 의사, 피고인의 회수청구권 포기 여부 등을 살펴 실질적 피해회복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므로, 형식만 갖춘 공탁은 기대만큼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Q. 변제 계획을 세울 때 변호사와 상담해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요?
A.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이 가장 좋습니다. 지급 시기·금액·이행 담보 장치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그 합의서가 양형에서 갖는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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