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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스캠 계좌 대여, 사기방조 혐의없음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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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스캠 계좌 대여, 사기방조 혐의없음 사례 

유수빈 변호사

혐의없음

봉투 안을 몰랐던 사람은 공범이 아니다

로맨스스캠에 속아 계좌를 빌려준 자영업자, 사기방조·범죄수익은닉 혐의없음까지

피해자가 피의자가 된 사건,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저도 피해자예요, 변호사님."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은 꼭 쥐어져 있었다.

피해자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된 이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40대 초반의 H씨였다.

지방 소도시에서 혼자 살며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혼 후 몇 년을 혼자 지내던 어느 날, SNS 메신저로 낯선 연락이 왔다.

상대방은 유명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몇 달 동안 다정한 메시지가 이어졌고, H씨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것이 로맨스스캠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H씨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건은 그다음부터였다.

상대방은 "해외에 묶여 있는 돈을 국내로 옮겨야 하니 계좌를 빌려달라"고 했다.

H씨는 그 말을 믿고 계좌를 내주었다.

그 계좌로 다른 피해자들의 돈이 들어왔다. H씨는 상대방의 지시대로 그 돈을 가상화폐로 바꿔 전송했다.

몇 달 뒤, 경찰의 연락이 왔다.

혐의는 사기방조와 범죄수익은닉이었다.

그 순간 H씨는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봉투를 전달한 사람이 모두 공범은 아니다

나는 H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 봉투를 건네며 저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봉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모른 채 전달했다면, 그 사람은 심부름꾼입니다.

범죄를 도운 사람이 되려면, 그 봉투에 범죄와 관련된 것이 들어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알면서 건넸어야 합니다."

【형법 제32조 (종범)】

①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형법 제347조 (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범죄수익등의 은닉 및 가장)】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범죄수익등의 취득 또는 처분에 관한 사실을 가장한 자

  2. 범죄수익의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한 자

  3. 특정범죄를 조장하거나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으로 가장할 목적으로 범죄수익등을 은닉한 자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범행을 돕는다는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다.

범죄수익은닉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옮긴 돈이 범죄로 생긴 돈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인식은 확실하게 알았던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혹시 범죄에 쓰이는 것 아닐까" 하고 짐작하면서도 그대로 한 경우, 즉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인정될 수 있다.

계좌를 빌려준 사람들이 실제로 처벌받는 사건 상당수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질문은 하나였다.

H씨는 정말 몰랐는가, 아니면 짐작하면서도 눈을 감았는가.

나는 수개월의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H씨와 상대방이 몇 달에 걸쳐 나눈 메신저 대화 전체를 읽는 것이었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이런 기록에서 "알고 있었다"는 흔적을 찾는 쪽에 있었다.

이번에는 같은 기록을 반대편에서 읽었다. H씨가 봉투 안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어디에도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대화에 드러난 것은 범행을 공모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아니었다.

상대방은 "My love", "Baby"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연인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H씨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돈을 옮기는 이유도 처음부터 끝까지 "해외에 묶인 돈"이라는 설명뿐이었다.

결정적인 사정이 하나 더 있었다.

H씨 자신도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수천만 원을 직접 보냈다는 점이다.

봉투를 전달하면서 자기 돈까지 같은 봉투에 넣은 사람이, 그 봉투가 범죄에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돈의 흐름도 확인했다.

계좌에 들어온 돈은 모두 상대방의 지시대로 가상화폐로 바뀌어 전송되었다.

H씨가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챙기거나 따로 빼돌린 흔적은 없었다.

H씨는 범죄 전력이 없었고, 오랜 기간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이 사정들을 하나로 엮어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검찰의 결론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었다

검찰은 2025년, 사기방조와 범죄수익은닉 두 혐의 모두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대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H씨가 사기 범행임을 인식할 만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히려 H씨가 상대방과 연인처럼 대화를 나누었고, 자신도 상당한 금액을 보낸 로맨스스캠의 피해자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H씨가 수수료 명목으로 이득을 얻은 자료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 오랜 기간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온 점도 함께 참작됐다.

그리고 그 밖에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봉투를 건넨 사람은 끝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로맨스스캠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게 됐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상대방과의 대화 기록과 송금 내역을 그대로 보존하라.

메신저 대화, 통화 내역, 내가 보낸 돈의 기록은 내가 속았다는 사정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부끄럽거나 불리해 보인다는 이유로 지우면, 나를 설명해 줄 맥락까지 함께 사라진다.

② 내가 입은 피해도 함께 정리하라.

내가 상대방에게 보낸 돈이 있다면 그 자체가 피해 사실이다.

피해 신고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변호인과 함께 정하는 것이 좋다.

③ 돈의 흐름과 이득 여부를 정확히 정리하라.

얼마가 들어왔고, 누구의 지시로, 어디로 보냈는지, 그 과정에서 받은 돈이 있는지를 날짜별로 정리해야 한다.

이 부분은 "알았는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④ 첫 조사 전에 반드시 변호사와 진술 방향을 점검하라.

로맨스스캠 사건은 피해자와 가담자의 경계가 흐릿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했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미필적 인식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⑤ 불기소 결정 뒤에도 절차가 남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고소인은 불기소 결정에 항고할 수 있고,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정신청을 할 수도 있다.

불기소 결정이 곧 사건의 끝은 아니므로, 이후 절차까지 대비해 두어야 한다.

⑥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계좌를 빌려주지 마라.

어떤 사연이 붙어 있더라도, 내 계좌를 다른 사람의 돈이 지나가는 통로로 내주는 순간 그 책임을 따지는 절차가 시작될 수 있다.

속은 사람이 다시 속았다고 설명해야 하는 일

불기소 결정이 나던 날, H씨가 내게 물었다.

"변호사님,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나요?"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적지 않다고.

마음을 연 대가로 돈을 잃고, 그 돈을 잃은 방식 때문에 다시 수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H씨는 한 번 속았고, 그 뒤로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수사기관 앞에서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 과정이 그에게는 사기를 당한 것만큼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범죄의 증명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내가 남긴 기록이 나를 대신해 말해주어야 할 때가 많다.

속았다는 사실은 말보다 기록으로 전해질 때 훨씬 분명해진다.

로맨스스캠과 관련해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혼자 해명하려 하지 말고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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