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의심'은 '확진'이 아니다
술자리 후 강제추행·준강간미수 고소, 두 혐의 모두 불송치(혐의없음)까지
성범죄 혐의 두 개를 한꺼번에 받은 직장인의 사건,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저 이거 진짜 억울합니다."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얼굴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억울하다는 말은 짧았지만, 그 말 뒤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P씨였다.
IT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회사 생활에 충실했고, 사생활도 조용한 편이었다.
그런 그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로 강제추행과 준강간미수 혐의로 고소를 당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것도 성범죄 혐의 두 개를 한꺼번에 받은 상태였다.
사건은 지인들과의 늦은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일행 중 한 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P씨와 고소인 사이에 신체 접촉이 있었다.
P씨는 서로 호감이 있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일이라고 했다. 고소인은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에 술자리가 끝난 뒤 고소인이 잠든 상태에서 추가적인 성적 시도가 있었다는 혐의까지 더해졌다.
경찰은 두 혐의 모두에 대해 정식 수사를 시작했다.
검사 결과지의 한 줄로 진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나는 P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성범죄 수사는 여러 검사를 종합해 진단을 내리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검사 하나에서 '양성 의심'이 나왔다고 곧바로 확진하지 않아요.
다른 검사 결과와 맞춰 보고, 검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따지고, 전체 소견을 종합해야 결론이 납니다."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강제추행죄나 준강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
【형법 제300조 (미수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및 제299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준강간은 강간죄의 예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되는 무거운 범죄다. 미수에 그쳤더라도 처벌 대상이 된다.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추행 행위와 그에 대한 고의가 증명되어야 한다.
준강간죄는 여기에 더해, 피해자가 당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고 행위자가 그 상태를 이용했다는 점이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형사절차에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검사 결과지에 "양성 의심"이라고 적혀 있어도, 다른 검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확진할 수 없다.
"의심"과 "확신"은 전혀 다른 진단이다.
나는 수사기록을 거꾸로 읽었다
나는 수사기록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수사기관이 혐의를 향해 쌓아 올린 자료를, 반대 방향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 변호인의 일이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기록을 쌓는 쪽에 있었다. 그래서 어느 지점이 단단하고 어느 지점이 비어 있는지 비교적 빨리 보인다.
이 사건의 핵심 자료는 두 가지였다.
P씨와 고소인이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그리고 폴리그래프(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였다.
메신저 대화는 오히려 P씨에게 유리한 자료였다.
술자리 전후의 대화에는 두 사람이 서로 가벼운 스킨십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분위기였다는 점이 드러나 있었다.
P씨가 사건 이후 고소인에게 먼저 그날 일을 꺼내며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한 대목도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P씨의 인식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주목했다.
폴리그래프 결과도 한쪽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P씨의 일부 진술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소인의 진술 가운데 일부 항목도 검사 결과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폴리그래프 결과는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려면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하고, 요건을 갖추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자료 정도로 다뤄진다.
양쪽 결과가 모두 흔들린다면, 그 결과만으로 어느 한쪽의 진술을 확정할 수는 없다.
결정적인 쟁점은 "항거불능 상태"였다.
고소인은 술자리 이후 잠든 상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일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그때 고소인이 판단 능력을 잃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잠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줄 객관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준강간죄의 핵심 요건은 짐작이 아니라 증거로 증명되어야 한다.
경찰의 결론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었다
경찰은 2025년, 강제추행과 준강간미수 두 혐의 모두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5에 따라,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것이다.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사정이 고려됐다.
두 사람이 사건 이전부터 가벼운 신체 접촉을 허용할 만큼 서로 호감을 가진 사이였다는 점이 있었다.
사건 이후에도 일행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는 점도 있었다.
그리고 P씨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다른 증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양성 의심"이라는 한 줄이 있었지만, 다른 검사 결과들이 그 결론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준강간미수 혐의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점의 기억이 없다는 고소인의 진술 자체는 믿을 만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고소인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 상태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료가 부족했고,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P씨의 진술을 배척할 만한 증거도 충분하지 않았다.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했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경찰 조사 전에 반드시 변호사와 먼저 사건을 검토하라.
첫 진술은 이후 모든 수사와 재판의 기준점이 된다.
기록에 한번 남은 진술은 나중에 바로잡기 어렵다.
② 메신저·통화 기록을 지우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라.
사건 전후의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와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핵심 자료다.
불리해 보이는 부분을 지우면 유리한 맥락까지 함께 사라지고, 삭제 사실 자체가 불리한 정황으로 비칠 수 있다.
③ 폴리그래프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다고 포기하지 마라.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그 자체로 유죄를 증명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떤 항목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상대방 결과와는 어떻게 다른지 변호인과 함께 분석해야 한다.
④ 고소인에게 직접 연락하지 마라.
해명이나 사과를 하려는 연락도 2차 피해나 합의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필요한 소통은 변호인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⑤ 불송치 결정 뒤에도 절차가 남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고소인은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이 있으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다.
검사가 기록을 검토한 뒤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불송치 결정이 곧 사건의 끝은 아니므로, 이후 절차까지 대비해 두어야 한다.
'혐의없음' 한 줄이 돌려주는 것과 돌려주지 못하는 것
불송치 결정이 나던 날, P씨가 내게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나는 경찰 단계의 결론은 나왔지만, 고소인의 이의신청 가능성까지는 함께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의 표정은 끝내 완전히 밝아지지 않았다.
수개월의 수사, 직장에서 받아야 했던 시선, 가족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날들.
그것은 "혐의없음"이라는 한 줄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었다.
성범죄 혐의는 고소장이 접수되는 순간부터 한 사람의 일상을 멈춰 세운다.
억울함은 억울하다고 외쳐서 증명되지 않는다.
기록을 읽고, 법리를 세우고, 증거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전달된다.
그 과정을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범죄 혐의로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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