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은 저절로 기울지 않는다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를 받은 전문직 종사자,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까지
혐의를 인정한 사건에서 기소 없이 마무리하기까지,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이게 알려지면 저는 끝입니다."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T씨였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뢰가 요구되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은 자격과 경력이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중요한 일도 앞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T씨는 혐의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내게 물은 것도 무죄가 아니었다.
"이 사건을 재판까지 가지 않고 끝낼 수 있습니까."
솔직히 쉽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촬영은 한 번이 아니었고, 피해자는 처벌을 원하고 있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소유예가 나오는 범죄가 아니다.
검사의 저울 위에는 무엇이 올라가는가
나는 T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기소유예는 검사가 저울을 들고 판단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한쪽에는 범행의 무게가 올라가고, 반대편에는 참작할 사정이 올라갑니다.
저울이 참작 쪽으로 기울어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결정이 나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반대편에 올릴 수 있는 것을 정직하게, 빠짐없이 올리는 겁니다."
먼저 범행 쪽 저울의 무게부터 정확히 알아야 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1항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정형이 가볍지 않고,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사건이 자동으로 끝나지 않는 범죄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형벌 외에 신상정보 등록 등 추가적인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반대편 저울에 무엇을 올릴 수 있는지는 법이 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47조 (기소편의주의)】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
【형법 제51조 (양형의 조건)】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기소유예는 법원이 아니라 검사가 이 사정들을 종합해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처분이다.
어느 한 가지 사정만으로 저울이 기울지는 않는다.
잘못의 인정과 반성, 피해 회복, 초범 여부, 생활환경, 재범 방지 의지가 함께 쌓여야 한다.
가장 무거운 추는 피해 회복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변호인을 통한 피해자 측과의 합의 교섭이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는 검사가 처분을 정할 때 매우 중요하게 보는 사정이다.
그러나 합의는 가해자 쪽 사정이 급하다고 해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정당했다.
나는 T씨에게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합의를 재촉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진심에서 나온 행동이라도 피해자에게는 또 하나의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과와 배상의 뜻을 전했다.
결국 피해자는 T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주었다.
서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검사 시절, 나는 수많은 의견서를 읽었다.
그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같은 사정이라도 어떻게 정리되어 전달되느냐에 따라 기록에서 읽히는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는 의견서를 제출한 데 그치지 않았다.
검사실을 직접 찾아 T씨의 사정을 설명했다.
나는 "선처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T씨가 잘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앞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도 함께 전했다.
T씨의 직업상 상황과 기소될 경우 받게 될 불이익도 사실대로 설명했다.
형법 제51조가 말하는 "환경"에 해당하는 사정이다.
T씨는 성폭력사범 재범방지 교육을 성실히 이수하겠다는 의지를 서면으로 밝혔다.
검찰의 판단은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였다
검찰은 T씨에게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성폭력사범 재범방지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검찰이 고려한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
범죄경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피해자와 합의하여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재범방지 교육을 성실히 이수하겠다고 다짐한 점
이 사정들이 함께 쌓였기에 저울이 기울 수 있었다.
사건은 재판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형의 선고도 없었다.
T씨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를 받고 있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사실관계부터 변호사와 정확히 검토하라.
모든 사건이 선처를 구할 사건은 아니다.
촬영 부위와 경위에 따라 범죄 성립 자체를 다툴 여지가 있는 사건도 있다.
방향을 먼저 정해야 첫 진술이 흔들리지 않는다.
②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마라.
사과나 합의를 위한 연락도 피해자에게는 압박이나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
합의 교섭은 변호인을 통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③ 촬영물을 임의로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마라.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제공하면 별도의 범죄가 된다.
기기와 파일을 어떻게 다룰지는 수사 절차에 맞게 변호인과 상의해야 한다.
④ 반성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라.
재범방지 교육 이수 서약, 상담 프로그램 참여처럼 확인할 수 있는 노력이 참작 사정이 된다.
⑤ 자신의 상황을 사실대로, 자료로 정리하라.
직업이나 가족관계, 기소될 경우의 불이익은 과장 없이 객관적인 자료로 정리해야 설득력을 가진다.
⑥ 기소유예 이후에도 조건과 남은 절차를 챙겨라.
기소유예는 형이 선고되는 전과는 아니다.
그러나 수사를 받은 기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 이수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사건이 다시 기소될 수 있다.
직업에 따라 형사처분과 별도로 징계나 자격 관련 절차가 진행될 수 있으므로 함께 대비해야 한다.
기소유예는 면죄부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다
처분 결과가 나온 날, T씨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문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기소유예는 무죄가 아니다.
그가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도 아니다.
그 잘못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회복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에 주어진 기회다.
그 기회를 지키는 일은 이제 온전히 T씨의 몫이다.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는 한순간의 행동이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을 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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