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집을 허물지 않고도, 균열을 만든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혼 없이 제기한 상간자 위자료 청구, 2,000만 원 인용까지
미성년 자녀 둘을 둔 아내의 상간소송,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저 이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 여자한테 책임을 묻고 싶어요."
그녀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늦은 밤이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겨우 집을 나섰다고 했다.
눈 아래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손에 쥔 휴대전화에는 남편의 메신저 대화 캡처가 가득했다.
그 화면을 내게 내밀 때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A씨였다.
2019년 말 혼인신고를 했고, 그 사이 두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는 이제 막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둘째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남편은 영업직이라 지방 출장이 잦았다. 그런데 2025년 초부터 집에 들어오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이 바빠서"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A씨의 불안도 깊어졌다.
균열은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됐다
남편은 A씨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업무용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 2025년 3월경, 갑자기 본인 명의의 새 기기로 바꿨다.
누가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A씨에게는 분명한 신호였다.
나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 생긴 균열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벽지 위의 가느다란 선처럼 보여요.
그런데 그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결국 집의 구조 자체가 흔들립니다."
A씨는 그 균열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방 B씨가 남편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제를 이어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것이 이 사건의 출발점이었다.
집을 허물지 않아도 균열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다
A씨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이혼하지 않고 상간소송만 해도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배우자와의 이혼 청구와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서로 별개의 청구다.
집을 허물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해서, 그 집에 금을 낸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 청구의 근거는 민법상 불법행위 규정이다.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민법 제751조 제1항 (재산 이외의 손해의 배상)】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은 제3자가 부부 일방과 부정행위를 하여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하고, 배우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된다고 보았다.
(대법원 2014. 11. 20. 선고 2011므2997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 말하는 부정행위는 성관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부정한 행위를 간통보다 넓은 개념으로 보았다. 간통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부정한 행위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므68 판결)
그래서 이 사건의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B씨는 "알면서도" 그 관계를 이어갔는가.
다만 같은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반드시 함께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부부공동생활이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실질적으로 파탄된 뒤라면, 그 이후의 제3자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무너진 집에는 새로 금이 갈 벽이 없다는 뜻이다.
A씨의 경우 남편과 한집에서 두 아이를 함께 키우며 혼인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도 소송의 중요한 축이었다.
증거를 보기 전에, 증거를 얻은 경위부터 보았다
A씨는 많은 자료를 들고 왔다.
그러나 나는 자료의 내용보다 먼저 그 자료를 어떻게 얻었는지를 하나씩 물었다.
집에 난 균열을 찍은 사진이라도, 남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찍었다면 그 사진 때문에 오히려 내가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증거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휴대전화 잠금을 몰래 풀어 메신저를 열어보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문제될 수 있다.
내가 참여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몰래 붙이는 행위는 위치정보법 위반이 문제될 수 있다.
흔히 오해하는 것이 휴대전화 명의다.
휴대전화가 내 명의로 개통되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 기기를 쓰는 배우자의 메시지를 마음대로 열어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A씨와 함께 자료를 하나하나 따져보았고, 확보 경위에 문제가 없는 자료를 중심으로 소송을 준비했다.
합법적으로 모은 증거만이 법정에서 온전한 무게를 가진다.
균열의 깊이를 재는 일, 위자료 2,000만 원
나는 이 사건에서 위자료로 3,000만 원을 청구했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2,000만 원을 인정했다.
위자료는 정해진 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부정행위의 경위와 기간, 상대방이 기혼 사실을 알았는지, 혼인기간, 피해 배우자가 겪은 고통의 정도 등을 종합해 금액을 정한다.
균열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는지를 재는 일과 비슷하다.
이 사건에서 판단에 크게 작용한 사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린 두 자녀가 있었다는 점이다.
부정행위로 혼인공동생활이 흔들리면 직접적인 피해는 배우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아직 어린 자녀들이 자라는 환경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둘째, B씨가 남편에게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관계를 이어간 경위와 기간이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책임의 무게를 더했다.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상간소송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증거를 모으기 전에 수집 방법부터 점검하라.
휴대전화 몰래 열람, 대화 녹음, 위치 추적은 오히려 형사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명의가 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② 상대방이 "알았다"는 점과 혼인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을 함께 준비하라.
상대방은 기혼인 줄 몰랐다거나, 이미 부부 사이가 파탄 상태였다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모두를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하다.
③ 상대방의 집이나 직장에 찾아가 알리지 마라.
분노에서 나온 행동이라도 명예훼손,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으로 번질 수 있다.
책임은 소송이라는 공식 절차 안에서 묻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④ 시효와 이혼하지 않을 경우의 문제까지 함께 따져보라.
【민법 제766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②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전항과 같다.
또 상간자와 배우자는 함께 불법행위를 한 관계다. 상간자가 위자료를 지급한 뒤 배우자에게 그 부담 부분을 구상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려 한다면, 이 부분까지 미리 검토해야 한다.
판결은 금을 메워주지 못하지만, 금이 간 이유는 말해준다
판결문을 전하던 날, A씨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돈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인정해 줬으면 했어요."
법원의 판결은 그 인정이었다.
상대방이 잘못했고, A씨가 피해를 입었으며, 그 피해는 배상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안다. 법이 돌려줄 수 있는 것은 금전 배상과 법적 인정까지라는 것을.
무너진 신뢰, 두 아이 앞에서 삼켜야 했던 눈물, 뒤척이며 지샌 밤들은 판결문으로 되돌릴 수 없다.
금이 간 집을 허물지 않기로 한 선택도, 그 균열에 책임을 묻겠다는 선택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고민하고 있다면, 증거를 모으기 전에 먼저 수집 방법과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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