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로 치료가 길어졌다면,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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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실로 치료가 길어졌다면,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이유 

강대현 변호사

의료과실로 몸 상태가 더 나빠져 치료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는데도, 병원이 그 늘어난 치료비까지 그대로 청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애초에 병원 잘못으로 생긴 손해인데 그 치료비까지 자신이 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의료과실로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이후의 치료에 대해서는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반복해 판단해 왔습니다. 다만 모든 사후 치료가 자동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니고, 어느 시점부터의 치료가 손해배상의 일환으로 보아 진료비 청구 대상에서 빠지는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판단 기준과 실제 대응 방법을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의사의 진료의무 — 결과채무가 아니라 수단채무

진료계약의 법적 성질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가 의료인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료인이 이에 응하여 진료를 개시하면 그 사이에는 의료계약이 성립합니다. 의료인은 민법 제681조가 정한 수임인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에 준하여, 현재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맞는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를 다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의무가 질병을 반드시 치료해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진료했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수단채무라는 점입니다.

수단채무라는 성격 때문에, 의사가 주의의무를 다해 진료했음에도 질병 자체가 낫지 않았다면 병원은 여전히 정당하게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진료비 청구가 막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의사가 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그 과실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 경우입니다. 이때부터는 진료비 청구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의사의 진료의무는 질병을 고쳐낼 결과채무가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최선의 진료를 다할 수단채무다 — 이 구분이 진료비 청구 가능 여부를 가르는 출발점이다.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됐다면 — 그 이후 치료는 성격이 달라진다

대법원 1993. 7. 27. 선고 92다15031 판결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 사건은 척추결핵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이후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였고, 추가 수술을 거쳤음에도 회복하지 못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의사가 진료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의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경우, 그 손상 이후의 치료는 후유증세의 치유 또는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이는 본래 의미의 진료의무 이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은 그 이후의 치료를 병원의 정상적인 진료 제공이 아니라 사실상 손해배상의 일환으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병원의 과실로 생긴 손해를 관리하는 성격의 치료이므로, 그 비용을 환자에게 다시 청구하는 것은 병원이 스스로 초래한 손해를 환자에게 이중으로 전가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 구간의 수술비·치료비에 대해서는 병원의 진료비 청구권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손해배상채권과 진료비채권을 서로 상계해서 결과적으로 0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청구할 수 있는 채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의료과실로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이후의 치료가 후유증 관리 정도에 그친다면, 그 진료는 손해배상의 일환일 뿐 병원의 진료비 청구권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8년 입원, 미납 진료비 7억 2600만원 — 그래도 병원이 못 받은 이유

이 법리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1다28939 판결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사건 환자는 의료과실로 상태가 악화된 뒤 무려 8년 가까이 입원 치료를 이어갔고, 그 기간 병원 진료비가 7억 2,600만원 넘게 쌓였습니다. 병원은 이 미납 진료비를 환자 측에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병원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단의 근거는 병원이 애초에 진료계약상의 채무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데 있습니다. 의료과실로 이미 회복불가능한 손상이 발생한 이후에 이어진 8년의 입원 치료는, 병원이 부담하는 본래의 진료의무를 다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초래한 결과를 관리하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이 기간에 대응하는 진료비채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후 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7다288115 판결에서도 같은 법리가 다시 확인되면서, 의료과실 이후의 관리적 치료에 대해서는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실무상 확립됐습니다.

  • 92다15031 — 척추결핵 수술 후 하반신 마비, 회복불가능 손상 이후 치료의 진료비 청구 불인정(1993)

  • 2011다28939 — 8년 입원, 미납 진료비 7억 2,600만원 청구 배척(2015)

  • 2017다288115 — 같은 법리 재확인, 실무상 확립(2018)

진료비를 이미 냈다면 — 부당이득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병원이 소송을 걸어오기 전에 환자가 먼저 회복불가능 손상 이후의 치료비를 납부해 버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당장 퇴원이나 추가 진료가 걸려 있어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 같은 상황에서는 일단 납부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법리대로 그 구간의 진료비 자체가 원래 청구될 수 없는 것이었다면, 병원이 그 돈을 보유할 법률상 원인이 없으므로 민법 제741조에 따른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려면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의 치료가 회복불가능 손상 이후의 관리적 치료였는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진료기록 일체를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진료기록감정을 통해 손상이 고정된 시점과 그 이후 치료의 성격을 의학적으로 규명하는 절차가 뒤따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사실상 의료과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쟁점과 맞물리는 경우가 많아, 진료비 반환만 따로 떼어 청구하기보다는 손해배상청구와 함께 다루는 경우가 실무상 흔합니다.

모든 사후 치료가 면제되는 건 아니다 — 구별해야 할 지점

이 법리를 오해해서 의료과실이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그 이후 병원에서 받은 모든 치료가 무료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판례가 진료비 청구를 막는 대상은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이후, 그 손상 자체의 후유증을 관리하거나 악화를 막는 성격의 치료로 한정됩니다. 같은 입원 기간이라도 원래 앓고 있던 다른 질환을 별도로 치료했거나, 회복 가능한 손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회복이 늦어진 정도라면 그 부분의 치료비는 정상적으로 청구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논의는 의료과실 자체가 인정되어야 성립합니다.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서는 원칙적으로 환자 측이 의료인의 과실과 그로 인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의료행위의 전문성·밀실성 때문에 이 입증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기록 감정과 신체감정을 통해 회복불가능 손상이 발생한 시점과 그 원인이 의료진의 과실에 있다는 점이 함께 규명되어야, 비로소 그 이후 치료비에 대한 청구 배제와 이미 낸 돈의 반환청구가 함께 논의될 수 있습니다.

병원이 진료비 청구·지급명령을 보내온다면 — 대응 절차

실제로는 병원이 먼저 미납 진료비를 이유로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급명령을 받았다면 우선 이의신청 기간(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해서 사건을 통상의 소송절차로 넘겨야 합니다. 이의신청 기간을 놓치면 지급명령이 그대로 확정되어 버리므로, 진료비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기간 계산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소송으로 넘어가면 환자 측은 해당 치료비가 회복불가능 손상 이후의 관리적 치료에 해당한다는 점을 항변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진료기록 일체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이나 진료기록감정을 신청해, 손상이 언제 고정됐는지와 그 이후 치료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의학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반소나 별소로 함께 제기해, 진료비채권과 손해배상채권을 한 절차에서 다투는 방식도 자주 활용됩니다.

  • 지급명령 이의신청 기간(송달일로부터 2주)을 가장 먼저 확인

  • 진료기록 일체 확보 후 진료기록감정으로 손상 고정 시점 규명

  • 손해배상청구권을 반소·별소로 함께 제기해 한 절차에서 다투는 방안 검토

치료비 채권의 단기소멸시효 3년 — 병원이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의료과실 여부와 별개로, 진료비채권 자체에는 짧은 소멸시효가 걸려 있다는 점도 실무에서 중요합니다. 민법 제163조 제3호는 의사·조산사·간호사 및 약사의 치료, 근로 및 조제에 관한 채권을 단기소멸시효 대상으로 정해, 그 소멸시효 기간을 3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가 10년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짧습니다.

병원이 진료가 끝난 뒤에도 바로 청구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미납 진료비를 청구하는 경우, 이 3년의 기간이 이미 지났다면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으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간 입원치료가 이어졌던 사안에서는 초기 입원 구간의 진료비채권이 소송 시점 기준으로 이미 3년을 넘겼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회복불가능 손상 이후 치료비라는 항변과 별도로 소멸시효 완성 여부도 진료비 내역별로 따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의료과실이 있으면 그 뒤로 받은 진료는 전부 무료가 되나요?

A. 아닙니다. 진료비 청구가 막히는 것은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이후, 그 손상의 후유증을 관리하거나 악화를 막는 성격의 치료로 한정됩니다. 같은 기간이라도 다른 질환을 별도로 치료했거나 회복 가능한 손상이 늦게 나아진 경우라면 그 부분 치료비는 정상적으로 청구될 수 있습니다.

Q. 이미 낸 치료비를 나중에라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해당 구간의 진료비가 원래 청구될 수 없는 것이었다면, 병원이 그 돈을 보유할 법률상 원인이 없으므로 민법 제741조에 따른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구간이 관리적 치료였는지를 진료기록감정 등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Q. 병원에서 지급명령을 보내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다툴 여지가 있다면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해 사건을 소송절차로 넘겨야 합니다. 기간을 넘기면 지급명령이 그대로 확정되므로 기간 계산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Q. 의료과실 여부는 환자가 다 입증해야 하나요?

A. 원칙적으로 환자 측이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지만,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밀실성 때문에 진료기록감정·신체감정 등 전문가 감정을 통해 입증 부담을 보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오래된 진료비도 소멸시효로 안 낼 수 있나요?

A. 의사·간호사 등의 치료에 관한 채권은 민법 제163조 제3호에 따라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병원이 진료비를 오랫동안 청구하지 않았다면 그 기간이 지났는지 확인해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할 수 있습니다.

Q. 진료비 청구를 거부하면 병원과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요?

A. 진료비 지급 거부는 법적 근거가 있는 정당한 권리 행사이므로 그 자체로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향후 진료 연속성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감정을 통한 정리와 별개로 진료 지속 방안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맺음말

의료과실로 치료가 길어졌다고 해서 그 늘어난 치료비를 무조건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체기능이 회복불가능하게 손상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후의 치료가 후유증 관리에 그쳤다면 병원의 진료비 청구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이 반복해 확인한 법리입니다. 이미 낸 치료비도 부당이득으로 돌려받을 여지가 있고, 병원이 소송이나 지급명령으로 청구해 오더라도 진료기록감정을 통해 다툴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 법리가 성립하려면 의료과실 자체와 손상이 회복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점이 의학적으로 먼저 규명되어야 합니다. 진료기록을 미리 확보해 두고, 치료 경과와 청구된 진료비 내역을 시기별로 정리해 두는 것이 실제 다툼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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