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가 회사 이름으로 거래를 하다가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히면, 피해자는 대표이사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게 됩니다. 민법 제35조는 법인의 이사 기타 대표자가 직무에 관해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회사가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디까지가 '직무에 관한' 행위인지, 대표이사가 권한을 남용했거나 개인적 이익을 챙긴 경우까지 회사가 책임을 지는지는 사안마다 판단이 크게 달라집니다. 반대로 회사 입장에서는 대표이사의 모든 행위에 대해 무제한으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어서, 상대방이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회사가 책임을 면할 여지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회사가 민법 35조와 관련 상법 조항에 따라 대표이사의 불법행위에 배상책임을 지는 구체적 요건과, 반대로 책임을 면하거나 대표이사와 나눠지는 경우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회사가 배상책임을 지는 근거 — 민법 35조와 상법 389조의 관계
대표이사의 행위로 거래상대방이 손해를 입었을 때, 피해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조문이 민법 제35조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에게는 상법 제389조 제3항이 상법 제210조를 준용하여 직접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고, 민법 제35조는 상법에 별도 규정이 없는 법인, 즉 비영리법인·비법인사단 등 법인 일반에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그럼에도 두 조문이 실무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법원이 상법 제389조 제3항·제210조를 해석할 때 민법 제35조가 오랫동안 쌓아온 '직무관련성'과 '외형이론' 법리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로 회사가 책임을 지는지 판단하는 실질적인 틀은 민법 제35조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민법 제35조 제1항은 "법인은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이어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법인의 책임 외에 이사 기타 대표자도 배상책임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즉 회사가 책임을 진다고 해서 대표이사 개인이 책임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대표이사가 함께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상법 제210조 역시 "회사를 대표하는 사원이 그 업무집행으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회사는 그 사원과 연대하여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해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이 두 조문을 합쳐 보면 회사가 배상책임을 지기 위한 요건이 자연스럽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대표자 요건 — 등기된 대표이사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회사를 대표해 사무를 집행한 사람도 포함될 수 있음.
직무관련성 요건 — 문제된 행위가 외관상 객관적으로 직무에 관한 행위로 인정될 것.
불법행위 요건 — 민법 제750조가 정한 고의·과실, 위법행위, 손해, 인과관계가 모두 충족될 것.
회사가 대표이사의 행위로 배상책임을 지는 근거는 상법 제389조 제3항·제210조지만, 그 해석의 실질은 민법 제35조가 세워온 법리 그대로다.
'직무에 관하여'의 의미 — 외형이론과 대표자의 범위
세 요건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것이 '직무에 관하여'입니다. 이 요건의 해석기준을 최근 정리한 것이 대법원 2023. 6. 1. 선고 2020다9268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대표자의 행위가 외관상, 객관적으로 직무에 관한 행위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직무관련성을 충족한다고 보면서, 이를 판단할 때는 법인의 목적, 대표자의 통상적 업무와 문제된 행위 사이의 관련 정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사건 자체는 비법인사단 대표자에 관한 것이었지만, 민법 제35조의 법리는 법인 일반에 적용되는 것이어서 회사의 대표이사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같은 판결은 대표자의 행위가 대표자 개인의 사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거나 법령·정관에 위배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외관상 객관적으로 직무에 관한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면 여전히 '직무에 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회사 명의 계약서에 법인 인감을 찍고 거래를 진행했다면, 실제로는 대표이사 개인의 사업 확장을 위한 거래였더라도 외형상 회사의 업무로 보이므로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여지가 큽니다. 아울러 이 판결은 '법인의 대표자'에는 명칭이나 직위, 대표자로 등기되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당해 법인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사무를 집행하는 사람도 포함된다고 밝혔습니다. 등기부상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를 총괄해 온 사람(예: 명의상 대표는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경영을 지배해 온 사람)의 행위 역시 이 조항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표자의 행위가 외관상 객관적으로 직무에 관한 것으로 보이면, 실제 목적이 개인적 이익이었거나 법령·정관을 어겼더라도 회사는 책임을 진다 — 이것이 외형이론이다.
회사가 책임을 면하는 경우 — 상대방의 악의·중과실
외형이론이 회사에 불리하게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다229343 판결은 대표자의 행위가 직무에 관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해자 자신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는 회사의 불법행위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재확인했습니다. 즉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행위가 회사 업무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었거나(악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쉽게 알 수 있었을 상황(중과실)이었다면, 회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때 요구되는 '중과실'의 기준은 낮지 않습니다. 단순히 등기부나 정관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는 중과실이 인정되기 어렵고, 법원은 대체로 상대방이 사정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확인을 회피한 수준에 가까운 사정을 요구하는 경향입니다. 예컨대 대표이사가 회사 인감이 아니라 개인 도장을 사용했거나, 거래 내용이 회사 정관상 사업목적과 명백히 무관한 개인적 투자·사채업 성격이었거나, 거래상대방이 대표이사와 개인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사정을 몰랐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라면 회사의 책임이 부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회사 법인 인감이 아니라 대표이사 개인 도장·서명만 사용된 거래.
거래 목적이 회사 정관상 사업목적과 뚜렷하게 무관한 경우(개인 투자·사채 등).
상대방과 대표이사가 사적으로 매우 가까워 사정을 몰랐다고 보기 어려운 관계.
대표권을 남용한 거래 — 원칙은 유효, 예외적으로만 무효
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8059 판결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령 회사의 영리목적과 무관하게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 즉 개인적 이익을 위한 행위라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해 무효가 된다는 예외를 두었습니다. 이 법리는 앞서 본 직무관련성·외형이론과 짝을 이룹니다. 대표권남용 이론은 계약 등 법률행위의 효력을 다루고, 민법 제35조의 불법행위책임은 손해배상의 문제를 다루지만, 두 국면 모두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라는 동일한 저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회사 자금을 빼내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쓰기 위해 거래상대방과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한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상대방이 그 사정을 몰랐고 몰랐던 데 과실도 없었다면 계약은 유효하고 회사가 이행책임을 지며, 그 거래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대표이사 개인의 불법행위 문제와는 별도로 민법 제35조에 따른 배상책임도 논의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처음부터 대표이사의 개인적 자금 사정을 알고 거래에 응했다면, 회사는 계약의 효력 자체를 다툴 수 있고 나아가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이유도 크게 줄어듭니다.
회사와 대표이사, 누가 얼마나 책임지나 — 부진정연대책임과 구상권
회사가 민법 제35조나 상법 제389조 제3항·제210조에 따라 책임을 지더라도, 대표이사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이사는 민법 제750조에 따른 일반 불법행위책임을 별도로 지고, 회사와 대표이사는 피해자에 대해 부진정연대책임을 집니다. 피해자는 회사와 대표이사 중 누구에게든, 또는 양쪽 모두에게 손해 전액을 청구할 수 있고, 어느 한쪽이 배상하면 그 범위에서 다른 쪽의 책임도 함께 소멸합니다. 실무에서는 대표이사 개인보다 회사의 자산이 넉넉한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회사를 상대로 먼저 청구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회사가 먼저 피해자에게 배상했다면, 회사는 내부적으로 대표이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상법 제399조가 정한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구조와도 연결되는 지점으로, 대표이사 개인의 불법행위 때문에 회사가 대외적으로 배상한 금액은 결국 대표이사가 회사에 물어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구상권 행사가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니어서, 대표이사가 이미 퇴임했거나 재산이 부족한 경우 회사가 실제로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도 적지 않습니다.
회사와 대표이사는 부진정연대책임을 진다 — 피해자는 둘 중 누구에게든 전액을 청구할 수 있고, 회사가 배상하면 대표이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방어하려면 — 실무에서 챙겨야 할 자료
거래상대방으로서 회사에 배상을 청구하려는 입장이라면, 대표이사의 행위가 외형상 회사 업무로 보였다는 사정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확보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회사 명의 계약서, 법인 인감이 찍힌 문서, 대표이사 명함, 사업자등록증 사본, 거래 당시 대표이사가 회사 사무실이나 회사 명의 이메일·계좌로 업무를 처리했다는 정황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회사가 피해자로부터 청구를 받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행위가 직무와 무관하다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을 정리해두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상대방과 대표이사 사이의 개인적 관계, 거래 조건이 통상적인 회사 거래와 얼마나 달랐는지, 자금이 회사 계좌가 아니라 대표이사 개인 계좌로 흘러갔는지 여부 등이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됩니다.
거래상대방 측 — 회사 명의 계약서·법인 인감·명함·사업자등록증, 회사 사무실·계좌 이용 정황.
회사 측 — 상대방과 대표이사의 개인적 관계, 거래조건의 이상성, 자금 흐름이 개인 계좌로 향했는지 여부.
양측 공통 — 거래 당시 오간 이메일·문자·계약서 초안 등 시간순 기록을 최대한 남겨둘 것.
자주 묻는 질문
Q. 대표이사가 아니라 일반 이사나 임원의 행위도 회사가 책임지나요?
A. 민법 제35조·상법 제389조 제3항·제210조는 회사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의 행위를 전제로 합니다. 대표권이 없는 일반 이사나 임원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이 조항의 적용대상이 아니지만, 등기 여부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회사를 대표해 사무를 집행한 사람이라면 대법원 2020다9268 판결의 법리에 따라 포함될 수 있습니다.
Q. 대표이사가 퇴임한 뒤에 한 행위도 회사가 책임지나요?
A. 원칙적으로 대표이사 지위를 벗어난 뒤의 행위는 직무관련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퇴임 사실이 등기·공고되지 않아 거래상대방이 대표이사 지위를 신뢰할 만한 외관이 남아 있었다면, 상법 제395조의 표현대표이사 규정 등 다른 법리로 회사의 책임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Q.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회사 자체의 잘못을 따로 증명해야 하나요?
A. 회사 자체의 고의·과실이 아니라 대표이사의 고의·과실을 증명하면 됩니다. 민법 제35조·상법 제389조 제3항은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민법 제750조 요건 충족)를 전제로 회사에 책임을 지우는 구조이므로, 피해자는 대표이사에게 불법행위 요건이 충족됨을 증명하면 충분합니다.
Q. 대표이사 개인에게 배상능력이 없으면 회사에서는 못 받나요?
A. 아닙니다. 회사와 대표이사는 부진정연대책임을 지므로, 피해자는 대표이사의 배상능력과 무관하게 회사에 손해 전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회사 쪽 자산이 더 넉넉한 경우가 많아 회사를 상대로 청구하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Q. 대표권을 남용한 계약도 무조건 무효인가요?
A. 아닙니다. 대법원 97다18059 판결에 따르면 대표권 범위 내의 행위는 남용이라도 원칙적으로 유효하고,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 즉 개인적 이익을 위한 행위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Q. 회사가 먼저 배상한 뒤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회사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면 내부적으로 대표이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는 상법 제399조가 정한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과도 연결됩니다. 다만 대표이사의 재산 상태에 따라 실제 회수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맺음말
대표이사의 불법행위로 회사가 배상책임을 지는지는 결국 그 행위가 외관상 직무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회사에게는 무제한의 책임도 아니고 완전한 면책도 아닌,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가름 나는 문제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상대방이든 회사든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사정을 뒷받침할 자료를 평소에 정리해두는 것이 분쟁이 생겼을 때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수원·광교를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는 협력업체·거래처가 많은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어, 대표이사의 거래 행위를 둘러싼 분쟁이 실제로 자주 발생합니다. 대표이사 개인과 회사 중 누구를 상대로, 어떤 근거로 배상을 청구하거나 방어할지는 사안마다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 문제이니 초기 단계에서부터 꼼꼼히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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