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소송에서 이기려면 자료를 내야 하는데, 내면 고소를 당한다
공동주택 분쟁의 당사자들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동별 대표자 해임의 정당성을 다투는 가처분 사건에서, 입주자대표회의는 해임사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소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유가 '경비원과 관리직원에 대한 갑질'이라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대부분 CCTV 영상입니다. 그 영상에는 상대방의 얼굴이 찍혀 있고, 상대방은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제출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집니다. 제출하면 개인정보보호법위반으로 고소당합니다. 이 사건은 바로 그 상황에서 실제로 형사재판까지 간 사례이고, 1심과 2심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동주택 관리 현장에 매우 실용적인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 생각하여 1심과 항소심을 함께 정리합니다.
사건의 개요
문제의 아파트는 주택(아파트)과 준주택(오피스텔)로 구성된 주상복합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사무소와 오피스텔 입주자인 고소인 사이에 관리비 부과 등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2024년 1월 고소인의 오피스텔 동 대표자 지위를 해임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고소인은 해임 결의가 무효라며 동대표 지위확인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이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피고인 B)과 관리사무소 관리소장(피고인 A)은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고소인이 동대표로 입후보할 당시 학력 등을 허위로 기재하여 애초에 적법한 동대표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소인이 제출했던 후보자등록신청서를 첨부했습니다.
이어 2024년 2월 28일 심문기일에서 회장이 '고소인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을 하는 등 해임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CCTV 영상 등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하자, 재판부는 양쪽 당사자 모두 제출할 것이 있으면 다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심문을 종결했습니다. 그 후 피고인들은 CCTV 영상 캡쳐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고, 법원은 2024년 6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고소인은 이를 개인정보보호법위반으로 고소했고, 관리소장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혐의로, 회장은 그 사정을 알면서 제공받은 혐의로 각각 기소되었습니다.
1심 —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 무죄
1심 법원은 먼저 개인정보보호법의 원칙을 확인합니다.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등 법이 정하는 예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고(제17조, 제18조),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제59조).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의 증명이나 방어권 행사를 위하여 개인정보가 포함된 소송서류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습니다. 그 판단 기준으로 1심은 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3도3673 판결이 제시한 요소들을 인용합니다. 개인정보를 수집·보유하고 제출하게 된 경위 및 목적, 제출 상대방,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 제출인지 여부, 비실명화 등 안전성 확보 조치의 가능성과 조치 여부, 제출한 개인정보의 내용·성질(민감정보 여부)과 양, 침해되는 정보주체의 법익과 침해 정도, 다른 수단이나 방식의 존재 여부, 다른 방식을 취하지 않은 불가피한 사정의 유무 등입니다.
이를 적용하여 1심은 네 가지 사정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담당 재판부의 증거자료 제출 요구에 따른 것이어서 '재판부가 제출을 명한 자료'로서의 성격도 가진다는 점, 관리소장이 자료를 적법하게 보관하고 있었고 취득 과정에서 다른 법익 침해가 없었다는 점, 후보자등록신청서와 CCTV 사진에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 가입, 정치적 견해, 건강 및 성생활 등 민감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기본적인 인적 사항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라는 점, 법원이 자료를 물리적으로 보관하고 소송기록의 열람·복사 절차에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적용되므로 무관한 제3자에게 제공될 위험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검사의 항소 — 네 가지 반론
검사는 항소하며 상당히 정교한 논리를 폈습니다. 첫째, 개인정보보호법상 면책 규정이 형법상 정당행위 규정에 대해 '특별법' 관계에 있으므로 형법 제20조는 보충적으로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자치규약에 의한 느슨한 규제만 받을 뿐이어서 개인정보의 임의적 처분이나 활용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제출된 자료가 가처분사건에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핵심 자료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실조회 신청이나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통해 법원에 자료를 제출할 방법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네 번째 주장은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요소 중 '다른 수단이나 방식의 존재 여부'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어서 가볍게 볼 수 없는 반론이었습니다.
항소심 — 관리규약과 심문 경과를 더해 무죄를 유지하다
항소심은 원심이 인정한 사정에 여섯 가지를 보태어 무죄를 유지했습니다. 그 보강 논리가 이 판결의 실질적 가치입니다.
① 관리규약의 구체적 조항을 확인했습니다. 이 아파트 관리규약은 동별 대표자 및 임원의 해임사유로 '이 규약 및 선거관리 규정을 위반한 때'를 규정하고(제31조 제2항 제2호), '입주자 등은 공동주택 내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공동주택 내 괴롭힘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제89조의2). 후보자등록신청서에는 허위경력·허위학력 기재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도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② 고소인의 이른바 '갑질' 행위가 사실이라면 이는 관리규약 제89조의2 위반에 해당할 수 있고, 허위학력 기재는 '규약 및 선거관리 규정을 위반한 때'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CCTV 사진과 후보자등록신청서는 해임사유의 존재를 소명하는 자료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검사가 '필수 불가결한 핵심 자료가 아니다'라고 다툰 부분에 대한 정면 반박입니다.
③ 담당 재판부가 입주자대표회의에 고소인의 '해임사유 부존재'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서면과 소명자료를 2주 내에 제출할 것을 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재판부의 제출 명령이 있었다는 점이 정당행위 판단에서 상당한 무게를 가집니다.
④ 각 CCTV 사진의 증거가치를 개별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해임결의 이후에 촬영된 사진은 해임결의 당시의 갑질을 직접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이전 사진과 함께 지속적인 괴롭힘 행위를 추단케 하는 자료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⑤ 고소인이 관행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하여 오피스텔 문제에 관해 발언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그러한 지위의 존부는 아파트의 운영·관리와 직접 관련되어 주민을 포함한 다수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사안의 공적 성격을 인정한 것입니다.
⑥ 검사가 지적한 사실조회·문서제출명령이라는 대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처분사건의 당사자는 고소인과 입주자대표회의이고 자료는 피고인들 측에서 관리하고 있던 것이므로 무관한 제3자에게 제공될 위험성이 없어 보이는 점, 그 내용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그리고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필요한 가처분사건에서 절차의 반복으로 소송이 지연될 가능성도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덧붙여 항소심은 무죄의 근거조항을 정정했습니다. 원심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따랐으나,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는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이므로 제325조 전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잘못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실무상 세밀하지만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실무 기준 — 소송에 개인정보를 제출할 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이 사건은 무죄로 끝났지만, 무죄를 받기까지 피고인들은 1심과 항소심을 거쳐 약 2년 가까이 형사피고인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피하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두 판결에서 추출되는 실무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쟁점 관련성을 확보하십시오. 제출하려는 자료가 사건의 주된 쟁점을 직접 소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항소심이 관리규약 조항을 하나하나 확인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료 제출 시 준비서면에 '이 자료가 어느 쟁점의 무엇을 소명하는지'를 명시하는 습관이 곧 방어 논리가 됩니다.
둘째, 최소성을 지키십시오. 영상 전체가 아니라 필요한 시점의 캡쳐만, 필요한 인물만 제출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제출된 것은 두 장면의 캡쳐 사진이었습니다.
셋째, 비실명화 조치를 검토하십시오.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요소에는 '비실명화 등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의 가능성 및 조치 여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건과 무관한 제3자의 얼굴은 반드시 마스킹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정보주체 본인의 모습이 문제된 사안이라 마스킹의 실익이 없었지만, 통상의 사건에서는 이 조치의 유무가 결론을 가를 수 있습니다.
넷째, 재판부의 요구를 기록으로 남기십시오. 두 판결 모두 '담당 재판부가 제출을 명한 자료로서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고려했습니다. 심문기일에서 구두로 요구받았다면 조서에 남는지 확인하고, 남지 않는다면 이후 준비서면에 그 경위를 기재해 두어야 합니다.
다섯째, 보유의 적법성을 확보하십시오. 관리소장이 CCTV 영상을 적법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한 축이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운영, 관리규약이 정한 열람 절차, 영상 반출에 관한 내부 기준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위법하게 확보한 영상이었다면 정당행위 판단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맺으며
공동주택 분쟁은 이웃 사이의 다툼이면서 동시에 조직 운영을 둘러싼 다툼입니다. 그래서 민사 분쟁이 형사 고소로, 형사 고소가 다시 민사 분쟁으로 번지는 일이 흔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동대표 해임을 둘러싼 갈등이 가처분으로, 다시 개인정보보호법위반 형사재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두 판결은 '소송에서 필요한 자료를 법원에 내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정당행위로 보호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 보호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관련성·최소성·안전조치·경위라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자료를 내기 전 30분의 검토가 2년의 형사절차를 막습니다.
공동주택 분쟁,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동대표 해임, 관리비 분쟁,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무효 등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계시거나 개인정보 관련 고소를 당하셨다면, 자료를 제출하기 전 단계에서의 검토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법무법인 랜드로에서 부동산 분야를 전담하고 있는 변호사 신지수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의 자문, 관리비·장기수선충당금 집행, 사업자 선정과 입찰 분쟁, 관리사무소 직원의 노무 문제, 누수와 하자를 둘러싼 손해배상, 동별 대표자 선거와 해임을 둘러싼 가처분,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행정처분과 형사사건까지,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전 국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동주택 분쟁의 특징은 결론이 법리가 아니라 기록에서 갈린다는 점입니다. 회의록 한 줄, 문자메시지 한 통, 사고 직후의 사진 한 장이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분쟁이 시작된 뒤에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송이 시작된 뒤보다, 통지서를 보내기 전이나 각서에 서명하기 전에 상담해 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위와 같은 문제로 고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안의 구조를 먼저 진단해 드리고, 소송이 최선이 아닌 경우에는 그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변호사 신지수
※ 본 글은 공간된 판결을 토대로 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의 결론은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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