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관리사무소의 인사는 조용히 시작해 시끄럽게 끝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의 계약 만료 문제는 처음에는 늘 사소해 보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직원들의 명단을 놓고 안건을 상정하고, 대개는 별다른 논의 없이 갱신 의결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나 5년이 되고 9년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해, 표결 결과가 뒤집힙니다. 찬성 3표, 반대 4표. 그 한 표 차이가 9년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킵니다.
이번에 살펴볼 판결은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9차례에 걸쳐 근로계약을 갱신해 온 관리사무소 시설주임이 갱신거절을 당하자, 자신에게는 정당한 갱신기대권이 있으므로 그 거절은 부당해고에 준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며 해고무효확인과 임금 지급을 구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저는 이 판결이 '반복 갱신의 횟수'만을 근거로 갱신기대권을 주장하는 실무 관행에 분명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령 근로자의 근로관계를 다루는 공동주택 현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건의 개요 — 9년, 9번의 갱신, 그리고 한 표 차이
원고는 2015년 6월 1일 의왕시 소재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시설주임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근로계약은 기간을 1년으로 정하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별도의 통보 없이 계약이 종료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원고와 입주자대표회의는 2024년 6월까지 총 9회에 걸쳐 매년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왔습니다.
2025년 3월, 입주자대표회의는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직원들의 계속근로 의사를 확인한 뒤 갱신 여부를 안건으로 상정했습니다. 원고에 대해서는 찬성 3표, 반대 4표로 갱신을 거절하기로 의결되었고, 같은 해 4월 2일 원고에게 '계약기간 만료로 종료되면 더 이상 갱신할 의사가 없다'는 통지가 이루어졌습니다.
쟁점의 핵심에는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운영규정 제23조가 있었습니다. 이 조항은 제1항에서 관리직원의 정년을 만 60세, 경비직원의 정년을 만 65세로 정하고, 제2항에서 직원이 정년에 달하여 퇴직한 경우 관리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촉탁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되 미리 입주자대표회의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며, 제4항에서 '촉탁직의 최장 근무기간은 만 76세가 되는 월의 말일까지로 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원고의 논리 — "규정에 76세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원고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9차례나 계약이 갱신되어 왔고, 운영규정이 정년을 만 76세로 정하고 있으니, 만 76세에 이를 때까지 계약이 계속 갱신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갱신거절 당시 원고의 나이는 만 72세였으므로, 그의 계산으로는 아직 4년의 근로기간이 남아 있었던 셈입니다.
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계약이 1년 단위로 체결되고 갱신 시마다 자신의 승인을 요하는 구조이며, 원고 역시 그러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기대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다투었습니다. 나아가 업무의 특성과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 원고의 근무태도와 연령·체력 등을 고려하면 갱신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갱신기대권의 법리, 그리고 고령 근로자에게 추가되는 잣대
법원은 먼저 확립된 대법원 법리를 확인합니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은 기간 만료로 근로자로서의 신분관계가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되,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계약의 내용과 체결 동기 및 경위, 갱신의 기준 등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와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갱신에 대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사용자의 부당한 갱신거절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07두1729 판결,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두12528 판결 등).
여기에 이 사건 판결이 덧붙인 법리가 실질적으로 결론을 갈랐습니다. 정년이 지난 상태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위 사정들 외에 해당 직무의 성격에서 요구되는 직무수행 능력과 근로자의 업무수행 적격성, 연령에 따른 작업능률 저하나 위험성 증대의 정도, 해당 사업장에서 정년이 지난 고령자가 근무하는 실태와 계약이 갱신된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두45647 판결 등).
이 법리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년을 지난 고령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은 일반 기간제 근로자보다 '더 많은 요건'을 충족해야 인정됩니다. 반복 갱신의 사실은 여러 고려요소 중 하나로 격하되고, 그 자리에 업무수행 적격성과 안전 위험이라는 사용자 측 사정이 들어옵니다. 근로자 측 대리인이라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법원의 판단 — 세 가지 이유로 기대권을 부정하다
첫째, 근로계약 제1조는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기간 만료 시 별도 통보 없이 종료된다고 규정할 뿐 갱신에 관한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고, 운영규정에도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갱신된다'는 취지의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갱신기대권 인정의 첫 번째 관문인 '규범적 근거'가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운영규정 제23조 제2항이 촉탁직 채용에 입주자대표회의의 승인을 요구하고 있는 이상 갱신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승인이 필요하다고 보이고, 실제로 매년 그러한 승인이 이루어져 왔으며 원고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매년의 승인 절차가 반복되었다는 사정이 원고에게는 '9번의 갱신'이었지만, 법원의 시각에서는 '9번의 개별적 재량 판단'이었던 셈입니다.
셋째, 가장 핵심적인 판시입니다. 법원은 운영규정 제23조 제4항이 정한 '만 76세'는 촉탁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최장 연령을 의미할 뿐, 만 76세까지 갱신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해석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상한선을 정한 규정과 그 상한까지의 근로를 보장하는 규정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관리규약이나 운영규정의 '정년' 조항을 근거로 계속근로를 주장하는 사건에서 앞으로 반복 인용될 가능성이 높은 해석 기준입니다.
예비적 판단이 더 무겁다 — 무엇이 '합리적 이유'가 되었나
법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설령 원고에게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갱신거절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로 든 사정은 세 가지입니다. 갱신거절 당시 원고가 만 72세로 적지 않은 연령이었고 운영규정이 정한 최장 연령에 가까웠다는 점, 원고가 아파트 시설의 점검·보수·유지관리 업무를 담당했고 그 업무 특성상 고령인 원고에게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적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근로계약 체결 시마다 원고와 그 가족들이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매년 작성해 왔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 사정은 특히 곱씹어볼 만합니다. 이 동의서는 원래 사용자 측이 고령자 채용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요구한 문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당사자들이 안전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로 기능하여 갱신거절의 합리성을 뒷받침했습니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류가 아니라 사용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서류였으니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근로자 입장에서는 매년 무심코 서명한 종이 한 장이 자신의 근로관계 존속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다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해 둘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면책 동의서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급여청구권이나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책임을 면제하는 효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이 판결에서 동의서가 의미를 가진 것은 어디까지나 '갱신거절의 합리성 판단을 위한 정황 증거'로서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판결을 근거로 면책각서를 만능 방패로 여긴다면, 그것은 판결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실무적 시사점 —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준비할 것
첫째, 갱신 절차를 형식이 아니라 실질로 운영해야 합니다. 이 판결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매년 승인 의결이 실제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회의록에 안건 상정과 표결 결과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이를 개별적 재량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무런 절차 없이 계약서만 자동으로 다시 쓰는 관행이 수년간 이어졌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둘째, 갱신거절의 사유를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업무의 성격과 안전 위험을 합리적 이유로 인정했지만, 이는 시설 점검·보수라는 업무 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표결에서 반대가 많았다'는 사실만으로는 합리성이 담보되지 않습니다.
셋째, 운영규정과 관리규약의 문언을 점검해야 합니다. '정년은 만 76세로 한다'는 표현과 '촉탁직의 최장 근무기간은 만 76세가 되는 월의 말일까지로 한다'는 표현은 법적 의미가 다릅니다. 규정을 정비할 때는 상한 규정인지 보장 규정인지가 문언상 드러나도록 해야 하고, 갱신 여부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심의·의결 사항임을 명시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근로자 측에서 이 판결을 읽는 법
반대로 갱신거절을 다투는 근로자 입장에서 이 판결은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지를 역으로 알려줍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고령자 기대권 판단 요소 중에는 '해당 사업장에서 정년이 지난 고령자가 근무하는 실태와 계약이 갱신된 사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이 부분에 관한 입증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관리사무소에서 비슷한 연령의 다른 직원들이 계속 근무하며 갱신을 받아 왔다는 사실, 갱신거절이 실제로는 특정 임원과의 갈등이나 민원 제기에 대한 보복으로 이루어졌다는 정황, 근무 평가에서 문제가 지적된 바 없다는 자료 등은 모두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갱신거절 통지를 받은 뒤에 자료를 모으려 하면 이미 늦습니다. 관리사무소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차적으로는, 근로자가 다툴 수 있는 경로가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법원의 해고무효확인의 소로 나뉘고 전자에는 3개월의 신청기간이라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는 점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느 경로를 선택할지, 병행할지는 사안의 성격과 입증 자료의 확보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맺으며
이 판결은 '오래 일했으니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규범적 근거와 신뢰관계의 형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함을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특히 정년을 넘긴 고령 근로자의 경우 그 문턱이 한층 높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동시에 이 판결은 공동주택 현장에 숙제도 남깁니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상당수가 고령이고, 계약은 1년 단위로 반복되며, 갱신 여부는 매년 바뀌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표결에 달려 있습니다. 이 구조 자체가 분쟁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규정을 정비하고 절차를 기록하는 일은 분쟁이 생긴 뒤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동주택 분쟁,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관리사무소 직원의 계약 갱신과 갱신거절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통지서를 보내기 전에 또는 통지서를 받은 직후에 검토받으시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공동주택 분쟁의 특징은 결론이 법리가 아니라 기록에서 갈린다는 점입니다. 회의록 한 줄, 문자메시지 한 통, 사고 직후의 사진 한 장이 수천만 원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분쟁이 시작된 뒤에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송이 시작된 뒤보다, 통지서를 보내기 전이나 각서에 서명하기 전에 상담해 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위와 같은 문제로 고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안의 구조를 먼저 진단해 드리고, 소송이 최선이 아닌 경우에는 그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변호사 신지수
※ 본 글은 공간된 판결을 토대로 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의 결론은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