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회사 업무를 수행하다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면 그 금액은 이사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법 제399조는 이사가 고의나 과실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그 손해 전부를 연대해서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어, 원칙적으로는 감액의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이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법 제400조 제2항은 정관에 근거 규정을 두면 이사의 보수를 기준으로 한 한도까지 책임을 미리 제한해 둘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항이 만능은 아니어서, 보수의 몇 배까지 감경할 수 있는지와 어떤 경우에는 아예 감경 자체가 불가능한지를 정확히 알아야 실제로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관상 책임감경 조항이 작동하는 구조와, 감경 대상에서 제외되는 세 가지 조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이사 책임 감경 정관 조항 — 상법 제400조가 여는 길
이사가 회사에 대해 지는 손해배상책임의 근거는 상법 제399조 제1항입니다.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가 생기면, 그 이사는 손해 전부에 대해 연대책임을 집니다. 이 책임을 완전히 없애려면 상법 제400조 제1항에 따라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주주가 소수라도 전원의 동의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주주 수가 늘어날수록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완전 면제 규정은 실무에서 거의 활용되지 못하는 조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도입된 것이 상법 제400조 제2항입니다. 정관에 근거 규정을 두면, 이사가 그 행위를 한 날 이전 최근 1년간의 보수액(상여금과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이익 등 포함)의 6배(사외이사 및 독립이사는 3배)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이사의 책임을 면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조항이 손해액 전부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만 면제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보수의 6배(3배) 이내 금액은 정관에 아무리 상세한 조항을 넣어도 줄일 수 없고, 이사가 그대로 물어야 합니다.
상법 제400조 제2항이 감경해 주는 것은 손해액 전부가 아니라, 최근 1년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독립이사는 3배)를 초과하는 부분뿐이다 — 6배 이내는 정관으로도 줄일 수 없다.
정관 근거가 필요해진 이유 — 판례의 사후적 책임제한과 무엇이 다른가
제400조 제2항이 신설되기 전에도 법원이 이사의 손해배상액을 재량으로 줄여준 사례는 있었습니다.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2다60467, 60474 판결은 이사가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 해당 사업의 내용과 성격, 이사의 임무위반 경위와 태양, 손해 발생·확대에 관여한 정도, 평소 회사에 대한 공헌도, 위반행위로 얻은 이득 유무, 회사의 위험관리체제 구축 여부 등을 종합해 손해분담의 공평이라는 이념에 비추어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정립했고, 대법원 2023. 3. 30. 선고 2019다280481 판결도 같은 법리를 재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이 법리가 소송을 거쳐야만, 그것도 사실심 법원의 재량에 따라 사후적으로만 적용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사 입장에서는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자신의 책임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들지 예측할 수 없고, 참작 사유를 얼마나 인정하는지는 사건마다, 재판부마다 편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제400조 제2항은 이 불확실성을 정관이라는 사전적 장치로 바꿔, 소송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보수의 6배(3배)라는 명확한 숫자를 미리 못박아 둘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판례상 책임제한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보수 6배 한도, 실제로 어떻게 계산하나
한도 계산의 기준 시점은 손해배상 청구 시점이나 소송 시점이 아니라 이사가 문제된 행위를 한 날 이전 최근 1년간입니다. 이 기간의 보수액에는 매달 받는 급여뿐 아니라 상여금과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로 얻은 이익까지 포함됩니다. 기본급은 낮게 책정하고 상여나 스톡옵션 비중이 큰 임원이라면, 그만큼 한도액 자체가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단한 예로, 사내이사의 최근 1년 보수 총액(상여·스톡옵션 이익 포함)이 2억원이라면 6배 한도는 12억원입니다. 이 이사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면, 정관에 근거 조항이 있는 경우 12억원을 초과하는 8억원만 면제될 수 있고, 나머지 12억원은 여전히 이사가 배상해야 합니다. 같은 사안에서 사외이사·독립이사라면 한도가 3배인 6억원에 그쳐, 20억원 중 6억원을 초과하는 14억원만 면제되고 6억원은 부담해야 합니다.
1단계 —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행위가 발생한 날짜를 확정한다.
2단계 — 그 날 이전 최근 1년간 보수 총액(급여+상여금+스톡옵션 행사이익)을 합산한다.
3단계 — 사내이사는 6배, 사외이사·독립이사는 3배를 곱해 한도액을 산출한다.
4단계 — 손해배상 인정액에서 한도액을 뺀 초과분만 정관 규정에 따라 면제 대상이 된다.
정관에 조항을 넣는 절차 — 특별결의와 사외이사·독립이사 구분
제400조 제2항은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라고 명시하고 있어, 정관에 명문 근거가 없으면 이사회나 대표이사가 임의로 책임을 깎아줄 수 없습니다. 정관 변경은 상법 제433조에 따라 주주총회 결의 사항이고, 상법 제434조에 따라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는 특별결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사회 결의만으로는 정관을 바꿀 수 없고, 소수 지배주주 마음대로 조항을 끼워 넣을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한도 배율은 이사 유형별로 다르게 적용됩니다. 사내이사는 6배, 사외이사 및 상법 제542조의8 제1항의 독립이사는 3배입니다. 독립이사는 상장회사가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두도록 정한, 사내이사·집행임원·업무집행지시자로부터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사외이사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비상장회사에는 이 독립이사 개념 자체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비상장 중소기업이 사외이사를 두더라도 상법 제382조 제3항의 일반 사외이사 요건만 충족하면 3배 한도가 적용됩니다.
감경이 안 되는 세 조문 — 제397조·제397조의2·제398조
제400조 제2항 단서는 두 갈래 예외를 둡니다. 하나는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라는 주관적 요건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세 조문에 해당하는 경우라는 객관적 요건입니다. 그 세 조문이 제397조(경업금지), 제397조의2(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제398조(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입니다. 여기 해당하면 보수가 얼마든 정관 조항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손해액 전부를 배상해야 합니다.
세 조문의 공통점은 이사가 회사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회사보다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앞세운 행위라는 것입니다. 경업금지 위반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와 같은 영업부류의 거래를 하거나 동종영업을 하는 다른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사가 되는 경우이고, 회사기회유용 금지 위반은 직무 수행 중 알게 됐거나 회사가 수행 중이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사업기회를 이사 3분의 2 이상의 이사회 승인 없이 자신이나 제3자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자기거래 위반은 이사 본인이나 그 배우자·직계존비속, 이들이 지배하는 회사 등이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또는 승인을 받았어도 거래 내용과 절차가 불공정한 채로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입니다.
제397조 경업금지 —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영업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사가 되는 경우.
제397조의2 회사기회유용 금지 — 직무상 알게 됐거나 회사가 수행·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사업기회를 이사회 승인 없이 가로채는 경우.
제398조 자기거래 — 이사·주요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이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또는 내용·절차가 불공정한 채로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 조문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감경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관상 책임감경은 통상적인 경영판단의 실패를 구제하기 위한 장치이지, 이사가 회사의 이익과 충돌하는 사익을 추구한 행위까지 감싸주는 장치가 아니다.
조문 위반인지 애매한 경우 — 실무에서 다투어지는 지점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지는 지점은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제398조 적용에서 벗어나는지 여부입니다. 제398조는 승인 절차와 별도로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전 승인을 거쳤더라도 실제 거래 조건이 시가보다 현저히 유리하거나 회사에 불리했다면 여전히 자기거래 위반으로 인정될 수 있고, 이 경우 정관상 책임감경 조항은 애초에 적용될 여지가 없어집니다.
고의·중과실 여부도 자주 다투어지는 문제입니다. 법원은 이사의 전문성, 문제된 행위 당시 이용 가능했던 정보의 범위,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친 절차의 합리성 등을 종합해 판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관에 책임감경 조항을 마련해 뒀더라도 회사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주주 측이 고의·중과실 또는 제397조 등 위반을 주장하면 그 다툼 자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정관 조항은 감경받을 자격이 인정된 다음의 계산식일 뿐, 애초에 감경 대상인지 여부를 자동으로 걸러주지는 않습니다.
정관 조항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 D&O보험과 이사회 의사록
정관상 책임감경 조항은 보수 6배(3배) 이내 손해, 그리고 제397조·제397조의2·제398조 위반이나 고의·중과실 사안에는 애초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조항 하나만으로 이사 개인의 배상 위험을 전부 없앨 수는 없습니다. 실무에서는 정관 정비와 함께 임원배상책임보험(D&O보험) 가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험은 보수 6배 이내 손해나 통상적인 경영판단 실패로 인한 손해까지 보장 범위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어 정관상 한도 안쪽의 위험을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D&O보험도 고의행위나 사익추구성 위반에는 대개 면책조항을 두고 있어, 제397조·제397조의2·제398조에 해당하는 사안까지 폭넓게 보장받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근본적인 방어수단은 이사회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충실히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안건 검토 자료, 찬반 논의 내용, 표결 결과를 의사록에 남겨 두면, 나중에 그 행위가 통상적인 경영판단이었는지 사익추구적 행위였는지를 다툴 때 이사에게 유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사 책임 감경 정관 조항은 이미 발생한 손해배상책임에도 소급 적용되나요?
A. 정관에 근거 규정을 신설한 이후 이사가 한 행위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관 개정 전에 이미 발생한 손해배상책임을 사후에 정관 개정만으로 소급해 감경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다투어질 여지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Q. 정관에 책임감경 조항을 넣으려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되나요?
A. 아닙니다. 정관 변경은 상법 제433조·제434조에 따라 주주총회 특별결의, 즉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거쳐야 하며 이사회 결의만으로는 정관을 바꿀 수 없습니다.
Q. 사외이사와 사내이사의 한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외이사·독립이사는 회사 경영에 상시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감시·감독 기능이 중심이어서 보수 수준과 정보 접근성이 사내이사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한도를 3배로 더 낮게 정한 것입니다.
Q. 6배 한도를 계산할 때 스톡옵션 행사이익도 포함되나요?
A. 네. 상법 제400조 제2항은 보수액에 상여금과 주식매수선택권 행사로 인한 이익 등을 포함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급여 외에 상여금과 스톡옵션 행사이익까지 합산해 6배(또는 3배) 기준을 산정합니다.
Q. 경업금지의무 위반인지 애매한 경우에도 무조건 책임감경이 배제되나요?
A. 제397조 위반에 해당하는지는 이사회 승인 여부와 거래가 회사 영업부류에 속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실제로 요건에 해당한다고 인정되면 정관상 책임감경 조항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해당 여부 자체가 다투어지는 사안이라면 소송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심리됩니다.
Q. 비상장 중소기업도 이 조항을 정관에 둘 실익이 있나요?
A. 있습니다. 비상장회사도 이사가 경영판단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위험은 마찬가지이므로, 경업금지·회사기회유용·자기거래처럼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행위를 제외한 통상적 경영판단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맺음말
정관상 이사 책임감경 조항은 손해배상책임 전부를 없애주는 조항이 아니라, 통상적인 경영판단의 실패에 대해 예측가능한 한도(보수의 6배 또는 3배)를 정해주는 장치입니다. 경업금지·회사기회유용·자기거래처럼 이사가 회사의 이익과 충돌하는 사익을 추구한 경우와 고의·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 한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정관에 근거 규정을 두려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독립이사의 배율이 다르다는 점, 보수 산정에 상여금·스톡옵션 행사이익까지 포함된다는 점도 함께 따져봐야 합니다. 조항을 마련해 두더라도 실제 손해배상 사안에서 세 조문에 해당하는지, 고의·중과실이 있는지는 별도로 다투어지는 문제이므로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습관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수원·경기남부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정관 정비나 이사 책임 문제로 고민하는 대표이사, 이사라면 정관 규정을 마련하는 단계부터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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