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중간에 멈추고 도급계약이 해제되면, 수급인도 도급인도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이 이미 오간 선급금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느냐입니다. 선급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받고서야 별도 소송 절차가 필요한 줄 알고 대응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판례가 정한 법리는 이와 다릅니다. 선급금은 도급인이 상계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그때까지의 기성 공사대금에 자동으로 충당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선급금이 어떤 성질의 돈인지, 계약 해제 후 정산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하도급 직접지급이나 회생절차가 얽힌 경우 무엇이 달라지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선급금의 법적 성질 — 대여금이 아니라 선지급된 공사대금
선급금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수급인이 자재를 확보하고 노임을 지급하는 등 공사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급인이 장차 지급할 공사대금의 일부를 미리 내주는 돈입니다. 대법원은 이런 선급금을 구체적인 기성고에 대한 공사대금이 아니라 전체 공사에 대한 공사대금이라고 규정합니다(대법원 1999. 12. 7. 선고 99다55519 판결). 핵심은 선급금이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빌려준 돈, 즉 대여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급계약이라는 하나의 법률관계 안에서 지급 시기만 앞당겨진 공사대금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별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큽니다. 만약 선급금이 대여금이라면 계약이 끝난 뒤 도급인이 돌려받으려면 별도의 반환청구권을 행사하고, 이를 기성 공사대금과 정산하려면 상계라는 별도의 의사표시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선급금이 애초에 공사대금의 일부라면, 기성 부분이 확정되는 순간 그 금액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정산되는 것이 당사자들의 합리적 의사에 부합합니다. 예를 들어 총 공사대금 10억원짜리 도급계약에서 선급금 2억원을 지급한 뒤 공사가 중단됐다면, 이 2억원은 별도의 대여금 채권이 아니라 이미 지급된 공사대금 2억원어치로 취급된다는 뜻입니다.
선급금은 특정 기성고에 대응하는 돈이 아니라 전체 공사대금 중 일부를 미리 지급한 것 — 그래서 계약이 끝나면 별도 의사표시 없이 기성 공사대금에 흡수된다.
계약이 해제되면 벌어지는 일 — 상계 의사표시 없이 당연 충당
판례는 이 법리를 명확히 정리합니다. 선급금이 지급된 후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 등의 사유로 수급인이 도중에 선급금을 반환하게 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상계 의사표시 없이 선급금이 그때까지 기성고에 해당하는 공사대금 중 미지급액에 충당된다는 것이 확립된 태도입니다(대법원 2021. 7. 8. 선고 2016다267067 판결). 도급인이 '선급금과 기성 공사대금을 상계합니다'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아도, 계약이 해제된 시점에 이미 법률상 당연히 충당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실무적으로 정산 결과는 두 갈래로 갈립니다. 해제 시점의 기성고에 해당하는 공사대금이 선급금보다 많다면, 도급인은 선급금을 차감한 나머지 금액만 지급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반대로 기성 공사대금이 선급금보다 적다면, 그 차액에 대해 도급인이 수급인을 상대로 선급금 반환채권을 갖게 됩니다. 상계 의사표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절차가 생략된다는 뜻이지, 정산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국 '기성고를 얼마로 볼 것인가'를 확정하는 작업이 분쟁의 실질적인 승부처로 남습니다.
가정해 보면, 총 공사대금 10억원, 선급금 2억원인 계약에서 해제 시점 기성고가 6억원으로 확정됐다면 선급금 2억원은 그 6억원 중 이미 지급된 몫으로 충당되고, 도급인은 나머지 4억원만 지급하면 됩니다. 반대로 기성고가 1억 5천만원에 그쳤다면 선급금 2억원 중 1억 5천만원만 충당되고, 남은 5천만원은 수급인이 도급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반환채무로 남습니다.
기성 공사대금 > 선급금 — 도급인은 그 차액만 추가로 지급하면 된다.
기성 공사대금 < 선급금 — 수급인은 그 차액을 도급인에게 반환해야 한다.
별도의 상계 의사표시나 소송 없이도 해제 시점에 당연 충당 효과가 발생한다.
다만 '기성고를 얼마로 볼 것인가'는 여전히 별도로 확정해야 할 사실관계다.
충당 대상이 되는 기성 공사대금의 범위 — 당사자 약정이 정한다
선급금이 자동으로 충당된다고 해도, 그 충당 대상이 되는 기성 공사대금의 내역을 어떻게 산정할지는 당연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급계약 당사자 사이의 약정에 따릅니다(대법원 2016다267067 판결). 표준화된 공사도급계약서에는 대개 선급금의 정산 방법을 정하는 조항이 있고, 이 조항이 충당 범위를 결정하는 1차 기준이 됩니다.
문제는 계약 당사자들이 특정 항목을 충당 대상에서 빼기로 하는 '예외적 정산약정'을 맺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도급인이 하수급인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해야 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그 금액은 원수급인의 기성 공사대금 내역에서 제외하기로 미리 정해두는 식입니다. 이런 예외적 정산약정이 있다면, 도급인은 미정산 선급금이 이미 기성 공사대금에 충당됐다는 이유로 하수급인에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의무를 면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런 예외적 정산약정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도급계약의 해석은 문언의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고, 특히 해제·해지에 따른 정산관계에는 선급금반환채권자와 기성공사대금채권자 등 여러 이해관계인이 얽혀 있어 그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외적 약정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과 지급된 돈의 정체 — 선급금인가, 기성금인가
실무에서 도급인이 이미 지급한 돈 중 일부를 되돌려받으려 할 때, 그 돈이 '선급금'인지 아니면 이미 지급된 '기성금 중 과다 지급분'인지가 전혀 다른 법적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생절차가 개시된 건설사가 얽힌 사안에서 대법원은, 발주자가 과다하게 지급했다고 주장한 돈이 실제로는 선급금이 아니라 기성금을 초과 지급한 것이었다면, 그 반환채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8다223139 판결).
이 구별의 실익은 회수 가능성에 있습니다. 만약 그 돈이 선급금이었다면 반환채권이 같은 법 제121조 제2항이 정한 공익채권으로 인정되어 회생절차와 무관하게 수시로 변제받을 여지가 생기지만, 기성금 과다지급분으로 성격이 재분류되면 다른 회생채권자들과 함께 회생계획에 따라서만 변제받게 됩니다. 계약서상 '선급금'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고 해서 그 실질까지 선급금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실제 지급 경위와 정산 내역을 따져 그 돈의 성격을 다시 규명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도급대금 직접지급과 선급금 충당이 겹칠 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은 원사업자의 부도·파산이나 대금 미지급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발주자가 수급사업자(하수급인)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주자와 원수급인 사이의 도급계약에서 별다른 예외적 정산약정 없이 선급금이 지급돼 있었다면, 직접지급 대상이 된 하도급대금도 원수급인의 기성 공사대금 내역에 포함되어 선급금 충당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발주자·원수급인·하수급인 사이에 '해당 하도급대금은 선급금 충당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취지의 직불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합의 자체에 예외적 정산약정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대법원 2016다267067 판결). 반면 이런 제외 합의가 없다면 하수급인이 직접 받은 대금까지 기성 공사대금 내역에 잡혀 선급금 충당에 흡수될 수 있어, 원수급인의 자금 사정과 무관하게 하수급인의 실수령액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선급금 보증계약의 책임범위 — 보증인은 언제까지 책임지나
선급금을 지급하는 도급인은 흔히 건설공제조합 등 보증기관으로부터 선급금 보증서를 받아둡니다. 수급인이 선급금을 반환하지 못하면 도급인은 보증기관에 보증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보증인의 책임 범위는 계약이 해제된 시점이 아니라 애초 보증계약을 체결할 당시의 도급계약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대법원 2016다267067 판결).
문제는 보증계약이 먼저 체결된 뒤에 도급인·원수급인·하수급인이 새로 직불합의를 맺어 특정 하도급대금을 선급금 충당 대상에서 빼기로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후 합의로 선급금 충당 범위가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보증인이 반환해야 할 미정산 선급금 액수가 늘어나 보증인의 책임이 가중됩니다. 대법원은 보증 및 보험의 일반 법리상 이렇게 가중된 부분에는 보증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보증기관 입장에서는 보증계약 체결 이후 원채무자들 사이에서 이뤄진 합의로 자신의 책임 범위가 늘어나는 것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도급인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온전히 청구하려면 보증계약 체결 시점의 도급계약 내용과 그 이후 변경된 정산약정을 구분해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툼의 실질 — 기성고를 얼마로 볼 것인가
선급금이 자동으로 충당된다는 법리는 절차를 간소화해줄 뿐, 정산 금액에 대한 다툼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실제 소송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지점은 오히려 해제 시점의 기성고를 얼마로 볼 것인가입니다. 기성고 비율은 통상 감정을 통해 산정되는데, 기성부분의 시공 상태, 투입된 자재·노무비, 설계변경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전체 공사대금 대비 비율로 환산합니다.
기성고 감정 결과에 따라 선급금 충당 후 남는 돈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으므로, 공사 진행 과정에서 기성 부분을 뒷받침할 자료를 꾸준히 남겨두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기성검사조서·준공검사원 등 발주자·감리자가 확인한 공식 문서
공정별 사진·동영상, 자재 반입·투입 내역
하도급업체별 기성 확인서, 노무비·자재비 세금계산서
설계변경·추가공사 합의서(있는 경우 기성고 산정에 영향)
기성고 산정 자료를 얼마나 갖췄는지가 선급금 정산 다툼의 승패를 가른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급인이 상계한다는 통지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선급금이 충당됐다고 볼 수 있나요?
A. 네, 판례는 계약 해제·해지로 선급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상계 의사표시 없이 그때까지의 기성 공사대금에 당연히 충당된다고 봅니다. 다만 충당 대상이 되는 기성 공사대금의 범위는 계약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계약서상 정산 조항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Q. 기성 공사대금이 선급금보다 적으면 수급인은 어떻게 되나요?
A. 선급금이 기성 공사대금을 초과한 부분은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채권으로 남습니다. 이미 받은 돈이라도 기성고가 그에 못 미친다면 수급인이 그 차액을 돌려줘야 하는 셈입니다.
Q. 계약서에 정산 조항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A. 정산 조항이 없더라도 선급금은 성질상 전체 공사대금의 선지급이므로 앞서 본 당연 충당 법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만 충당 대상이 되는 기성 공사대금의 구체적 범위를 두고 다툼이 생기면, 계약 문언·체결 경위·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해 해석하게 됩니다.
Q. 하수급인이 발주자로부터 하도급대금을 직접 받았는데, 그 돈도 선급금으로 다시 충당될 수 있나요?
A. 발주자·원수급인·하수급인 사이에 그 대금을 선급금 충당 대상에서 제외하는 취지의 합의가 있었다면 다시 충당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예외적 합의가 없다면 원수급인의 기성 공사대금 내역에 포함되어 선급금 충당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Q. 회생절차에 들어간 건설사가 받은 돈이 선급금인지 기성금인지가 왜 중요한가요?
A. 선급금 반환채권은 공익채권으로 인정되면 회생절차와 무관하게 수시로 변제받을 수 있지만, 기성금 과다지급분으로 성격이 재분류되면 다른 채권자들과 함께 회생계획에 따라서만 변제받는 회생채권으로 취급됩니다. 명칭이 아니라 실제 지급 경위로 판단됩니다.
Q. 선급금 보증회사가 있는 경우에도 자동충당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나요?
A. 보증인의 책임 범위는 보증계약 체결 당시의 도급계약 약정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보증계약 체결 이후에 별도로 이루어진 정산약정이나 직불합의로 보증인의 책임이 가중된다면, 그 가중된 부분에는 보증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맺음말
공사도급계약이 중도에 해제되면, 이미 지급된 선급금은 도급인의 별도 의사표시 없이도 그때까지의 기성 공사대금에 자동으로 충당됩니다. 이 법리를 모른 채 '선급금 반환은 별도 소송으로만 가능하다'고 오해하면 정산 결과를 잘못 예상하기 쉽습니다.
다만 자동 충당이라는 결과 자체보다, 충당 대상이 되는 기성 공사대금을 어떻게 확정할 것인지, 예외적 정산약정이나 직불합의가 있는지, 초과 지급된 돈이 선급금인지 기성금인지가 실제 분쟁에서는 더 중요한 쟁점입니다. 계약서의 정산 조항과 기성고를 뒷받침할 자료를 미리 갖춰두는 쪽이 정산 국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섭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도 공사 중단·해제로 인한 선급금·기성금 정산 분쟁이 꾸준히 발생하는 만큼, 계약이 해제된 상황이라면 정산 조항부터 다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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