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양수도계약을 마치고 회사를 넘겨받은 뒤, 재무제표에는 없던 채무가 뒤늦게 튀어나오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매수인은 곧바로 진술 및 보장 조항 위반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만, 매도인 측은 "그건 계약 당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우발채무였다"며 책임을 피해 가려 합니다. 문제는 이 항변이 절반만 맞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재무제표에 계상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채무가 자동으로 우발채무가 되는 것은 아니고, 계약체결 당시 이미 확정되어 있었는데 단순히 반영을 누락한 채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발채무와 미계상 확정채무를 실무에서 어떻게 구별하는지, 그 구별이 손해배상 청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진술 및 보장 조항 — 재무제표 정확성을 담보하는 별도의 약정
주식양수도계약(SPA)에서 매도인은 통상 "대상회사의 재무제표는 관련 법령과 회계기준에 따라 정확하고 완전하게 작성되었다", "재무제표에 계상되지 않은 우발채무나 숨은 채무가 없다"는 내용을 진술하고 보증합니다. 이를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조항이라 하는데, 계약서에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손해를 배상한다는 조항(indemnification)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조항의 법적 성격은 민법 제580조가 정한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과는 별개입니다. 하자담보책임은 법정책임으로서 제척기간이 짧고(안 날로부터 6개월) 배상 범위도 제한적이지만, 진술 및 보장 조항은 당사자가 민법 제105조의 계약자유 원칙에 따라 스스로 설계한 손해담보 약정입니다. 무엇을 진술 대상으로 삼을지, 위반 시 손해배상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청구기간을 얼마로 정할지 모두 계약서 문언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이런 계약을 처분문서로 보고,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면 그대로 인정하며, 문언과 달리 해석해 당사자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해석은 더욱 엄격하게 따진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진술 및 보장 조항은 하자담보책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계약자유 원칙에 따라 별도로 설계한 손해담보 약정이다 — 분쟁의 출발점은 언제나 계약서 문언이다.
우발채무란 무엇인가 — 확정채무와 갈라지는 요건
기업회계기준서 K-IFRS 제1037호(충당부채, 우발부채와 우발자산)는 부채를 세 층위로 나눕니다. 현재 의무가 존재하고 자원 유출 가능성이 높으며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으면 확정채무(충당부채 포함)로 인식해 재무제표 본문에 반영합니다. 반면 우발채무는 (1) 과거 사건에서 비롯되었지만 기업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하나 이상의 불확실한 미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야만 그 존재 여부가 확인되는 잠재적 의무, 또는 (2) 현재 의무이기는 하나 자원 유출 가능성이 높지 않거나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어 인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우발채무는 재무상태표 본문이 아니라 주석에 기재하는 데 그칩니다.
이 구별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명확합니다. 확정채무는 "존재 자체는 확실하지만 회계처리에서 빠뜨린 것"이고, 우발채무는 "계약체결 당시에는 존재 여부 자체가 불확실했던 것"입니다. 전자는 재무제표 작성자가 마땅히 알았어야 할 사실을 누락한 문제이고, 후자는 미래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던 문제입니다. 두 경우 모두 결과적으로 재무제표에 그 부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같지만, 매도인이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 진술 및 보장 조항 위반이 성립하는지는 완전히 다르게 판단됩니다.
확정채무 — 계약체결일 이전에 발생 원인이 이미 종결되고 금액도 산정 가능한 채무. 미계상이면 회계처리 오류·누락.
우발채무 — 계약체결일 당시 발생 여부가 불확실한 미래 사건에 달린 잠재적 의무. 주석 기재 대상.
구별 실익 — 확정채무 누락은 재무제표 정확성 진술 위반이 명백하지만, 순수 우발채무는 계약서가 별도로 다루지 않는 한 위반 여부가 다투어짐.
재무제표에 없다고 다 우발채무는 아니다 — 발생시점이 관건
매도인 측이 실사 이후 발견된 부채에 대해 흔히 내세우는 항변이 "이건 우리도 예측 못 한 우발채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항변이 통하려면 그 채무의 발생 원인이 계약체결일 이후에 비로소 확정되었거나, 계약체결일 당시에는 존재 여부 자체가 불확실했어야 합니다. 반대로 채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계약 위반, 세법상 과세요건 충족, 손해배상책임을 발생시킨 사고 등)가 계약체결일 이전에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면, 사후에 그 사실이 드러난 시점이 언제든 관계없이 그 채무는 계약체결 당시 이미 확정되어 있던 채무입니다. 이런 채무는 우발채무가 아니라 미계상 확정채무이고, 재무제표 정확성 진술 위반이 그대로 성립합니다.
가장 흔한 사례가 세무 문제입니다. 국세기본법 제21조는 국세를 납부할 의무가 과세요건이 충족되면 성립한다고 정하고, 법인세는 해당 과세기간이 끝나는 때 납세의무가 성립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렇다면 계약체결 이전 사업연도에 이미 과세요건이 충족된 소득에 대해, 세무조사와 부과처분이 계약체결 이후에 개시되었다 하더라도 그 조세채무 자체는 이미 계약체결 당시 성립해 있었던 것입니다. 매도인이 "세무조사가 양수도 실행일 이후에 시작됐으니 우발채무"라고 주장해도, 납세의무 성립시기가 그보다 앞선다면 이는 예측 불가능한 우발채무가 아니라 이미 확정되어 있던 채무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거나 숨긴 경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진짜 우발채무에 해당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계약체결 당시 소송이 제기되지도 않았고 분쟁의 소지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양수도 실행일 이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예컨대 계약체결 이후 발생한 산업재해, 그 이후 체결된 거래에서 비롯된 하자)로 새로운 책임이 발생했다면, 이는 계약체결 당시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채무이므로 재무제표 정확성 진술과는 애초에 무관합니다. 결국 다툼의 핵심은 채무의 발생 원인이 계약체결일 이전인지 이후인지, 그 시점에 발생 여부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있습니다.
발생 원인행위가 계약체결일 이전에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면, 사후에 드러난 시점과 무관하게 그 채무는 우발채무가 아니라 계약체결 당시 확정되어 있던 채무다.
매도인의 "매수인도 알았을 것" 항변 — 판례가 그은 선
매도인 측은 종종 "매수인이 실사 과정에서 문제를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라거나 "매수인도 알고 있었으므로 신의칙상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은 이런 항변에 명확한 선을 그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매도인은 대상회사가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보증했지만 실제로는 담합행위가 있었고, 양수도 실행일 이후 그 담합을 이유로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되었습니다. 매도인은 매수인도 계약체결 당시 담합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손해배상책임을 다투었지만, 대법원은 계약서에 매수인이 위반사실을 알고 있었던 경우 배상책임을 배제한다는 규정이 없는 이상,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손해가 발생하면 매도인이 배상하기로 한 것이 계약당사자의 의사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아울러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상 책임을 공평의 이념이나 신의칙 같은 일반원칙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적자치와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어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무제표 미기재 채무 사안에 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매수인 측 실사팀이 사업 현황을 살펴보며 어느 정도 위험 신호를 인지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손해배상청구가 곧바로 막히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매수인이 실사 과정에서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사항에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취지의 명시적 배제조항(이른바 anti-sandbagging 조항)이 있는지가 핵심이고, 그런 조항이 없다면 매도인의 악의 항변만으로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손해배상 산정 — 공제기준금액과 배상한도, 청구기간
진술 및 보장 조항 위반이 인정되어도 손해배상액이 곧바로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주식양수도계약은 소액 손해를 면제하는 소액면제(De Minimis), 일정 금액을 넘어야 청구할 수 있는 공제기준금액(Basket), 배상 총액의 상한인 배상한도(Cap), 그리고 위반사항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한 존속기간(Survival Period)을 함께 규정합니다. 재무제표 정확성이나 우발채무 부존재처럼 계약 이행의 근간이 되는 핵심 진술(Fundamental Representations)은 이런 제한에서 제외하거나 배상한도를 주식양수대금 전액까지 확대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발채무와 미계상 확정채무의 구별이 실익을 갖습니다. 계약서가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확정채무"를 별도 항목(specific indemnity)으로 다루면서 Cap 적용을 배제해 두었다면, 발견된 채무가 확정채무로 인정되느냐 여부에 따라 배상받을 수 있는 금액의 상한 자체가 달라집니다. 반대로 계약서에 그런 구분이 없다면 일반 진술 위반과 동일하게 Basket·Cap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전에 계약서에서 재무제표·우발채무 관련 진술이 다른 진술과 같은 조건으로 묶여 있는지, 아니면 별도의 특약으로 취급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소액면제(De Minimis) — 건별로 일정 금액 미만인 손해는 청구 대상에서 제외.
공제기준금액(Basket) — 누적 손해액이 이 금액을 넘어야 초과분(또는 전액)을 청구 가능.
배상한도(Cap) — 통상 주식양수대금의 일정 비율. 핵심 진술 위반은 상한 확대·배제가 흔함.
존속기간(Survival Period) — 이 기간이 지나면 위반사항이 있어도 청구권 자체가 소멸.
실제 분쟁에서 확인해야 할 것 — 인식가능성과 증거
발견된 채무가 확정채무인지 우발채무인지를 다투는 실제 분쟁에서는 결국 시점과 증거 싸움이 됩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문제된 채무의 발생 원인행위(계약, 처분, 사고, 과세요건 충족 등)가 계약체결일 이전에 종결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세무 문제라면 과세대상 사업연도와 과세표준을 특정한 세무조사 결과통지서, 계약 관련 분쟁이라면 계약체결일 이전에 이미 발생한 위반사실을 보여주는 내부 문서나 거래 기록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자료로 채무의 발생시점이 계약체결일 이전임을 입증하면, 매도인의 "예측 불가능한 우발채무였다"는 항변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반대로 매도인 입장에서 방어하려면, 그 채무의 발생 원인 자체가 계약체결일 이후에 비로소 생겼거나, 계약체결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회계처리 관행상 인식할 수 없었던 사정임을 소명해야 합니다. 예컨대 계약체결 당시 통용되던 회계기준이나 실사 시점에 제공 가능했던 자료의 범위 안에서는 그 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실사 과정에서 매수인 측에 어떤 자료가 제공되었고 어떤 질의응답이 오갔는지를 담은 자료(due diligence 질의서, 데이터룸 기록)도 양측 모두에게 핵심 증거가 됩니다.
청구 절차와 준비할 자료
재무제표 미기재 채무를 발견했다면 계약서가 정한 통지 절차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대다수 주식양수도계약은 위반사항 발견 시 일정 기간 안에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정하고, 이 통지기한을 넘기면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통지서에는 위반 진술 항목, 발견 경위, 손해 추정액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통지 이후에는 회계법인의 재산정 보고서, 세무조사·과세처분 관련 자료, 소송 자료 등 손해액을 뒷받침할 근거를 함께 정리해 두어야 협상이나 소송 단계에서 대응이 수월합니다.
계약서에 존속기간(Survival Period)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면 그 기간 안에 청구해야 하고, 정함이 없다면 일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당사자가 상인이면 상사 5년, 그 외에는 민법상 10년)가 문제 됩니다. 매도인과의 협의가 원만하지 않으면 배상액 산정 근거를 두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발견 초기 단계부터 발생시점·인식가능성·손해액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갖춰두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재무제표에 없던 부채가 발견되면 무조건 진술 및 보장 위반인가요?
A. 그 부채의 발생 원인이 계약체결일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면 미계상 확정채무로서 위반이 성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계약체결일 당시 존재 여부 자체가 불확실했던 진짜 우발채무라면, 계약서가 이를 별도로 다루지 않는 한 위반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Q. 세무조사가 인수 이후에 시작됐다면 우발채무 아닌가요?
A. 조세채무는 국세기본법상 과세요건이 충족된 시점에 이미 성립하며, 세무조사나 부과처분은 이미 성립한 채무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과세대상 사업연도가 계약체결 이전이라면 조사·처분 시점과 무관하게 계약체결 당시 확정되어 있던 채무로 볼 여지가 큽니다.
Q. 매수인이 실사 과정에서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면 손해배상을 못 받나요?
A. 대법원 판례는 계약서에 매수인의 악의를 배상책임 배제 사유로 명시하지 않은 이상, 위반사항이 발견되고 손해가 발생하면 매도인이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봅니다. 매수인이 실사 중 일부 인지했다는 사정만으로 청구가 곧바로 막히지는 않습니다.
Q. 손해배상 청구에도 한도나 기간 제한이 있나요?
A. 대부분의 계약서는 공제기준금액(Basket)과 배상한도(Cap), 청구 가능 기간(Survival Period)을 정해둡니다. 다만 재무제표 정확성처럼 핵심 진술은 이런 제한에서 제외되거나 한도가 확대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계약서 문언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Q. 확정채무와 우발채무 중 어느 쪽인지는 누가 입증하나요?
A.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매수인이 그 채무의 발생 원인이 계약체결일 이전에 종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도인은 반대로 발생 원인이 계약체결일 이후에 생겼거나 당시로서는 인식할 수 없었던 사정임을 소명해 방어합니다.
Q. 계약서에 통지기한이 있는데 놓치면 어떻게 되나요?
A. 통지기한을 놓치면 위반사실이 실제로 있었더라도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채무를 발견한 즉시 계약서상 통지 절차와 기한부터 확인하고, 손해 추정액과 발견 경위를 구체적으로 담아 서면으로 통지해야 합니다.
맺음말
재무제표에 계상되지 않은 부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자동으로 우발채무가 되지는 않습니다. 채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가 계약체결일 이전에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면, 사후에 드러난 시점이 언제든 그 채무는 계약체결 당시 확정되어 있던 채무이고 재무제표 정확성 진술 위반이 그대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계약체결 당시 존재 여부 자체가 불확실했던 진짜 우발채무라면 계약서 문언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결국 승부는 채무의 발생시점을 특정하는 증거와, 계약서가 재무제표·우발채무 관련 진술을 어떤 조건으로 설계해 두었는지에서 갈립니다. 손해배상 청구든 방어든 계약서 문언을 먼저 정확히 짚고 시작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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