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출렁이면서, 매매계약이나 공사계약을 체결한 뒤 잔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대출 승인이 거절되는 등의 사정으로 다툼이 생기고, 결국 “서로 이만 정리하자”며 합의로 계약을 해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의뢰인들 중 상당수는 “어차피 서로 합의해서 끝낸 일이니, 나중에 손해배상은 별도로 청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문구 없이 합의서에 서명부터 하는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계약이 어그러지며 생긴 손해, 예컨대 대체 매물을 더 비싼 값에 구해야 했던 차액이나 그 사이 낸 대출이자, 중개수수료 등을 나중에 청구하려 하면, 상대방은 “그건 서로 합의해서 끝낸 일 아니냐”며 거부하고, 실제 소송으로 가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계약이 합의로 해제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하기로 하는 특약이나 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가 없는 한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합의해제는 상대방의 계약 위반 책임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새로운 합의로 기존의 채권채무 관계 자체를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는 합의로 계약을 해제한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 왜 원칙적으로 막히는지, 그리고 예외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경우와 그 대비 방법은 무엇인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합의로 계약을 없앴다면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합의해제는 계약 위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 자체를 새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계약을 해제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민법 제543조에 따라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해제하는 법정해제이고, 다른 하나는 당사자들이 서로 협의해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하기로 합의하는 합의해제입니다. 법정해제의 경우 민법 제551조가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어, 해제와 별도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의해제는 이 조문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계약이 합의해제된 경우에는 그 해제 시에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특약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등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해 왔습니다(대법원 1989. 4. 25. 선고 86다카1147, 1148 판결). 합의해제는 기존 계약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새로운 계약이므로, 그 새로운 합의에서 손해배상 문제까지 함께 정리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흔히 헷갈리는 부분은 원상회복과 손해배상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합의해제를 하면 민법 제548조에 따라 각 당사자는 받은 것을 서로 돌려줄 원상회복 의무를 부담합니다. 매수인이 지급한 계약금이나 중도금은 돌려받을 수 있고, 받은 날부터의 이자도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간 돈을 정산하는 것일 뿐, 계약이 어그러지며 추가로 발생한 손해, 즉 대체 매물을 더 비싼 값에 구해야 했던 차액이나 그 사이 낸 대출이자, 중개수수료 같은 손해까지 당연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합의해제는 그 자체로 새로운 계약이며, 별도의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없는 한 원래 계약의 위반 책임까지 함께 정리된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2.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합의 당시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손해배상을 유보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없었다면, 아무리 억울해도 법원은 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합의해제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예외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판례가 요구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하는 특약”이나 “손해배상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인정되지 않으면, 상대방이 명백히 계약을 위반해 합의해제에 이르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법리는 비교적 최근 판례에서도 그대로 재확인됐습니다.
계약이 합의에 따라 해제되거나 해지된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특약하거나 손해배상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등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손해배상의 특약이 있었다거나 손해배상청구를 유보하였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증명할 책임이 있다(대법원 2021. 5. 7. 선고 2017다220416 판결).
즉 “나는 당연히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쪽이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합의서에 “계약을 합의해제하고 계약금은 반환한다”는 정도의 문구만 적어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로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나중에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된다”는 생각은, 그 의사가 합의 당시 명확히 표시되지 않았다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3. 원래 계약에 있던 위약금 조항도 합의해제에는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위약금 약정이 있었다고 해서 합의해제 후에도 당연히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매계약이나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을 위반하면 위약금으로 얼마를 지급한다”는 조항을 함께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법 제398조 제4항은 이러한 위약금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고 있어, 원래 계약이 채무불이행으로 해제됐다면 위약금 조항에 따라 손해액을 따로 증명하지 않고도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위약금 조항이 합의해제에도 그대로 이어지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이 부분도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원래의 계약에 있는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은 그것이 계약 내용이나 당사자의 의사표시 등에 비추어 합의해제ㆍ해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합의해제ㆍ해지의 경우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대법원 2021. 5. 7. 선고 2017다220416 판결).
따라서 원래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이 있었다 하더라도, 합의해제 당시 “위약금 조항은 그대로 유효하다”거나 “위약금은 별도로 지급한다”는 취지를 다시 확인해두지 않으면, 그 조항만으로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이 지점은 매매대금의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을 상환하고 해제하는 민법 제565조의 해약금 해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해약금 해제는 손해배상이 아니라 계약금 자체를 위약벌 성격으로 주고받는 별개의 제도이므로, 이를 위약금 특약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위약금 조항은 계약이 살아 있을 때의 약속일 뿐, 합의해제로 계약관계를 새로 정리하면서 다시 확인해두지 않으면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4. 그래도 손해배상을 지키려면 합의서를 이렇게 써야 합니다
합의서의 문구 한 줄이, 나중에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좌우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합의서에 “이 합의와는 별도로 갑은 을에게 이 사건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또는 “갑은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문구가 구체적일수록, 나중에 상대방이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다툴 여지가 줄어듭니다.
다만 문구가 다소 애매하게 적혀 있더라도 곧바로 청구가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손해배상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도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 법리, 즉 문언의 내용뿐 아니라 합의에 이른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그 합의로 달성하려 한 목적, 거래관행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판단 기준 시점은 어디까지나 합의해제 당시입니다. 따라서 합의서 문구만 부실하더라도, 합의 과정에서 오간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이메일에 “이 부분은 나중에 손해배상 문제로 따로 정리하자”는 취지가 남아 있다면 이를 근거로 유보 의사표시를 주장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 그리고 서명 이후라도 관련 대화 내용을 삭제하지 말고 모두 보관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상대방이 처음부터 이행할 의사나 능력 없이 계약을 체결하고 시간을 끌다가 뒤늦게 합의해제로 정리하려 한 정황이 있다면, 이는 손해배상 청구와는 별개로 형법 제347조 사기죄 성립 여부를 검토할 문제입니다. 사기죄는 2026년 3월 12일 시행된 개정 형법에 따라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한 범죄이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막히더라도 형사 책임까지 함께 검토할 실익이 있습니다.
5. 손해배상을 받아내려면 이런 순서로 진행합니다
합의서에 이미 도장을 찍었더라도, 증거부터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합의해제 이후 손해배상을 다투게 되면 통상 ①합의 전후 오간 합의서·문자·카카오톡·이메일 등을 모두 모아 손해배상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있었는지 확인 → ②내용증명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시 → ③협의가 되지 않으면 관할 법원(수원 지역 계약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 또는 소액인 경우 민사조정을 신청 → ④소송에서 특약·유보 의사표시의 존재와 손해의 범위를 증명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손해의 범위를 다툴 때는 민법 제393조에 따라 통상 발생하는 손해(대체 매물과의 시세 차액, 지연에 따른 대출이자 등)는 당연히 배상 범위에 들어가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배상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손해 항목을 무작정 나열하기보다, 어떤 손해가 통상손해이고 어떤 손해가 특별손해에 해당하는지 미리 구분해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합의서 원본과 합의 전후 주고받은 문자·카카오톡·이메일에 손해배상 관련 문구나 언급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합의해제로 실제 발생한 손해(대체거래 차액, 이사비용, 대출이자, 이미 지급한 위약금 등)를 항목별로 정리하고 계약서·영수증 등 증빙을 확보합니다.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계약 체결 경위에 기망이 있었는지를 별도로 검토해 형사 고소 가능성까지 함께 살핍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약 해제와 손해배상 분쟁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원상회복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 필요하다면 형사 고소까지 함께 검토해 실질적인 회수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며
계약을 합의로 정리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정작 손해배상 문제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합의서에 서명부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이럴 줄 알았으면 문구 하나라도 더 넣을 걸”이라며 뒤늦게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계약 상대방의 사정으로 손해를 본 쪽이라면,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 손해배상청구권을 유보하는 문구를 반드시 남기고, 그 전후 오간 대화 기록을 빠짐없이 보관해두어야 나중에 실질적인 회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합의해제로 안심하고 있는 쪽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합의서에 유보 문구가 없다고 안심하고 있다가도, 협상 과정의 문자나 이메일에 남은 표현 하나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약 해제 이후 손해배상을 받아내려는 쪽과, 합의로 다 정리됐다고 믿었던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합의서에 남긴 문구 한 줄이 사건의 결론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기 전, 혹은 이미 찍은 뒤라도 손해배상 가능성을 짚어봐야 하는 지금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합의해제 합의서에 아무 문구도 없이 서명했는데, 이미 늦은 건가요?
A. 합의서 자체에 문구가 없더라도 곧바로 청구가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 전후 오간 문자나 이메일에 손해배상을 유보하겠다는 취지가 남아 있다면 이를 근거로 다퉈볼 여지가 있으니, 관련 대화 기록부터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Q. 계약금은 돌려받았는데, 그것과 별개로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나요?
A. 계약금 반환은 원상회복 문제이고 손해배상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계약금을 돌려받았다고 해서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특약이나 유보 의사표시가 별도로 필요합니다.
Q. 원래 계약서에 위약금 조항이 있었는데, 합의해제 후에도 그 위약금을 받을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대법원은 원래 계약의 위약금 조항이 합의해제에도 적용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합의해제 이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Q. 상대방이 먼저 계약을 위반해서 어쩔 수 없이 합의해제한 건데도 손해배상을 못 받나요?
A. 상대방의 위반이 명백하더라도, 합의해제 자체는 새로운 계약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그 사정만으로 손해배상이 자동으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합의 과정에서 유보 의사표시를 남겼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Q.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한다는 내용을 문자로만 남겨도 효력이 있나요?
A.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대화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표현이 애매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합의서 자체에 명확한 문구로 남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Q. 합의해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이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나요?
A. 소멸시효가 남아 있다면 가능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보 의사표시를 뒷받침할 증거를 모으기 어려워지므로, 대화 기록과 자료부터 서둘러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상대방이 처음부터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형사 고소도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이행 의사나 능력 없이 계약을 체결한 정황이 있다면 사기죄 성립 여부를 별도로 검토할 수 있으며, 이는 손해배상 청구와 별개로 진행할 수 있는 절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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