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수사기관의 디지털포렌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지운 사진·메시지·통화녹음이 복구되어 원래 사건보다 “증거를 지운 행위” 자체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의뢰인들 중에는 조사를 앞두고 “어차피 내 사건이니까 내가 지워도 문제없겠지”, “증거인멸죄는 남의 사건에 손댈 때나 해당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으로 휴대전화 사진첩이나 대화방을 미리 정리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사 과정에서 삭제 이력이 드러나면, 원래 사건과는 별개로 증거인멸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라 당황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최근 대법원은 자기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스스로 없앤 경우와,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킨 경우를 서로 다른 법적 잣대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피고인의 방어권이고 어디서부터 별도의 범죄가 되는지, 그 경계선이 실무에서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아래에서는 자기 사건 증거를 스스로 지운 경우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는지, 어떤 경우에 예외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증거인멸죄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에만 적용됩니다
자기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스스로 없앤 행위는 형법 제155조가 정한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형법 제155조 제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조문의 문언 자체가 “타인의” 사건이라고 못박고 있어, 자기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는 애초에 이 조항이 겨냥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대법원도 오래전부터 이 원칙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피고인 스스로 자기 사건의 증거를 없애는 행위까지 처벌한다면, 형사소송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방어권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스스로 자기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행위는 죄가 되지 아니한다(대법원 1965. 12. 10. 선고 65도826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예를 들어 본인의 음주운전 정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스스로 지웠다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문자메시지를 스스로 삭제한 것만으로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이고, 아래에서 보듯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본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본인이 직접 없앤 것만으로는 원칙적으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2. 그 증거에 공범이나 상대방의 사건이 함께 걸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사건과 남의 사건이 뒤섞인 증거를 지우면 그 부분은 처벌 대상이 됩니다.
실무에서 자기 사건 증거인멸이 불처벌된다는 원칙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는, 지운 자료가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사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범이나 상대방의 형사책임과도 겹쳐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공동으로 가담한 사건에서 공범과 주고받은 대화방을 통째로 삭제했다면, 그 대화 내용은 나의 혐의뿐 아니라 공범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그 대화방을 지운 행위는 “타인(공범)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 자기 증거인멸의 불처벌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불리한 허위 정황을 만들었다가 뒤늦게 지우는 경우처럼, 애초에 그 자료가 상대방의 형사책임과 직결된다면 “내 사건이니까 괜찮다”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증거인멸죄는 현실적으로 수사가 방해받는 결과까지 요구하지 않는 추상적 위험범이므로, 실제 수사에 지장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처벌을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지운 자료에 공범이나 상대방의 형사책임이 함께 걸려 있다면, 그 부분은 “타인의 사건” 증거로 취급되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직접 지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면 증거인멸교사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지우면 죄가 안 되지만, 남을 시켜서 지우게 하면 교사범으로 처벌됩니다.
자기 사건 증거를 스스로 없애는 것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알고 나면, “그럼 지인에게 부탁해서 대신 지우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확한 선을 그었습니다.
자기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에 대하여는 증거인멸교사죄가 성립한다(대법원 1965. 12. 10. 선고 65도826 전원합의체 판결).
이유는 이렇습니다. 부탁을 받고 실제로 증거를 없앤 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증거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부탁한 사람)”의 형사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지인은 증거인멸죄의 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고, 그를 시켜서 범행을 결심하게 만든 원래의 당사자는 형법 제31조 제1항에 따라 정범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되는 교사범이 됩니다. 자신이 직접 하면 무죄, 남을 시키면 유죄라는 결과가 되는 셈입니다.
배우자나 직계혈족 등 친족·동거가족이 본인을 위해 증거를 인멸해 준 경우에는 형법 제155조 제3항의 특례로 처벌하지 않는 예외가 있지만, 친구나 직장 동료, 연인 등 이 범위를 벗어난 사람에게 부탁한 경우에는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본인이 직접 지우면 처벌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지우게 하면 그 순간 증거인멸교사죄가 별도로 성립합니다.
4. 지운 방법과 대상에 따라 재물손괴·전자기록손괴 등 별도 처벌이 함께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지운 자료가 누구 소유인지, 이미 압수돼 있었는지에 따라 적용 법조가 달라집니다.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라도, 지운 방식과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죄명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도 놓치기 쉽습니다.
먼저 지운 자료가 순수하게 내 개인 소유가 아니라 회사 공용 컴퓨터의 문서, 공동 명의 계좌 거래내역, 동업자와 함께 쓰는 클라우드 자료처럼 타인의 재물이나 전자기록에 해당한다면,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전자기록등손괴죄가 별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또한 이미 수사기관이 압수하거나 봉인한 자료, 즉 국가의 강제처분 표시가 붙은 물건을 훼손했다면 형법 제140조 공무상비밀표시무효죄가 적용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공무소가 보관 중인 서류나 전자기록을 손상한 경우라면 형법 제141조 제1항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가능합니다. 압수수색이 이미 진행된 이후의 삭제·초기화는 “자기 증거인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별도 범죄로 다뤄질 위험이 큽니다.
“내 사건이니 지워도 죄가 안 된다”는 판단은 지운 대상이 온전히 내 소유이고 아직 아무런 압류·봉인도 없을 때에만 통하는 이야기이고, 그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전혀 다른 처벌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5. 삭제 사실이 드러났다면 조사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포렌식으로 복구된 삭제 이력은 조사 초반부터 쟁점이 되므로 사전 정리가 필요합니다.
증거 삭제 정황이 있는 사건은 대개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경찰서·수원중부경찰서 등) 조사 단계에서 삭제 이력 자체가 별도 쟁점으로 부각되고 → ②피의자 조사에서 삭제 경위와 삭제된 자료의 성격(순수 본인 사건용인지, 공범·상대방과 관련된 것인지)을 집중적으로 추궁받은 뒤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처분 단계에서 원래 혐의에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추가될지 판가름 나며 → ④기소되면 법원(수원지방법원)에서 두 혐의를 함께 심리받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추가되면 증거 은폐 우려를 이유로 구속 수사 가능성도 함께 커집니다.
이미 자료를 지운 뒤라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상황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운 자료가 순수하게 본인의 형사사건에만 관한 것인지, 공범·상대방의 사건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부터 구분합니다.
본인이 직접 지웠는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지우게 했는지에 따라 적용될 죄명이 달라지므로 그 경위를 명확히 정리합니다.
지운 자료가 압수·봉인된 상태였는지, 공용·공동 소유 자료였는지를 확인해 재물손괴·공무상비밀표시무효 등 별도 혐의 가능성까지 함께 점검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형사사건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삭제 경위를 정리한다면, 원래 혐의와 증거인멸 관련 혐의를 분리해서 대응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자료를 지운 뒤에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사건 증거를 지운 쪽 입장에서는 그 자료가 정말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사건에 관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공범이나 상대방의 책임과도 얽혀 있었는지를 먼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합니다. 반대로 그로 인해 자신에게 불리해진 상대방이나 공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자료를 지운 경위와 대상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실질적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저는 증거를 지운 쪽과 그로 인해 불리해진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삭제 경위와 대상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이미 자료를 지운 뒤라도, 그 경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사받기 전에 제 휴대전화에서 불리한 사진을 지웠는데, 이것만으로 증거인멸죄로 처벌되나요?
A. 원칙적으로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에 관한 인멸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어, 순수하게 본인 사건에 관한 증거를 본인이 직접 지운 것은 대법원 판례상 죄가 되지 않습니다.
Q. 그럼 지운 흔적이 복구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가요?
A. 삭제 사실 자체가 증거인멸죄가 되지는 않아도, 원래 혐의를 입증하는 정황으로는 얼마든지 쓰일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이를 진술의 신빙성을 낮추거나 범행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친구에게 부탁해서 대신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처벌되나요?
A. 처벌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자기 사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타인을 교사한 경우 증거인멸교사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고, 이때 부탁받은 사람도 정범으로 함께 처벌될 수 있습니다.
Q. 배우자가 제 부탁으로 증거를 없애준 경우에도 둘 다 처벌되나요?
A. 배우자를 포함한 친족·동거가족이 본인을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형법 제155조 제3항에 따라 처벌하지 않는 특례가 있습니다. 다만 이 특례는 친족·동거가족 범위를 벗어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Q. 공범과 같이 쓰던 대화방을 제가 나가면서 대화 내용을 지웠습니다. 이것도 문제가 되나요?
A.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대화 내용이 공범의 형사책임과도 관련이 있다면, 이는 더 이상 순수하게 본인만의 사건 증거가 아니라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로 평가되어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Q. 이미 경찰에 압수된 제 휴대전화 자료를, 반환받은 뒤 초기화하면 어떻게 되나요?
A. 상황에 따라 다른 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압수 상태에서 손을 대면 공무상비밀표시무효죄가 문제 될 수 있고, 반환 이후라도 그 자료가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의 증거라면 삭제 경위 자체가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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