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이나 형강 같은 특정 자재 하나의 가격만 유독 급등했는데, 전체 공사비 물가변동률은 3%에 못 미쳐 계약금액 조정을 신청조차 못 하는 시공사가 적지 않습니다. 관급공사나 공공기관 발주 계약에서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별도 제도가 있는데, 바로 특정 자재만 따로 떼어 계약금액을 조정하는 '단품 슬라이딩'입니다. 이 제도는 전체 물가지수와 무관하게 그 자재 하나의 등락률과 비중만으로 조정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요건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받을 수 있는 증액분을 놓치거나 반대로 요건 미달인데도 헛되이 시간을 쓰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단품 슬라이딩이 언제 적용되고 어떤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지, 조정금액은 어떻게 계산되며 신청 절차에서 무엇을 놓치기 쉬운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물가변동 조정과 단품 슬라이딩 — 왜 자재 하나만 따로 챙겨야 하나
공공계약에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원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64조 제1항이 정한 방식이 기본입니다. 계약체결일로부터 90일 이상 경과하고,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100분의 3 이상 증감해야 전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자재비·노무비·경비 전체를 지수화해서 계산하기 때문에, 개별 자재 하나만 유독 뛰어도 전체 지수는 3%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철근값이 20% 뛰었어도 그 자재가 전체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전체 지수 등락률은 1~2%대에 머무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같은 시행령 제64조 제6항이 정한 특정규격 자재의 가격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실무에서 흔히 '단품 슬라이딩'이라 부르는 제도입니다. 전체 물가지수 등락과 무관하게, 개별 자재 하나의 가격증감률과 그 자재가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을 기준으로 그 자재분에 한해 계약금액을 조정합니다. 즉 전체 물가변동 조정과 단품 슬라이딩은 서로 배타적인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계약에서 각각 별도의 요건에 따라 함께 검토될 수 있는 두 갈래 조정 수단입니다. 어느 쪽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지는 뒤에서 비교하겠습니다.
단품 슬라이딩은 전체 물가지수가 3%에 못 미쳐도, 특정 자재 하나의 가격증감률과 비중 요건만 충족하면 그 자재분에 한해 계약금액을 조정받을 수 있는 별도 제도다.
단품 슬라이딩의 법적 근거 —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단품 슬라이딩을 적용받으려면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신청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첫째, 계약체결일 또는 직전 조정기준일로부터 90일 이상 경과해야 합니다. 둘째, 입찰일(또는 직전 조정기준일)을 기준으로 산정한 해당 자재의 가격증감률이 100분의 15 이상이어야 합니다. 셋째, 해당 자재가 그 공사의 순공사원가, 즉 재료비·노무비·경비 합계액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천분의 5(0.5%)를 초과해야 합니다. 이 비중 기준은 2023년 11월 16일 시행령 개정으로 기존 1%에서 0.5%로 완화되어, 더 많은 자재가 단품 슬라이딩 대상에 들어올 수 있게 됐습니다.
세 요건 중 실무에서 가장 자주 걸려 넘어지는 지점은 비중 요건입니다. 자재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그 자재가 전체 공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에 못 미치면 단품 슬라이딩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비중이 크더라도 가격증감률이 15%에 미달하면 역시 대상에서 빠집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자인 공사라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체계가 적용되는데, 이 경우 가격증감률 기준이 국가계약보다 완화된 100분의 10으로 정해져 있어 발주자가 국가기관인지 지방자치단체인지에 따라 기준선 자체가 달라집니다.
기간 요건 — 계약체결일(또는 직전 조정기준일)로부터 90일 이상 경과.
등락률 요건 — 국가계약은 15% 이상, 지방계약은 10% 이상 가격증감.
비중 요건 — 해당 자재가 순공사원가(재료비·노무비·경비 합계)의 0.5% 초과.
세 요건 중 하나라도 미달이면 그 시점에는 단품 슬라이딩을 신청할 수 없음.
기간·등락률·비중, 세 요건은 각각 독립적이어서 하나라도 미달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충족돼도 단품 슬라이딩은 성립하지 않는다.
조정기준일은 언제 확정되나 — 90일·15%·0.5%가 겹치는 날
단품 슬라이딩에서 조정기준일은 계약당사자가 임의로 고르는 날이 아니라, 세 요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날로 자동 확정됩니다. 계약체결 후 90일이 지난 시점부터 매일 해당 자재의 가격을 추적하다가, 입찰일 대비 등락률이 15%(지방계약은 10%) 이상이 되고 그 자재의 비중이 0.5%를 넘는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첫날이 조정기준일이 됩니다. 등락률이 15%를 넘었더라도 아직 90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그날은 조정기준일이 될 수 없고, 90일이 지난 뒤 등락률이 15%에 도달한 날이 기준일이 됩니다.
조정기준일이 한번 확정되면 그날부터 90일 이내에는 같은 자재에 대해 다시 조정을 받을 수 없다는 제한도 함께 따라옵니다. 자재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라도, 직전 조정기준일로부터 90일이 지나기 전에는 추가 조정을 신청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시공사 입장에서는 자재값 추이를 계약체결 시점부터 계속 기록해 두어야 조정기준일이 실제로 언제 도래했는지, 그리고 다음 조정 신청이 가능한 시점이 언제인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조정기준일 자체를 다투는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등락률과 조정금액은 어떻게 계산하나 — 품목조정률과 선급금 공제
가격증감률은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가 정한 산식을 준용해 산정합니다. (물가변동 당시 가격 − 입찰 당시 가격) ÷ 입찰 당시 가격으로 계산한 값이 그 자재의 등락률이며, 이 값이 앞서 본 15%(또는 10%) 기준을 넘는지로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합니다. 단품 슬라이딩으로 계약금액을 조정할 때는 지수조정률이 아니라 품목조정률 방식에 따라 그 자재분에 해당하는 금액만 다시 산정합니다. 전체 계약금액을 통째로 지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재의 수량과 단가 변동분만을 따로 계산해 반영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놓치는 부분이 선급금 공제입니다. 계약체결 시 선급금을 이미 지급받은 경우에는, 조정금액을 산정할 때 그 선급금에 상응하는 부분을 공제한 나머지에 대해서만 증액이 이루어집니다. 선급금 공제를 반영하지 않고 조정금액을 계산하면 실제 지급 가능한 금액보다 과다하게 청구하는 결과가 되어, 정산 단계에서 다시 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습니다. 조정 청구서를 작성할 때는 선급금 수령 여부와 공제율을 먼저 확인한 뒤 금액을 산정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철근값이 뛴 관급공사로 보는 실제 적용 예시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느 관급 건축공사에서 순공사원가 100억원 중 철근 자재비가 8천만원으로 0.8%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0.5% 비중 요건을 이미 넘긴 상태입니다. 계약체결 후 100일이 지난 시점에 철근 가격이 입찰 당시보다 18% 상승했다면, 90일 경과·15% 이상 등락·0.5% 초과 비중이라는 세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 그 시점이 조정기준일로 확정됩니다. 이 경우 시공사는 발주기관에 철근 자재분에 한정한 계약금액 조정을 청구할 수 있고, 다른 자재나 노무비 부분은 이 조정과 무관하게 그대로 유지됩니다.
반대의 예도 있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형강 가격이 20% 올랐더라도 형강 자재비가 순공사원가의 0.3%에 불과하다면, 등락률 요건은 충족했어도 비중 요건에 미달해 단품 슬라이딩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형강 하나만으로는 조정을 받을 수 없고, 전체 물가지수가 3% 이상 오르는 시점까지 기다려 일반 물가변동 조정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재별로 비중을 미리 계산해 두면 어느 자재가 단품 슬라이딩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어느 자재는 전체 지수 조정을 기다려야 하는지 미리 가늠할 수 있습니다.
조정 청구 절차와 30일 기한 — 발주기관의 재량이 아니다
단품 슬라이딩 요건을 충족한 경우, 계약금액 조정은 발주기관이 마음대로 해주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재량 사항이 아닙니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 제9항에 따라 발주기관은 계약상대자로부터 계약금액 조정을 청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계약금액을 조정해야 합니다. 다만 예산 배정이 지연되는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계약상대자와 협의해 조정 기한을 연장할 수 있고, 증액할 예산 자체가 없는 경우에는 공사량을 조정해 그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청구 절차에서는 요건 충족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갖추는 것이 관건입니다. 해당 자재의 입찰 당시 가격과 조정기준일 당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거래명세서나 조달청 물가자료, 그 자재가 순공사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산출한 내역서, 계약체결일과 조정기준일 사이의 경과일수를 정리한 자료를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이 자료가 부실하면 발주기관이 요건 충족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처리가 늦어지고, 30일 기한 자체도 청구서가 정식으로 접수된 시점부터 기산되므로 자료 미비로 접수가 지연되면 그만큼 조정도 늦어집니다.
입찰 당시 가격과 조정기준일 당시 가격을 증빙할 자료(거래명세서·물가자료 등).
해당 자재의 순공사원가 대비 비중을 계산한 내역서.
계약체결일부터 조정기준일까지의 경과일수 정리 자료.
선급금 수령 여부와 공제 예정액.
일반 물가변동 조정과 단품 슬라이딩, 언제 어느 쪽을 써야 하나
같은 공사에서 전체 물가지수가 3% 이상 오르는 상황과 특정 자재만 15% 넘게 뛰는 상황은 동시에 발생할 수도, 따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전체 지수가 이미 3%를 넘겼다면 일반 물가변동 조정으로 공사비 전체를 지수화해 조정받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전체 지수는 3%에 못 미치지만 유독 한두 개 자재만 급등한 상황이라면, 그 자재만 따로 떼어 단품 슬라이딩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일한 실익 있는 선택지가 됩니다. 두 제도는 택일 관계가 아니라 요건이 갖춰지는 시점마다 각각 별도로 청구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다만 이 제도는 국가계약법이나 지방계약법이 적용되는 공공발주 공사, 또는 그에 준하는 조달계약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민간 건설사 사이의 도급계약이나 하도급계약에는 계약서에 공사계약일반조건을 준용한다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두지 않는 한 단품 슬라이딩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민간 계약에서 자재값 급등으로 계약금액 조정을 원한다면, 계약서에 물가변동 조정 조항이나 특정 자재에 대한 별도 조정 조항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고, 그런 조항이 없다면 민법상 사정변경의 원칙을 근거로 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단품 슬라이딩은 공공계약에 법정된 제도이고, 민간계약에서는 계약서에 이를 준용하는 조항이 없으면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자주 묻는 질문
Q. 단품 슬라이딩은 민간 건설공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나요?
A. 아닙니다. 단품 슬라이딩은 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 체계에 따른 공공발주 공사에 법정된 제도이며, 민간 도급계약에는 계약서에 공사계약일반조건을 준용한다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두지 않는 한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Q. 자재값이 15% 넘게 올랐는데도 조정을 못 받는 경우가 있나요?
A. 있습니다. 등락률이 15%를 넘어도 그 자재가 순공사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를 넘지 못하면 비중 요건 미달로 단품 슬라이딩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전체 물가지수가 3% 이상 오르는 일반 물가변동 조정 요건을 기다려야 합니다.
Q. 여러 자재가 동시에 요건을 충족하면 각각 따로 신청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단품 슬라이딩은 자재별로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므로, 철근과 시멘트가 동시에 15% 이상 오르고 각각 비중 요건도 충족한다면 두 자재 모두에 대해 각각 조정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조정기준일이 지난 뒤 자재값이 더 오르면 바로 재신청할 수 있나요?
A. 곧바로는 어렵습니다. 조정기준일로부터 90일이 지나기 전에는 같은 자재에 대해 다시 조정을 받을 수 없으므로, 90일이 경과한 뒤 그 시점의 등락률이 다시 요건을 충족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Q. 발주기관이 요건을 충족했는데도 조정을 미루면 어떻게 하나요?
A. 요건이 충족된 이상 조정은 발주기관의 재량이 아니라 법령상 이행해야 할 의무이며, 청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조정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예산 배정 지연 등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데도 미루는 경우에는 청구 경위와 요건 충족 자료를 정리해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공사도 15%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나요?
A.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어 가격증감률 요건이 10% 이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발주자가 국가기관인지 지방자치단체인지에 따라 적용 법령과 등락률 기준선이 달라지므로 계약서와 발주자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맺음말
단품 슬라이딩은 전체 공사비 물가지수가 잠잠하더라도 특정 자재 하나가 급등했다면 그 자재분만 별도로 계약금액을 올려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다만 기간·등락률·비중이라는 세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성립하고, 그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요건 자체가 무너지는 만큼 계약체결 시점부터 자재값 추이와 비중을 꾸준히 기록해 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요건이 충족됐는데도 발주기관이 조정을 미루는 경우에는 30일 기한 규정을 근거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자재값 급등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은 산정 방식과 청구 절차가 세부적이어서, 요건 충족 여부와 조정금액 계산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제 자재 비중 계산이나 발주기관과의 청구 절차에서 다툼이 생겼다면 관련 자료를 미리 정리해 상담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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