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개요
의뢰인 A씨는 출근길 아침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다 실수를 했습니다. 전방 신호가 적색일 때 일시정지를 하고 진입해야 하는데, 그대로 통과한 것입니다. 위반은 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던 10대 학생이 A씨의 차를 보고 놀라 멈추는 과정에서 다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차와 사람은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전치 2주(허리 염좌)의 진단서가 제출되었고,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이른바 '비접촉 사고'의 피의자로 입건되어 사건이 검찰까지 송치되었습니다.
■ 사건의 쟁점과 어려움
부딪히지 않아도 교통사고가 됩니다. 운전자의 과실로 보행자가 놀라 넘어져 다쳤다면, 직접 충돌이 없어도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신호위반이라는 과실은 명백했고, A씨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과실을 다툴 수 없는 상황에서 진단서까지 나와 있으니, 겉보기엔 빠져나갈 틈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상대가 10대 학생이라는 점도 부담이었습니다. 어린 피해자의 진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양새 자체가 조심스러운 사건 — 그래서 이 사건의 방어는 사람의 말을 공격하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승부처는 두 가지였습니다. 정말 형법상 '상해'가 발생했는가, 그리고 그 상해가 A씨의 과실 '때문'인가.
■ 변호인의 조력 — 영상은 행동을 기록한다
블랙박스 전·후방을 다시 읽었습니다 — 영상 속 학생은 A씨의 차가 눈앞을 지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앞을 보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완전히 지나간 뒤에도 서너 걸음을 더 달려 나갔고, 그러다 몸을 돌린 것은 놀라서가 아니라 달리다 떨어뜨린 소지품을 주우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차를 보고 놀라 멈추다 다쳤다'는 진술과는 다른 장면이 후방 카메라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상해'의 성립부터 물었습니다 — 대법원은 일상생활 중 통상 생길 수 있는 정도의 경미한 상처, 치료 없이 자연히 낫는 정도라면 형사처벌의 대상인 상해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위 경위에서 2주 진단의 허리 염좌가 생겼다는 주장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진단서의 증명력을 검증했습니다 — "교통사고로 허리가 아프다"는 호소만으로도 통상 발급되는 종류의 진단서라면, 발급 경위와 진단 시점, 실제 치료가 이어졌는지까지 엄격히 살펴야 한다는 판례(2016도15018)를 토대로, 진단서 한 장을 상해의 증명으로 삼을 수 없다고 다퉜습니다.
비접촉 사고의 인과관계 법리 — 비접촉 사고 처벌에는 과실과 상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엄격히 증명되어야 합니다(89도866, 2001도6932). 단지 '일시정지했더라면'이라는 가정만으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점을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인정할 것은 처음부터 인정 — 신호위반 사실은 숨기지 않았고, 블랙박스 영상도 수사 초기에 자진 제출했습니다. 위반의 인정과 상해의 다툼은 별개라는 것이 이 사건 방어의 뼈대였습니다.
■ 적용 법리
비접촉 사고는 분명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상해의 발생'과 '과실과의 인과관계'가 모두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인과관계를 '그 행위가 없었더라면'이라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결과 발생의 개연성으로 판단하므로, 일시정지 위반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상해의 책임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진단서는 그 출발점일 뿐 결론이 아니며, 객관 영상과 어긋나는 진술 위에 세워진 진단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 결과
검찰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습니다. 신호위반이라는 과실을 인정한 사건에서도, 상해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으면 형사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 이 사례의 의의
운전자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사건 유형입니다. 부딪힌 적이 없는데 가해자가 되고, 진단서가 나왔으니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반대 방향을 보여 줍니다. 영상은 사람의 '행동'을 기록하고, 그 행동은 진술보다 정직합니다. 그리고 위반을 인정하는 것과 상해의 책임을 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맺음말
비접촉 사고로 연락을 받았다면, 먼저 블랙박스 원본을 확보하고 사고 전후 장면을 프레임 단위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위반한 부분은 인정하되, 상해의 발생과 인과관계는 별도의 쟁점으로 다투어야 합니다. 진단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진단서가 어떤 경위로, 어떤 근거에서 발급되었는지 역시 검증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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