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개요
의뢰인 A씨는 이웃 지역의 직장까지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던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해가 진 직후의 퇴근길, 가로등이 없는 국도(편도 2차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상향등을 켠 차가 지나가며 시야가 하얗게 번진 직후 — 1초 남짓한 사이, 어둠 속에서 도로를 건너던 고령의 보행자가 차량 앞에 나타났습니다. A씨는 미처 피하지 못했고, 보행자는 사망했습니다.
블랙박스에는 사고의 전 과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으로 A씨가 제한속도를 상당히 초과해 주행한 사실까지 그대로 확인되었습니다. A씨는 과속을 인정했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 사건의 쟁점과 어려움
결과는 사망, 과속은 자백 — 언뜻 다툴 여지가 없어 보이는 구도였습니다. 실제로 첫 상담에서 저희도 기소와 재판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안내했던 사건입니다.
사망사고에는 종합보험 가입이나 합의로 처벌을 면하게 하는 특례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유족과 원만히 합의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길은 하나였습니다. 과속이라는 '과실'과 사망이라는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 제한속도를 지켰더라면 과연 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는가.
■ 변호인의 조력 — 프레임 단위의 재구성
한 장의 프레임을 찾았습니다 — 블랙박스 영상을 수백 장의 정지 화면으로 분해해, 피해자의 발끝이 화면에 처음 잡히는 프레임을 특정했습니다. 그 순간 차량과 보행자 사이의 거리는 도로 점선 1.5칸. 국도의 점선 간격(약 13m)을 기준으로 약 20m였고, 지도상 거리 측정으로도 같은 값이 나왔습니다.
사람의 눈은 기계보다 늦습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는 어두운 옷의 보행자를 운전자가 알아보는 거리가 통상 20~40m이지만, 맞은편 차량의 상향등 불빛 때문에 이 사건에서는 인지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상향등에 눈이 부신 운전자가 피해자를 실제로 식별할 수 있었던 거리는, 블랙박스에 발끝이 잡힌 20m보다 짧으면 짧았지 길 수는 없습니다.
멈출 수 있는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 제한속도인 시속 60km로 달리는 차가 완전히 서기까지는 공주거리 약 13.3m에 제동거리 약 17.7m, 합계 약 31m가 필요합니다. 알아볼 수 있던 거리 20m, 멈추는 데 필요한 거리 31m. 규정 속도로 달렸더라도 발이 브레이크에 닿기 전에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 숫자로 나왔습니다.
장소의 구조를 입증했습니다 — 사고 지점은 인도가 없고 양옆으로 가드레일과 옹벽이 있어 보행자의 횡단 자체를 예상하기 어려운 곳임을 사진으로 정리했습니다.
법리와 별개의 도리 — A씨는 장례식장을 찾아 머리 숙여 사죄했고, 장례 비용에 보태 달라며 성의를 전했습니다. 나아가 유족 측이 보험금을 최대한으로 지급받는 데 걸림돌이 없도록 법적 정리까지 마쳤고, 유족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서면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다투는 일과 사죄하는 일은 별개라는 것이 이 사건 변호의 원칙이었습니다.
■ 적용 법리
대법원은 제한속도를 지키며 진행했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다면, 과속의 잘못이 있더라도 그 잘못과 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98도1854). 과실의 인정과 죄책의 인정은 같은 말이 아니며, 그 사이에는 인과관계라는 관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 결과
검찰은 불기소(혐의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기소와 재판까지 각오하고 시작한 사망사고의 피의자가, 법정에 서는 일 없이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 이 사례의 의의
같은 블랙박스가 과속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혐의를 벗기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영상을 그냥 '보는' 것과 프레임 단위로 '읽어내는' 것의 차이가 결론을 갈랐습니다. 만약 영상을 수사기관의 시각으로만 두었다면 이 사건은 과속 사망사고로 기소되었을 것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다툴 것은 끝까지 다투는 것, 그리고 그 다툼과 별개로 고인과 유족 앞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 — 이 둘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 맺음말
사망사고를 낸 그 순간부터 운전자는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블랙박스 원본 영상과 주행 기록을 손대지 않은 상태로 확보해 둘 것,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과실의 범위까지 스스로 단정해 진술하지 말 것, 그리고 다툴 부분의 법리 검토와 유족을 향한 사죄를 나란히 진행할 것. 무거운 결과 앞에서도 책임의 유무와 범위는 증거와 법리로 가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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