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배수구 사고와 업무상과실치상, 벌금 300만 원의 교훈
2024년 6월의 어느 아침, 부산의 한 아파트 정문 앞. 옆 빌라에 사는 40대 어머니가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려고 아파트 단지 안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의 철제 배수구, 약 5cm 벌어진 틈에 오른발이 빠지며 넘어졌습니다. 전치 3주의 염좌. 이 사고로 형사법정에 선 사람은 아파트 관리소장이었고, 죄명은 업무상과실치상, 결과는 벌금 300만 원이었습니다.
관리소장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합니다. 통상적인 관리·감독은 다 했고, 하필 그 순간 그 틈에 발이 빠진 것은 우발적 사고 아니냐. 게다가 다친 사람은 우리 입주민도 아닌 외부인이고, 시설 보수에는 돈이 드는데 그 돈은 관리소장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실제로 피고인 측은 법정에서 이렇게 다퉜습니다. 그러나 판결문을 따라가 보면, 법원이 왜 이 항변들을 하나하나 걷어냈는지가 보입니다.
"몰랐다"가 아니라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의 급소는 관리소장이 그 틈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에 따르면, 문제의 배수구 틈은 예전부터 말썽이어서 철망으로 동여매는 임시조치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사고 당시에는 그 철망마저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던 위험, 해오던 조치, 그것이 풀린 상태. 예견가능성을 다투기에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비용이 드는 일이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항변도 무너졌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이 관리소장에게 하자의 발견과 하자보수 청구, 안전점검 업무를 맡기면서 비용 지출 사항은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치라고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관리소장은 그 안건을 올린 적 자체가 없었습니다. 예산 탓을 하려면 최소한 예산을 요청한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건의조차 하지 않았던 겁니다. 더구나 사고 직후 이 틈은 철판을 덧대 용접하는 것만으로 사라졌습니다. 법원은 그 정도 소액의 보수, 아니 그보다 못한 철망 동여매기, 나무판 고정, 하다못해 주의 안내표지판 하나만으로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외부인이라는 항변이 통하지 않은 이유
피해자가 입주민이 아니라는 점도 면책 사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아파트에는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도, 출입을 막는 시설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면, 외부 보행자가 그 틈에 빠지는 일은 예상 못 할 이례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죠. 결국 5cm면 육안으로도 위험이 보이는 명백한 하자를, 알면서, 손쉬운 조치조차 없이 방치한 것. 그것이 유죄의 뼈대였습니다.
관리 현장에 남기는 체크리스트
이 판결이 관리소장님들께 주는 메시지는 잔인할 만큼 실용적입니다. 첫째, 위험을 인지한 순간부터 기록을 남기세요. 순찰일지에 하자를 적고, 임시조치를 하고, 사진을 찍어두는 것. 둘째, 돈이 드는 보수라면 반드시 입주자대표회의에 안건으로 올리고 그 공문을 보관하세요. 예산이 부결되었다는 기록은 방패가 되지만, 건의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창이 됩니다. 셋째, 예산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즉 접근 차단, 경고 표지, 임시 고정은 즉시 하세요. 법원이 본 것은 완벽한 보수가 아니라 최소한의 성의였습니다. 그리고 입주자대표회의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관리소장이 올린 안전 관련 안건을 미루는 것은, 다음 사고의 책임 지도를 입주자대표회의 쪽으로 옮겨 그리는 일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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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랜드로 부동산 전문 변호사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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