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에 결함이 있어 소비자가 다쳤을 때, 제조업자 상당수는 "공급 당시엔 알 수 없었다", "정부가 정한 기준을 다 지켰다"는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조물책임법은 이런 사정을 면책사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항변, 즉 개발위험 항변과 법령준수 항변은 조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방패가 아닙니다. 법은 이 항변을 쓸 수 있는 문을 처음부터 좁게 열어두었고, 공급 이후의 행동 하나로 그 문 자체를 닫아버리는 규정까지 별도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항변이 실제로 어떤 요건에서 인정되고, 어떤 경우에 통째로 막히는지를 조문 구조에 따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제조물책임법상 면책사유 — 왜 두 항변이 실무의 핵심 쟁점인가
제조물책임법 제4조 제1항은 제3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 즉 제조업자가 다음 네 가지 사실 중 하나를 입증하면 책임을 면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입증한 경우"라는 문구입니다. 제조물책임 소송은 원래 소비자가 결함과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지만, 면책사유에 관해서는 반대로 제조업자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책임을 벗을 수 있습니다. 증명책임이 뒤집혀 있다는 점이 이 조항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해당 제조물을 공급하지 않았다는 사실 — 유통 경로 다툼, 대체로 사실관계가 명확해 다툴 여지가 적음.
공급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 — 이른바 개발위험 항변.
결함이 공급 당시의 법령이 정한 기준을 준수함으로써 발생했다는 사실 — 이른바 법령준수 항변.
원재료·부품의 경우 완제품 제조업자의 설계·제작 지시로 결함이 발생했다는 사실.
네 가지 사유 중 실제 소송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개발위험 항변과 법령준수 항변입니다. 첫 번째와 네 번째는 유통 구조나 계약관계가 서류로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는 반면, 뒤의 두 항변은 "그 당시 기술 수준", "기준 준수와 결함의 인과관계"처럼 평가가 개입하는 영역이라 다툼의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제조물책임법상 면책사유는 제조업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사항이다 — 소비자가 결함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과 제조업자가 면책사유를 증명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개발위험 항변 — "공급 당시 과학·기술 수준"이라는 좁은 문
개발위험 항변이 인정되려면 단순히 제조업자가 결함을 몰랐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문이 요구하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 즉 그 시점에 존재하던 과학·기술 수준을 총동원해도 결함의 존재 자체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과학·기술 수준은 그 제조업자 개인의 지식이나 업계 평균이 아니라, 공급 당시 사회에서 실제로 입수 가능했던 최고 수준의 지식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제조업자가 몰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항변이 실무에서 무너지는 지점은 대개 시점 다툼입니다. 제조업자는 "우리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원고 측이 같은 시기 국내외 학술 문헌이나 관련 업계의 사고 보고, 동종 제품에 대한 경고 사례 등을 제시하면 "발견할 수 없었다"는 항변은 곧바로 흔들립니다. 특정 위험이 이미 학계나 유사 업종에서 논의되고 있었다면, 그 제조업자만 몰랐다는 사정은 면책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정황으로 뒤집혀 읽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항변을 준비하는 제조업자는 공급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기술 문헌, 시험 성적서, 안전성 검토 자료를 구체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고, 막연히 "그때는 몰랐다"는 진술만으로는 법정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법령준수 항변 — 기준 준수가 곧 안전을 뜻하지 않는 이유
법령준수 항변도 요건을 좁게 읽어야 합니다. 조문은 단순히 "법령 기준을 지켰다"가 아니라 "결함이 그 법령 기준을 준수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제조업자가 관련 법령·고시·인증 기준을 다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문제된 결함이 다른 원인이 아니라 바로 그 법정 기준을 지킨 결과로 생겼다는 인과관계까지 별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기준을 지켰다는 사실과 결함이 그 기준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은 별개의 증명 대상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령상 안전기준의 성격입니다. 각종 안전 인증·표시 기준은 대개 그 시점에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하한선일 뿐, 제조업자가 갖춰야 할 안전성의 상한을 정한 것이 아닙니다.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2호는 결함을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까지 포함하도록 정의하고 있어서, 법령상 최소 기준을 지켰다는 사정만으로 이 통상적 안전성 결여가 자동으로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관련 법령이 개정되기 전 구 기준을 그대로 지켰더라도, 그 구 기준 자체가 이미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법원은 법령준수 항변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령 기준은 방패의 재료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 완성된 방패는 아닙니다.
법령상 안전기준은 최소한의 하한선이다 — 이를 준수했다는 사실이 곧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까지 충족했다는 뜻은 아니다.
진짜 관문 — 제4조 제2항, 공급 이후의 사후조치의무
개발위험 항변과 법령준수 항변이 실무에서 좀처럼 통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4조 제2항은 "제조업자가 제조물을 공급한 후에 그 제조물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그 결함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제1항 제2호부터 제4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개발위험 항변, 법령준수 항변, 부품업자의 지시 항변 세 가지 모두 이 조항의 적용 대상입니다.
이 조항의 구조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공급 당시엔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개발위험 항변의 요건을 실제로 충족했다고 하더라도, 그 후 시장에 나온 뒤 소비자 불만이나 사고 신고, 유사 제품의 리콜 정보 등을 통해 결함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시점이 온다면, 그 시점부터는 별개의 의무가 발생합니다. 리콜, 판매 중단, 시정조치 안내, 경고 표시 보완처럼 손해 발생을 실제로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면 그 이후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애초에 개발위험 항변이 성립했는지와 무관하게 면책 자체를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내부적으로 결함 가능성을 조사만 하고 보고서만 작성해 둔 것은 이 조항이 말하는 "적절한 조치"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조치는 소비자에게 실제로 전달되고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함 추정 규정과 맞물리면 항변의 문턱이 한층 높아진다
2017년 신설된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는 피해자가 (1)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2) 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사실, (3) 그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공급 당시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정합니다. 제조업자가 다른 원인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 추정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대법원은 이미 이 조항이 신설되기 전부터, 텔레비전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중 발화해 화재가 발생한 사안에서 결함과 인과관계를 사실상 추정하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다15934 판결). 제3조의2는 이런 실무 흐름을 법률로 명문화한 것입니다.
이 추정 규정과 면책사유 조항을 함께 놓고 보면, 제조업자가 넘어야 할 관문이 이중으로 겹칩니다. 먼저 원고가 정상 사용 중 손해 발생, 지배영역, 결함 없이는 비정상이라는 세 가지를 증명해 결함과 인과관계 추정을 받아내면, 제조업자는 이를 뒤집을 다른 원인을 증명하거나 개발위험·법령준수 항변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항변마저 제4조 제2항의 사후조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무너집니다. 결국 결함 추정을 깨지 못한 상태에서 면책 항변까지 막히면, 제조업자는 사실상 책임을 다툴 방법이 남지 않는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면책이 실제로 막히는 장면 — 사후조치의무 위반이 드러나는 유형
소송에서 제4조 제2항이 문제되는 사안은 대체로 몇 가지 유형으로 반복됩니다. 소비자 불만이나 사고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개별 민원으로만 처리하고 전체 제품에 대한 점검이나 리콜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 해외에서는 동일 제품에 대해 리콜이나 시정조치가 이루어졌는데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치 없이 판매를 계속한 경우, 유사한 결함으로 이미 소송이나 분쟁이 발생했는데도 설계나 표시를 바꾸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계속 공급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사안에서 원고 측은 제조업자의 내부 품질관리 문서, 콜센터·소비자상담 접수 기록, 해외 리콜 공지, 관련 행정기관의 시정권고 이력 등을 증거로 확보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조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합니다. 반대로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결함 인지 시점과 그 이후 실제로 취한 조치(설계 변경, 표시 개선, 리콜 공고, 소비자 안내문 발송 등)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자료를 갖추고 있어야 이 조항의 적용을 피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결함을 인지한 뒤 조치까지 걸린 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던 경우, 법원은 그 지연 자체를 사후조치의무 위반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비자 불만 접수 후 전체 제품 점검·리콜로 이어졌는지 여부.
해외 리콜·시정조치가 국내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는지 여부.
유사 사고·소송 발생 이후 설계·표시를 실제로 개선했는지 여부.
결함 인지 시점부터 조치까지 걸린 기간이 합리적이었는지 여부.
면책 실패가 부르는 후폭풍 —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경우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2항은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사람이 있는 경우, 그 사람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정합니다. 법원은 배상액을 정할 때 고의성의 정도, 손해의 정도, 제조업자가 취득한 경제적 이익, 형사처벌·행정처분을 받았다면 그 정도, 제조물 공급이 지속된 기간과 규모, 제조업자의 재산상태,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한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조항이 요구하는 사실관계가 제4조 제2항의 사후조치의무 위반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입니다.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정이 인정되면, 이는 개발위험·법령준수 항변을 막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도 됩니다. 즉 면책 항변이 막히는 사안일수록 단순 손해배상을 넘어 3배 배상까지 함께 다투어지는 경우가 실무상 드물지 않습니다. 제조업자로서는 면책사유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결함을 인지한 이후의 대응 이력 자체를 소송 이전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해 두어야 이런 이중의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개발위험 항변이 인정되면 그 제품 관련 소송에서 무조건 면책되나요?
A. 아닙니다. 공급 당시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도, 그 이후 결함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 리콜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제조물책임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그 이후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면책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Q. 정부가 정한 안전기준을 다 지켰는데도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법령상 기준은 최소한의 하한선이라, 이를 준수했다는 사실만으로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까지 갖췄다고 단정되지 않습니다. 법령준수 항변이 인정되려면 결함이 바로 그 기준을 지킨 결과로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까지 별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Q. 제4조 제2항이 말하는 "적절한 조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요?
A. 리콜, 판매 중단, 소비자 대상 시정조치 안내, 표시·설명 보완처럼 결함으로 인한 손해 발생을 실제로 줄이거나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의미합니다. 내부적으로 결함 가능성을 조사하거나 보고서만 작성해 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부품이나 원재료를 납품한 업체도 같은 방식으로 면책이 막히나요?
A. 그렇습니다. 완제품 제조업자의 설계·제작 지시로 결함이 발생했다는 항변 역시 제4조 제2항의 적용 대상이라, 부품업체가 결함 가능성을 알고도 방치하면 같은 논리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Q. 결함 추정 규정 때문에 제조업자가 무조건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피해자가 정상적 사용 중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지배영역 안의 원인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결함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 세 가지를 모두 증명한 경우에만 추정이 작동하며, 제조업자가 다른 원인을 증명하면 추정은 깨집니다.
Q. 면책 항변이 막히면 실제 손해배상 외에 다른 책임까지 지게 되나요?
A. 결함을 알면서도 방치해 생명·신체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면,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어 단순 실손해배상보다 부담이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맺음말
개발위험 항변과 법령준수 항변은 제조물책임법이 분명히 인정하는 면책사유이지만, 실무에서는 조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개발위험 항변은 "몰랐다"가 아니라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고, 법령준수 항변은 기준 준수 사실과 결함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별도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두 항변을 어렵게 충족했더라도, 공급 이후 결함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제4조 제2항이 그 문을 다시 닫아버립니다.
결국 제조업자에게 필요한 것은 면책사유를 소송 단계에서 급하게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제품 공급 이후에도 결함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리콜·시정조치 체계를 실제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시흥 시화·정왕 산업단지처럼 제조업체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이런 사후 대응 이력의 관리 여부가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결함 신고나 리콜 관련 분쟁이 이미 진행 중이라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실관계와 증거를 정리해 대응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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