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중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 이미 분묘를 써둔 상태에서, 남은 한 분마저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같은 자리에 나란히 모시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문제는 그 땅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분묘기지권이라는 권리 하나로만 사용하고 있는 남의 땅일 때 생깁니다. 이미 인정받은 분묘기지권의 범위 안이니 봉분 하나쯤 더 쓰는 것도 당연히 괜찮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법원은 이를 명확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분묘기지권의 범위가 실제로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범위 안에서도 왜 합장을 위한 새 분묘 설치는 허용되지 않는지, 그리고 적법하게 합장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분묘기지권이란 — 등기 없이도 인정되는 관습법상 권리
분묘기지권은 타인의 토지 위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분묘가 있는 땅 부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관습법이 인정해 온 특수한 권리입니다. 등기부에 올라가지 않고 별도 계약서도 없이 성립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지상권과 다르지만, 판례는 오래전부터 이를 물권에 준하는 권리로 취급해 왔습니다. 성립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뒤 분묘에 관해 별도의 약정 없이 토지만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경우, 그리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해 시효로 취득한 경우입니다.
다만 세 번째 시효취득형은 최근 들어 요건이 예전보다 무거워졌습니다.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은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사람이라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 시점부터는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무상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종전의 안이한 인식을 바꿔놓았습니다. 어느 경로로 성립했든 분묘기지권은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용은 애초에 분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낸다는 목적에 묶여 있다는 점이 이어지는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승낙형 — 토지 소유자가 분묘 설치를 허락한 경우
자기 토지 처분형 — 자기 땅에 분묘를 쓴 뒤 분묘에 관한 특약 없이 토지만 매도한 경우
시효취득형 —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 기지를 점유한 경우(다만 지료 지급의무는 별도로 발생)
분묘기지권은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이다 — 등기 없이도 성립하지만, 그 사용 범위는 처음부터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한다는 목적에 묶여 있다.
분묘기지권의 범위 — 기지뿐 아니라 위요지까지, 그러나 무한정은 아니다
대법원 1997. 5. 23. 선고 95다29086, 29093 판결은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분묘가 차지한 좁은 기지 자체로만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판례는 분묘의 수호와 봉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분묘 기지 주위의 공지, 즉 위요지까지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친다고 밝혔습니다. 성묘객이 절을 올릴 공간, 제수를 차릴 자리, 분묘 주변을 벌초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여유 공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는 것은 아니고, 분묘의 규모와 주변 지형, 그 지역의 장묘 관행 등을 종합해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같은 판결의 태도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오해하는 지점은 옛 매장법(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체계)이 정한 분묘 1기당 점유면적 제한입니다. 위 판례는 법령상의 면적 제한이 가리키는 것은 분묘의 기지면적일 뿐이고,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위요지까지 포함한 묘지면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분묘기지권의 범위가 법령상의 제한면적 안으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즉 법령상 면적 제한과 분묘기지권의 사법상 범위는 서로 다른 잣대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8조는 공설묘지·가족묘지·종중묘지·법인묘지 안 분묘 1기의 점유면적을 10㎡(합장하는 경우 15㎡)로, 개인묘지는 30㎡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기지면적'의 상한일 뿐 위요지까지 합한 분묘기지권의 실제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분묘는 위요지를 넓게 인정받고 어떤 분묘는 좁게 인정받는 차이가 생기는데, 그 차이가 다음 항목에서 다룰 '합장을 위한 새 분묘 신설'이 왜 별개의 문제인지를 이해하는 전제가 됩니다.
범위 안이라도 새 분묘는 못 쓴다 — 대법원 2001다28367 판결의 핵심
위요지까지 넓게 인정받았다면 그 안에서 봉분 하나쯤 더 만드는 것은 문제없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대법원은 정반대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다28367 판결은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사망해 이미 분묘가 설치되고 그 분묘기지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나중에 사망한 다른 한쪽을 합장하기 위해 쌍분(雙墳) 형태로 새 분묘를 설치하는 사안을 다뤘습니다. 판례는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치는 지역의 범위 내라 하더라도 기존의 분묘 외에 새로운 분묘를 신설할 권능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못박았고, 그 결과 배우자를 합장하기 위해 새로 봉분을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판단의 논리는 분묘기지권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인정된 권리인지로 돌아갑니다. 분묘기지권은 '이미 설치된 특정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토지 사용을 인정한 권리이지, 장래에 추가로 들어설지 모르는 분묘까지 예정하고 부여된 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요지가 넓게 인정된다 해도 그 공간의 용도는 어디까지나 기존 분묘의 관리·참배를 위한 것이지 새 봉분의 부지가 아닙니다.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 보면, 최초에 승낙하거나 묵인한 범위는 '이 분묘 하나'에 대한 것이었을 뿐인데 여기에 새 분묘가 더해지면 처음 동의한 범위를 벗어나는 이용이 되어 소유권을 그만큼 더 침해하게 됩니다.
분묘기지권의 범위가 넓게 인정되는 것과, 그 범위 안에서 새 분묘를 신설할 권능이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 판례는 후자를 명확히 부정한다.
쌍분과 합사 — 허용되는 합장과 금지되는 합장의 차이
'합장'이라는 말 안에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섞여 있어 혼동이 생깁니다. 하나는 기존 봉분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에 별도의 봉분을 새로 만들어 나란히 안치하는 쌍분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봉분을 개장해 그 안의 유골(또는 화장한 유분)을 함께 모아 봉분 하나로 다시 정리하는 합사 형태입니다. 대법원 2001다28367 판결이 금지한 것은 앞쪽, 즉 기존 분묘 옆에 새 봉분을 세우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물리적으로 분묘의 기수(基數)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므로 '새로운 분묘의 신설'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례의 시각입니다.
반면 기존 분묘를 개장해 유골을 한데 모으고 봉분을 하나로 유지하는 합사 방식은 논리 구조가 다릅니다. 분묘의 기수 자체가 늘지 않고 종전 분묘기지권이 미치던 기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토지 소유자가 애초에 승낙했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개장 절차 자체는 별도로 관련 법령이 정한 신고·허가를 거쳐야 하고, 봉분 하나에 두 분을 모신다는 사실을 관할 기관에 반영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둘 다 '부모님을 함께 모신다'는 같은 목적이지만, 법이 보는 지점은 봉분의 개수가 늘어나는지 여부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쌍분(새 봉분 신설) — 기존 분묘 옆에 별도 봉분을 만드는 방식. 판례상 허용되지 않음.
합사(개장 후 합봉) — 기존 봉분을 열어 유골을 합치고 봉분을 하나로 유지하는 방식. 별도 신설이 아니므로 허용 여지가 있음.
두 방식 모두 개장·이장 관련 신고·허가 절차는 별도로 필요.
동의 없이 강행했을 때 — 철거·부당이득·행정 절차
토지 소유자의 동의 없이 쌍분 형태로 새 분묘를 설치했다면, 토지 소유자는 새로 설치된 분묘 부분에 대해 철거와 토지 인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존에 인정받았던 분묘기지권 자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원래의 단독 분묘에 대한 사용권은 그대로 유지된 채 나중에 무단으로 덧붙인 새 봉분 부분만 철거 대상이 되는 구조입니다. 아울러 무단으로 확장해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사용가치에 상당하는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도 별도의 처리 경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는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에 대해 토지 소유자가 관할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 개장할 수 있도록 정하면서, 개장에 앞서 미리 3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그 뜻을 분묘의 연고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연고자를 알 수 없을 때는 공고로 갈음하고, 공고 후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장해 일정 기간 봉안한 뒤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토지 소유자가 소송까지 가지 않고도 행정 절차만으로 무단 설치된 새 분묘를 정리할 길이 열려 있는 셈이어서, 동의 없는 합장은 결국 철거 소송과 행정적 개장 절차 양쪽에 노출되는 위험한 선택이 됩니다.
실제 철거 소송에서는 최초에 토지 소유자가 어떤 범위까지 승낙했는지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묘기지권이 구두 승낙이나 오랜 기간의 묵인으로 성립한 사안일수록 승낙의 범위를 명확히 입증할 서면이 없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최초 분묘 설치 당시의 정황, 봉분 규모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진이나 지적도, 인근 주민이나 종중 관계자의 진술 등이 '승낙 범위가 기존 분묘 1기에 한정되었는지'를 가리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새 봉분을 세우기 전에 이런 자료부터 정리해 두면, 이후 토지 소유자와의 협의나 소송 대응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유리한 출발점이 됩니다.
적법하게 합장하는 길 — 재동의와 이장 절차
합장 자체가 봉쇄된 것은 아니므로, 실제로 함께 모시고 싶다면 절차를 갖추면 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토지 소유자에게 새로운 사용 범위에 대한 별도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기존 분묘기지권은 특정 분묘 하나를 전제로 성립한 권리이므로, 봉분을 하나 더 두는 것은 법적으로 새로운 이용 관계이고, 토지 소유자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그 동의를 근거로 적법하게 쌍분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구두 동의보다 서면으로 범위와 조건을 명확히 남겨두는 편이 훗날 분쟁을 막는 데 유리합니다.
토지 소유자와의 재협의가 어렵다면, 기존 분묘를 개장해 앞서 살펴본 합사 방식으로 정리하거나, 아예 두 분 모두를 공설묘지·법인묘지·가족묘지 등 별도로 마련된 장소로 함께 이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특히 새로 마련한 묘지에 합장하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토지 소유자와의 갈등 소지 자체가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 개장·화장·봉안 각 단계에서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는 절차가 뒤따르므로, 실행에 앞서 해당 지역 담당 부서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합장하면 존속기간도 다시 계산된다
공설묘지나 사설묘지처럼 관련 법령의 적용을 받는 묘지에 적법하게 합장했다면, 분묘의 존속기간 계산 기준점도 달라진다는 점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9조는 공설묘지와 사설묘지에 설치된 분묘의 설치기간을 30년으로 정하고, 기간이 끝난 뒤 연고자가 신청하면 1회에 한해 30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합장 분묘인 경우에는 그 설치기간을 합장된 날을 기준으로 다시 계산한다고 규정합니다.
이 규정의 의미는 실무적으로 작지 않습니다. 먼저 사망한 배우자의 분묘가 이미 15년, 20년 지난 상태였더라도, 적법한 절차로 나중에 합장이 이루어지면 설치기간의 기산점이 그 합장일로 새로 시작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개장·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봉분만 새로 만들어 둔 경우에는 이런 법령상의 기간 재계산 혜택도 받을 수 없고, 앞서 살펴본 철거·부당이득 위험만 그대로 떠안게 됩니다. 결국 적법한 절차를 거치는지 여부가 분묘기지권의 존속과 향후 관리 부담까지 함께 갈라놓는 분기점이 되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미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곳에 배우자를 합장하면 안 되나요?
A. 토지 소유자의 새로운 동의 없이 기존 분묘 옆에 별도 봉분을 세우는 방식이라면 판례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새로 받거나, 기존 분묘를 개장해 봉분을 하나로 유지하는 합사 방식을 택하면 적법하게 함께 모실 수 있습니다.
Q. 합장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금지되는 것은 토지 소유자 동의 없이 분묘기지권의 범위만 믿고 새 봉분을 신설하는 경우입니다. 동의를 받거나 별도 묘지로 함께 이장하는 방법으로는 얼마든지 합장할 수 있습니다.
Q. 토지 소유자가 합장에 동의하면 새 분묘를 써도 되나요?
A. 그렇습니다. 판례가 금지하는 것은 동의 없이 기존 분묘기지권의 범위만으로 새 분묘를 신설하는 경우이고, 토지 소유자가 새로운 이용에 별도로 동의했다면 그 동의를 근거로 적법하게 봉분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분쟁 예방을 위해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몰래 합장했다가 걸리면 어떻게 되나요?
A. 토지 소유자는 새로 설치된 분묘 부분에 대해 철거와 토지 인도를 청구할 수 있고, 무단 확장 사용분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관할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 개장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Q. 기존 분묘를 개장해서 유골함으로 합사하는 것도 안 되나요?
A. 봉분의 기수가 늘어나지 않고 기존 분묘기지권의 기지를 그대로 쓰는 합사 방식은 새로운 분묘 신설로 보기 어려워 쌍분 방식보다 허용 여지가 큽니다. 다만 개장 자체에 필요한 신고·허가 절차는 별도로 거쳐야 합니다.
Q. 합장하면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이 새로 시작되나요?
A. 법령이 적용되는 묘지에 적법하게 합장한 경우, 설치기간은 합장된 날을 기준으로 다시 계산됩니다. 다만 이는 절차를 갖춰 합장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무단으로 봉분만 새로 만든 경우에는 이런 기간 재계산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맺음말
분묘기지권의 범위가 넓게 인정된다는 사실과, 그 범위 안에서 새 분묘를 세울 권능이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부부 합장과 같이 인륜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에도 토지 소유자의 동의 없는 새 분묘 신설만큼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왔습니다. 함께 모시고 싶다면 토지 소유자와의 재협의, 개장을 통한 합사, 또는 별도 묘지로의 이장 가운데 상황에 맞는 절차를 먼저 밟는 것이 뒤탈을 막는 길입니다.
특히 오래전 조성된 분묘일수록 최초 승낙의 범위가 구두로만 남아 있어 다툼의 소지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합장을 계획하고 있다면 실행에 앞서 분묘기지권의 성립 경위와 범위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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