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개요
의뢰인 A군(10대 후반)은 지인의 소개로 또래인 B양을 알게 되어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사귄 지 며칠 만에 상대방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정도로 진지한 만남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B양이 먼저 연락해 두 사람은 A군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날 성관계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A군은 입대를 앞둔 고민 끝에 연락을 끊는, 이른바 '잠수 이별'을 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혐의로 고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갓 성인의 문턱에 선 아들의 일에 놀란 가족이 함께 대응에 나섰고, 변호인이 선임되었습니다.
■ 사건의 쟁점과 어려움
고소인이 청소년이어서 일반 강간이 아닌 아청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이었습니다. 인정될 경우 처벌 수위가 훨씬 무겁습니다.
단둘이 있던 방 안의 일로, 역시 진술 대 진술의 구도였습니다.
결정적인 위기는 수사 중에 왔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에서 고소인은 '거짓 반응 없음', A군은 '거짓 반응'으로 판정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사건을 포기하다시피 하지만, 변호인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 변호인의 조력
사건 직후의 기록 수집 — 고소인이 귀가 직후 A군에게 보낸 장문의 메시지("오빠가 좋아요", "제가 많이 좋아해요" 등 애정을 표현하는 내용)와 다음 날 아침의 일상적인 안부 연락을 확보했습니다. 성관계 직후의 이런 반응은 강압이 있었다는 주장과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날 밤 A군이 고소인의 귀가 택시비를 이체해 주고 배웅한 금융 기록도 시각과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전후 경위의 재구성 — 고소인이 먼저 연락해 만남이 이루어진 점,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신 집이었다는 점, 관계 도중 고소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자 A군이 먼저 "그만할까?"라고 물었던 정황까지, 강압과는 거리가 먼 그날의 흐름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 제시했습니다.
주변인 사실확인서 확보 — 고소인이 지인에게 "서로 원해서 한 것은 맞는데 마무리가 좋지 않았고, 부모님의 압박으로 고소하게 되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사실확인서를 받아 제출했습니다.
진술 신빙성 탄핵 — 고소장에 기재된 협박성 발언 주장은 이를 뒷받침할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점, 이별 직후에야 고소가 이루어진 경위 등을 지적해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다투었습니다.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법적 한계 논증 —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엄격한 전제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도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증거에 그친다고 봅니다(대법원 87도968). 검사에서 다뤄진 쟁점 자체가 지엽적인 사실에 관한 것이었고, 정작 고소인 스스로 "당시 폭행이나 협박 같은 강압적 행위는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 검사 결과가 사건의 결론을 좌우할 수 없음을 논증한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 적용 법리
강간죄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하며, 그 판단은 경위·관계·전후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야 합니다(대법원 2005도3071 등).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증거능력의 전제조건을 모두 갖추더라도 정황증거로 기능할 뿐입니다(대법원 87도968).
■ 결과
경찰은 고소인 스스로 강압적 행위는 없었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혐의없음)를 결정했습니다. 불송치 결정문에는 변호인이 논증했던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정황증거의 기능에 그친다'는 판례가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고소 약 4개월 만이었고, A군은 예정대로 입대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 사례의 의의
거짓말탐지기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당사자도 가족도 크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유무죄를 정하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의 정황일 뿐이고, 이 사건처럼 객관적인 기록과 법리가 그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교제 관계의 갈등이나 이별 직후에 고소가 이루어지는 사건일수록 관계 전후의 기록이 결론을 좌우합니다. 불리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무엇으로 다퉈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입니다.
■ 맺음말
자녀가 갑작스럽게 성범죄 혐의를 받게 되면 부모님이 먼저 무너지기 쉽습니다. 감정적인 대응 대신, 사건 전후의 메시지·송금·이동 기록부터 지우지 말고 보전해 주십시오. 심리생리검사 등 수사 절차에 응할지 여부도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첫 조사 전에 변호인과 충분히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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