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회사 내부감사나 인사 담당자가 직원을 불러 앉혀 놓고 그 자리에서 “횡령 자인서” 또는 “시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나 회계 정산 과정에서 금액 차이가 발견되면, 회사는 정식 수사 절차보다 자체적으로 이 서류부터 받아내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 중 상당수는 “일단 서명해야 이 상황이 조용히 끝날 것 같았다”, “나중에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생각으로 회사가 내민 서류에 서명부터 하고 오십니다. 그런데 막상 수사나 재판 단계로 넘어가면, 그 자인서 한 장이 본인의 이후 진술보다 앞서 제출되는 결정적 증거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자백이나 이에 준하는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판단할 때 그 진술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임의로 이루어졌는지를 엄격히 살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작성을 주도한 자인서라 하더라도 이 기준에서 예외가 되지 않으며, 서명 경위에 강압적 요소가 있었다면 증거로서의 효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회사가 자인서 서명을 요구할 때 그 서류가 갖는 법적 의미와, 서명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점들을 최근 판례와 법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자인서에 서명한다고 횡령죄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불리한 출발점이 됩니다
자인서는 형사소송법상 진술서로 취급되어,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회사가 서명을 요구하는 자인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13조가 정하는 ‘진술서’에 해당합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작성자의 자필이거나 서명·날인이 있고, 이후 공판기일에서 작성자 본인의 진술로 그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되면 증거능력이 인정됩니다.
문제는 자인서에 실제로 담기는 문구입니다. 실무에서는 “일시적으로 사용했다”, “나중에 채워 넣으려 했다”는 취지의 표현을 넣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항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영득의사를 스스로 인정하는 진술로 읽힐 위험이 큽니다.
업무상횡령죄에서의 불법영득의 의사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으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반하여 보관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것과 같이 사실상 또는 법률상 처분하는 의사를 말하고, 사후에 이를 반환하거나 변상, 보전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도3399 판결).
즉 “나중에 채워 넣으려 했다”, “돌려놓을 생각이었다”는 취지로 자인서에 적더라도, 그 표현이 무죄나 정상참작의 근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인출 사실 자체를 자백하는 진술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가 내민 문구를 그대로 서명하면, 나중에 실제로 다툴 여지가 있던 부분까지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자인서는 유죄를 확정하는 서류가 아니라 재판에서 다투어야 할 증거 중 하나이지만, 그 문구 하나하나가 이후 대응의 폭을 크게 좁힐 수 있습니다.
2. 서명을 다그치듯 강요받았다면, 그 경위 자체가 증거능력을 흔드는 사정이 됩니다
폭행·협박에 준하는 압박 속에 작성된 진술은 임의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합니다. 이 조문은 원래 수사기관의 조사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법원은 자백이나 이에 준하는 진술서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도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합리적인지, 작성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가 무엇인지, 다른 정황증거와 모순되지 않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법리를 확립해 왔습니다.
실무에서는 “지금 서명 안 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겠다”, “서명할 때까지 퇴근할 수 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며 자인서를 받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성된 자인서는 내용 자체가 아니라 작성 경위부터 다퉈질 대상이 됩니다.
나아가 회사 측 담당자가 이 과정에서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넘는 해악을 고지했다면, 형법 제324조 강요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가 그 담당자에게 별도로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과, 협박에 가까운 방식으로 서명을 몰아붙이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르게 평가됩니다.
몰아붙이듯 받아낸 자인서는, 그 압박의 경위 자체가 이후 임의성을 다투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3. 이미 서명했더라도 강박을 이유로 취소할 수 있지만, 요건은 매우 엄격합니다
민법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지만, 판례가 요구하는 정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민법 제110조 제1항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자인서 서명도 하나의 의사표시이므로, 원칙적으로 이 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라고 하려면 상대방이 불법으로 어떤 해악을 고지함으로 말미암아 공포를 느끼고 의사표시를 한 것이어야 하고, 나아가 그 의사표시가 무효로 되려면 의사표시자로 하여금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한 상태에서 법률행위의 외형만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03. 5. 13. 선고 2002다73708, 73715 판결).
즉 단순히 “회사가 겁을 줘서 서명했다”는 정도로는 취소가 쉽지 않고, 의사결정의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정황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 취소권은 강박 상태에서 벗어나 추인할 수 있게 된 날로부터 3년, 서명일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므로(민법 제146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 상황을 뒷받침할 문자·녹취·목격자 진술 같은 정황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자인서에 특정 금액이 명시돼 있다면, 그 금액은 이후 합의금이나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점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유용 금액과 차이가 있더라도, 일단 서명으로 남긴 금액을 뒤집으려면 계좌 내역 등 별도의 객관적 자료로 다투어야 합니다.
서명 후 취소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증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4. 자인서에 적힌 금액이 커질수록, 이후 처벌 수위도 크게 달라집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반복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가중처벌 구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업무상횡령죄는 형법 제356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용한 금액, 즉 이득액이 커지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됩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같은 법 제3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형이 무거워지고,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인서가 갖는 위험은, 그 서류에 적힌 금액이 이후 수사·기소 단계에서 이득액을 산정하는 출발점으로 쓰이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는 일부만 확인됐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금액인데도, 서명 당시 회사 측이 제시한 총액을 그대로 인정하는 문구가 들어가면 그 금액이 그대로 굳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소액이라도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된 유용은 포괄일죄로 묶여 합산 이득액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인서에 “여러 차례에 걸쳐”라는 식의 표현이 들어가면, 그 반복성 자체가 합산 판단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5. 자인서 이후 고소·수사로 이어지면,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서명 전 몇 가지를 확인해 두는지가, 이후 수사·재판 대응의 방향을 크게 좌우합니다.
회사가 자인서를 확보한 뒤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금액이 크거나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통상 ①관할 경찰서(사업장이 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 ②피고소인 조사(이 단계에서 자인서가 그대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음)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득액이 특경법 구간이라면 구속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절차로 넘어가기 전, 서명을 요구받는 그 자리에서 아래 순서로 확인하는 것이 이후 대응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요구받은 서류가 단순한 사실확인서·경위서인지, 아니면 특정 금액과 횡령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자인서인지 문구를 정확히 확인합니다.
서명 전에 서류 전체를 사진이나 사본으로 남겨, 이후 작성 경위와 정확한 문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서명하기보다 서명을 보류하고, 변호사와 함께 문구와 금액의 타당성을 검토한 뒤 결정합니다.
이렇게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형사 대응과 함께 금액 산정의 근거를 다시 따져보는 작업을 서명 이전 단계부터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회사에서 갑자기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받으면, 대부분 당황한 상태에서 충분히 판단할 시간도 없이 서명부터 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일단 서명해야 이 상황이 끝난다”는 생각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자금을 관리하다 문제가 불거진 쪽은 이미 서명한 자인서의 문구에 따라 이후 대응의 폭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되고, 반대로 근거 없이 의심을 받는 쪽도 서둘러 서명한 자인서 때문에 방어가 훨씬 어려워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어느 쪽이든, 서명 전 확인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바꿉니다.
저는 회사 측에서 횡령을 의심해 조사를 진행하는 사건과, 반대로 직원 입장에서 부당한 서명 요구에 대응하는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자인서 한 장이 이후 절차 전체의 흐름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여러 번 확인해 왔습니다.
서명 전 잠깐의 확인이 이후 수사와 재판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받는 바로 그 순간,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회사가 내민 자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나요?
A. 서명 거부 자체가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사가 서명 거부를 이유로 불이익한 조치를 하는 경우, 그 조치의 정당성은 자인서 서명 요구와는 별도로 판단됩니다.
Q. 이미 자인서에 서명했는데, 나중에 취소할 수 있나요?
A. 민법 제110조에 따라 강박을 이유로 취소할 수 있지만, 판례는 의사결정의 여지가 사실상 완전히 박탈된 정도의 강박을 요구합니다. 서명 당시 상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최대한 빨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자인서에 실제보다 큰 금액이 적혀 있는데, 그대로 확정되나요?
A. 자동으로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후 합의금이나 손해배상 액수를 산정하는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금액과 차이가 있다면 계좌 내역 등 객관적 자료로 별도로 다퉈야 합니다.
Q. 자인서를 작성한 뒤 경찰 조사를 받으면, 그 서류가 그대로 증거로 쓰이나요?
A.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다만 작성 경위에 강압적 요소가 있었다면 임의성을 다퉈 증거능력을 배제해 달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Q. 회사가 자인서를 근거로 바로 형사 고소를 하면, 방어할 방법이 없나요?
A. 방법이 있습니다. 자인서의 문구와 실제 계좌 내역·업무 처리 경위를 대조해 불일치를 찾고, 서명 경위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부분도 함께 다툴 수 있습니다.
Q. 형사 고소와 별도로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받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형사 절차와 별도로 회사는 부당이득 반환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때도 자인서가 증거로 활용될 수 있어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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