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맡긴 통장, 몰래 인출해 썼다면 횡령죄 성립할까
지인에게 맡긴 통장, 몰래 인출해 썼다면 횡령죄 성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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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맡긴 통장, 몰래 인출해 썼다면 횡령죄 성립할까 

고준용 변호사

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부탁으로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잠깐 맡겼다가, 그 지인이 예금을 몰래 인출해 써버리는 바람에 형사 고소까지 이어지는 상담이 늘고 있습니다.

통장을 맡긴 분들 중 상당수는 “그래도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설마 몰래 손댈까”라는 생각으로 비밀번호까지 알려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잔액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따져 물으면, 상대방은 “잠깐 빌려 쓴 것뿐이다”, “곧 채워 넣으려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형사책임을 피해 가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통장을 맡아 관리하던 사람의 지위를 정식 계약서가 없어도 실질적인 위탁관계만으로 폭넓게 인정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장을 건넨 경위가 사소해 보이더라도, 그 순간부터 형사법상 책임 있는 지위에 놓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에서는 지인에게 맡긴 통장에서 돈이 몰래 빠져나갔을 때 횡령죄가 성립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의심되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통장을 맡기는 순간부터 지인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됩니다

정식 위임장이나 계약서가 없어도, 통장을 건넨 사실관계만으로 보관자 지위는 성립합니다.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관’은 반드시 위임장이나 계약서 같은 형식적 문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재물에 대한 위탁관계가 사용대차·임대차·위임 같은 정식 계약뿐 아니라, 사무관리나 관습, 조리, 신의성실의 원칙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인에게 “며칠만 맡아 달라”, “대신 이체 좀 해 달라”는 취지로 통장과 비밀번호를 건넨 것만으로도, 그 지인은 그 순간부터 통장 속 예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서게 됩니다.

문제는 이 지위가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 지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통장을 맡은 사람이 원래 부탁받은 용도, 즉 보관이나 특정 이체 업무를 벗어나 예금을 자신의 생활비나 다른 채무 변제에 썼다면, 그 시점부터 위탁의 취지를 벗어난 처분이 됩니다.

통장을 건넨 사실관계 자체가 위탁관계이며, 그 순간 지인은 형사법상 보관자 지위에 놓입니다.


2. 몰래 인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불법영득의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됩니다

정당하게 쓴 돈이라면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는 점이 수사·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단순히 돈을 인출한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권한 없이 처분하려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불법영득의사는 내심의 의사이기 때문에 본인이 부인하면, 검사는 간접사실과 정황사실을 통해 이를 증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히 문제 되는 정황이 바로 ‘몰래’ 인출했다는 사실입니다. 예금주 본인이나 정당한 위탁자에게 알리지 않고, 인출 사실을 숨긴 채 넘어가려 했다는 정황은 처음부터 위탁의 취지를 벗어나 자기 것처럼 처분하려 했다는 의사를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대법원은 계좌에 남의 돈이 흘러 들어온 경위와 무관하게 보관자 지위를 폭넓게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습니다.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이 법리는 통장을 직접 맡은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통장을 맡긴 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은밀하게 예금을 빼내 썼다면, 인출·소비 행위 자체로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어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례도 있습니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몰래 인출했다는 사실은 변명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불법영득의사를 뒷받침하는 핵심 정황증거입니다.


3. 처음부터 맡긴 적이 없다면 횡령이 아니라 절도·컴퓨터등사용사기 문제로 바뀝니다

통장을 몰래 훔치거나 비밀번호를 알아내 접근했다면, 죄명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지인이 통장을 정당하게 건네받아 보관하던 중 몰래 인출했다면 횡령이 문제 되지만, 애초에 통장을 몰래 가져가거나 비밀번호를 훔쳐보는 등 위탁관계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접근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위탁관계 없이 타인의 통장이나 카드를 몰래 가져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았다면 형법 제329조의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가, 인터넷·모바일뱅킹으로 접근해 이체했다면 형법 제347조의2 컴퓨터등사용사기죄(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가 각각 문제 됩니다.

실무에서는 이 경계가 애매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대신 이체해 달라”는 부탁으로 통장을 건넸는데, 그 이후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방치한 사이 지인이 부탁받은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반복적으로 인출했다면, 최초의 위탁관계를 근거로 여전히 횡령이 문제 될 여지가 큽니다. 다만 애초에 통장을 건넨 적이 없는데 몰래 가져가거나 명의를 도용했다면 횡령이 아니라 절도·컴퓨터등사용사기, 나아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통장을 맡긴 적이 있었는지가 횡령과 절도·컴퓨터등사용사기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입니다.


4. 인출 금액이 커질수록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돌려줘도 형사책임은 남습니다

반환·합의는 양형 사유일 뿐, 횡령죄 성립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통장에서 빼낸 금액이 5억원 미만이면 형법 제355조 또는 업무상 보관 지위가 인정될 경우 제356조(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가 적용되고,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무거워지며,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통장을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 한 번에 큰돈을 빼내지 않고 소액씩 여러 차례 나눠 인출하는 경우도 흔한데, 이 경우 각각의 인출 행위가 하나의 범의 아래 반복된 것으로 보아 포괄일죄로 합산되는 경우가 많아 총액 기준으로 가중처벌 구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돌려줬으니 문제없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통하지 않습니다. 인출 시점에 이미 불법영득의사가 실현되어 범죄가 완성되기 때문에, 이후 전액을 반환하거나 합의를 하더라도 이는 양형 단계에서 참작되는 사정일 뿐 횡령죄 성립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5. 통장 무단 인출 사건, 고소부터 재판까지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거래내역부터 확보해 두는 것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통장을 맡긴 지인의 무단 인출을 의심하게 됐다면,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 ②고소인·피고소인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절차가 진행됩니다. 인출 금액이 특경법 구간에 이르면 구속 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지인을 다그치기보다,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정리해 두는 것이 사건 대응에 유리합니다.

  1. 통장·체크카드를 언제, 어떤 목적으로 건넸는지 문자·카카오톡 대화로 남아 있는 기록부터 확인합니다.

  2. 은행에서 해당 계좌의 전체 거래내역을 발급받아 인출 일시·금액·인출 방법(창구·ATM·모바일)을 정리합니다.

  3. 인출된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 상대방과 나눈 대화나 송금 내역으로 추적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형사 고소와 함께 부당이득반환·손해배상 등 민사상 조치를 병행하면, 실질적인 회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통장을 맡긴 지인의 무단 인출 문제는 “그래도 아는 사이인데”라는 생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장을 맡기고 돈을 잃은 쪽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통장을 건넨 경위와 인출 내역을 뒷받침할 자료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반대로 통장을 맡아 관리하다 인출 사실로 의심받는 쪽도 “잠깐 빌린 것뿐”이라는 해명만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으며, 실제 동의 범위와 반환 의사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저는 통장·계좌를 둘러싼 위탁관계 분쟁에서 돈을 맡긴 쪽과 통장을 맡아 관리하다 의심받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위탁의 경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해 왔습니다.

통장을 맡긴 경위와 인출 정황이 애매하다면, 지금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이 갈리는 마지막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통장을 맡긴 사실은 인정하는데, 인출은 허락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동의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문자·카카오톡 대화, 통화 녹음 등 명시적 동의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양쪽 모두 관련 자료를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Q.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 사이에도 횡령죄가 성립하나요?

A.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형법상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관계라면 형이 면제되거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상대방과의 관계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인출된 돈을 전액 돌려받으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A. 돌려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인출 시점에 이미 범죄가 완성되므로, 반환·합의는 양형에서 참작되는 사정일 뿐입니다.

Q.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몰래 알아내 인출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위탁관계 없이 비밀번호를 알아내 접근한 것이므로 횡령보다는 절도나 컴퓨터등사용사기가 문제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접근 경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정확한 죄명 판단이 가능합니다.

Q. 얼마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나요?

A. 인출된 금액의 합산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가능합니다. 여러 차례 나눠 인출했더라도 포괄일죄로 합산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Q. 경찰 조사 통보를 받았는데, 변호사는 언제 선임하는 게 좋을까요?

A.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다. 초기 진술 내용이 위탁관계와 불법영득의사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금액이 큰 사건은 구속 수사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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