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설립하거나 유상증자를 하면서 급하게 돈을 빌려 주금을 채운 뒤, 등기가 끝나자마자 그 돈을 다시 인출해 갚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가장납입인데, 등기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문제없다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상법상 납입가장죄부터 살펴야 할 형사책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더 나아가 인출한 돈을 차용금 상환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썼다면 업무상횡령죄까지 함께 걸릴 수 있어, 두 죄가 어떤 경우에 따로 성립하고 어떤 경우에 겹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글에서는 가장납입의 두 가지 수법과 판례가 그은 경계선, 그리고 횡령죄가 실제로 추가되는 지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가장납입이란 무엇인가 — 예합과 견금, 두 가지 수법
가장납입은 실제로는 회사에 자본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마치 주금이 정상적으로 납입된 것처럼 꾸며 회사 설립등기나 증자등기를 마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상법 제628조가 이를 별도의 범죄로 처벌하는 이유는 주식회사가 회사 재산만으로 채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등기부에 적힌 자본금이 실제로 회사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자본충실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회사와 거래하는 채권자나 투자자는 실체 없는 숫자만 믿고 거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법은 납입 또는 현물출자의 이행을 가장하는 행위 자체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해 두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납입은 크게 두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합 방식으로, 발기인이나 이사가 납입취급은행 담당자와 짜고 실제로는 대출금을 갚기 전까지 인출하지 않기로 약정한 채 납입금보관증명서만 발급받는 수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견금 방식으로, 사채업자 등 제3자에게서 돈을 단기간 빌려 계좌에 실제로 입금한 뒤 등기를 마치자마자 그 돈을 인출해 빌린 돈을 갚는 수법입니다. 두 방식 모두 등기부상으로는 자본금이 정상적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회사에 실질적으로 남는 자금은 없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납입가장죄 성립 요건 — 상법 제628조가 겨냥하는 행위
상법 제628조 제1항은 발기인, 업무집행사원, 이사, 감사위원회 위원, 감사, 지배인 등 상법 제622조 제1항이 정한 자가 납입 또는 현물출자의 이행을 가장한 때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처음부터 회사 자금으로 남길 의사 없이 형식적·일시적으로만 납입한 것인지입니다. 등기를 위해 잠깐 계좌를 채웠다가 곧바로 인출할 계획이었다면, 설령 등기 서류상 문제가 전혀 없어 보여도 이 죄가 성립합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이 행위에 응하거나 이를 중개한 자도 발기인·이사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정합니다. 단기자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나 이를 알선하는 브로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가장납입이 혼자서는 완결되지 않고 자금을 대는 쪽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반영한 규정입니다.
주체 — 발기인, 이사, 감사, 지배인 등 상법 제622조 제1항이 정한 자
가장의 고의 — 처음부터 회사 자금으로 남길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만 납입했다면 인정
공범 처벌 — 응하거나 중개한 자금 대여자·브로커도 동일한 형(상법 제628조 제2항)
법정형 —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상법 제628조가 처벌하는 것은 등기부상 숫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회사 자금으로 남길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만 납입을 가장한 행위 그 자체다.
견금 방식과 업무상횡령죄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그은 경계선
과거에는 견금 방식으로 돈을 인출해 차용금을 갚는 행위 자체를 업무상횡령죄로 다룬 판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04. 6. 17. 선고 2003도7645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사채업자와 짜고 거액을 빌려 유상증자대금으로 납입한 뒤 등기 완료 직후 전액을 인출해 차용금 변제에 쓴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러한 납입과 인출의 전 과정을 통틀어 보더라도 회사의 자본금에는 실제 아무런 변동이 없으므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견금 방식의 가장납입에서 돈을 인출해 차용금을 갚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업무상횡령죄나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판례 입장입니다. 대신 이 행위는 상법 제628조의 납입가장죄와, 실제로 자본이 늘어난 것처럼 법인등기부에 등재하게 한 부분에 대한 별도 혐의로 정리됩니다. 다만 이 판단은 인출한 돈이 '차용금을 갚는 데'그대로 쓰인 경우, 즉 견금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인출에 한정된다는 점을 다음 항목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견금 방식으로 인출한 돈을 차용금 변제에 쓰는 행위 자체는, 납입·인출의 전 과정에서 회사 자본금에 실제 변동이 없어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업무상횡령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런데도 횡령이 함께 문제되는 이유 — 인출자금의 용처가 가르는 선
대법원 판례가 횡령죄를 부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출한 돈으로 차용금을 갚는 범위 안에서입니다. 즉 견금 방식의 본질인 '빌려서 채우고 곧바로 갚는다'는 흐름 그대로 진행된 경우에 한합니다. 만약 인출한 돈을 차용금 변제에 쓰지 않고 그와 무관하게 개인적인 용도, 예컨대 개인 채무 변제나 사적 지출, 다른 사업체 운영자금으로 써버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경우에는 애초의 견금이라는 틀 자체를 벗어난 것이어서, 업무상 회사 자금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자금을 임의로 소비한 것과 다를 바 없어집니다. 이때는 형법 제355조 제1항의 횡령죄, 자금을 업무상 보관하는 지위에 있었다면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횡령죄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기인이 사채업자에게서 3억원을 빌려 증자대금으로 납입하고 등기를 마친 뒤, 그중 1억원만 사채업자에게 갚고 나머지 2억원은 개인 명의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써버렸다면, 1억원 상환 부분은 판례상 견금의 틀 안에 있어 횡령이 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전용한 2억원 부분은 회사 자금을 임의로 소비한 것이어서 업무상횡령죄가 별도로 성립할 여지가 큽니다.
결국 납입가장죄가 가장 납입 행위 그 자체를 겨냥한다면, 횡령죄는 그다음 단계인 인출한 자금을 어디에 썼는가라는 별개의 사실관계를 겨냥합니다. 두 죄가 함께 문제되는지는 인출 이후의 자금 흐름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출한 돈 전액을 차용금 변제에 그대로 사용 — 판례상 견금의 틀 안, 횡령 불성립
인출한 돈 일부를 갚지 않고 개인 용도로 전용 — 그 부분은 업무상횡령죄 별도 성립 가능
처음부터 회사를 위해 쓸 의사 없이 전액 개인 용도로 쓸 계획이었던 경우 — 횡령 성립 가능성이 더 커짐
납입가장죄가 가장 납입 행위 자체를 겨냥한다면, 횡령죄는 그다음 단계인 인출한 돈을 어디에 썼는가를 겨냥한다 — 이 구분이 두 죄가 함께, 또는 따로 문제되는 이유다.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까지 겹치는 구조 — 등기부에 남는 세 번째 혐의
가장납입 이후 이를 근거로 법인등기를 마치는 과정 자체가 별도의 혐의를 만듭니다. 발기인이나 이사가 등기신청 과정에서 등기관에게 자본금이 실제로 납입된 것처럼 신고하면, 등기관은 그 신고를 그대로 믿고 등기부에 자본금 액수를 기재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자본이 채워지지 않았는데도 등기부에는 정상적으로 납입된 것처럼 기재되므로, 형법 제228조 제1항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가 함께 성립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부실기재된 등기부를 영업이나 거래관계에서 제시하거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사용하면 형법 제229조의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까지 별도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국 견금 방식의 가장납입 한 번으로 상법위반인 납입가장죄 외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행사라는 혐의가 추가로 따라붙는 구조이고, 여기에 인출자금을 개인적으로 전용한 사정까지 더해지면 앞서 본 업무상횡령죄까지 겹쳐, 실무에서는 여러 죄명이 함께 기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득액이 커지면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가중처벌
형법 제355조 또는 제356조의 횡령죄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훨씬 무거운 형이 적용됩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통상의 형법상 횡령죄 법정형과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크게 뛰는 지점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인출자금 중 개인적으로 전용한 부분에 대해서만 업무상횡령죄가 인정되므로, 이 가중처벌 여부를 가르는 이득액도 전체 가장납입액이 아니라 실제로 회사에 남기지 않고 사적으로 써버린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됩니다. 그래서 인출자금의 사용처를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소명하는 것이 형량의 크기를 좌우하는 핵심 쟁점이 됩니다.
방조자·중개자의 책임과 실무에서 다투는 지점
가장납입은 혼자서 완결되지 않습니다. 단기간에 거액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이를 소개하는 브로커, 심지어 은행 담당 직원이 통정해주는 경우까지 여러 관여자가 얽혀 있습니다. 앞서 본 상법 제628조 제2항은 이런 관여자, 즉 납입을 가장하는 행위에 응하거나 이를 중개한 자도 발기인·이사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정해, 자금을 대여해준 쪽도 처벌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해두었습니다.
수사·재판 단계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지점은 대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애초에 회사 자금으로 남길 의사가 있었는지, 즉 처음부터 견금 방식으로 잠깐 채웠다가 빼낼 계획이었는지를 가리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인출한 자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를 계좌 흐름으로 소명하는 문제입니다. 인출 직후 차용금 계좌로 그대로 송금된 흐름이 확인되면 견금의 틀 안에 있다고 볼 여지가 크지만, 자금이 여러 계좌를 거치며 개인 용도로 흩어졌다면 업무상횡령 혐의가 짙어집니다. 그래서 이 사안에서는 계좌 거래내역, 차용증, 상환 영수증 등 자금 흐름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처음부터 확보해 두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견금 방식으로 가장납입을 했는데 인출한 돈으로 빌린 돈을 그대로 갚았다면 횡령죄는 전혀 안 되나요?
A. 대법원 2004. 6. 17. 선고 2003도7645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인출한 돈으로 차용금을 갚는 행위 자체는 회사 자본금에 실제 변동이 없어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업무상횡령죄나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법상 납입가장죄와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는 그대로 성립합니다.
Q. 예합 방식과 견금 방식은 형사책임에서 차이가 있나요?
A. 두 방식 모두 납입가장죄의 대상이 되고 처벌 수위에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실무의 태도입니다. 다만 예합은 애초에 실제 돈의 이동이 없는 방식이어서, 자금 인출·용처를 둘러싼 횡령 문제 자체가 발생할 여지가 견금 방식보다 적습니다.
Q. 인출한 돈 일부만 개인적으로 썼다면 전체 금액에 대해 횡령죄가 되나요?
A. 아닙니다. 판례의 논리에 따르면 차용금 상환에 쓰인 부분은 횡령의 대상이 되지 않고, 회사와 무관하게 개인 용도로 전용한 부분만 업무상횡령죄의 이득액으로 산정됩니다. 그래서 인출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항목별로 소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사채업자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준 사람도 처벌받나요?
A. 상법 제628조 제2항은 납입가장 행위에 응하거나 이를 중개한 자도 발기인·이사와 같은 형으로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어, 단기자금을 빌려준 사채업자나 중개인도 처벌 대상에 포함됩니다. 실제로 얼마나 알고 관여했는지가 수사에서 쟁점이 됩니다.
Q. 이미 등기까지 마친 상태인데 지금이라도 자본금을 실제로 채워 넣으면 형사책임이 사라지나요?
A. 사후에 자본금을 실제로 채워 넣더라도 이미 완성된 납입가장죄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의 성립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회사에 자금을 원상회복시킨 정황은 양형 단계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Q.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까지 적용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A. 업무상횡령으로 인정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훨씬 무거운 법정형이 적용됩니다. 통상의 형법상 횡령죄보다 처벌 수위가 크게 올라가는 지점입니다.
맺음말
가장납입은 등기를 무사히 마쳤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법상 납입가장죄는 견금이든 예합이든 방식과 무관하게 성립하고, 여기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까지 통상 함께 따라붙습니다. 횡령죄가 추가로 문제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인출한 자금을 실제로 어디에 썼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수원지검 등 관할 수사기관에서 자금 흐름을 이미 들여다보고 있는 단계라면, 계좌 거래내역과 차용·상환 자료를 미리 정리해 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부터 소명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죄명이 여러 개 겹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초기 단계에서부터 각 혐의의 성립 요건을 구분해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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