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중간에 멈추면 발주자와 시공사 모두 "지금까지 얼마를 주고받아야 하는가"라는 계산 앞에서 난감해집니다. 착공 단계에서 이미 선급금을 지급받았다면 문제는 한 겹 더 복잡해집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공사 몫에 대한 대가, 즉 기성대금과 이미 건넨 선급금이 어떤 순서로 정산되는지를 모르면 받아야 할 돈을 놓치거나 반대로 이미 받은 돈을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시공사의 부도나 공사 포기, 또는 발주자 측 사정으로 계약이 중도에 끝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정산은 감정으로 다툴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계산 순서를 정확히 따라야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선급금과 기성대금, 무엇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가
공사도급계약에서 선급금은 수급인(시공사)이 자재를 구입하고 인력을 투입해 공사를 원활히 시작할 수 있도록, 발주자가 앞으로 발생할 공사대금 중 일부를 미리 앞당겨 지급하는 돈입니다. 반면 기성대금은 실제로 진행된 공사 부분에 대해 사후적으로 확정되는 대가입니다. 두 돈은 지급 시점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공사대금의 일부이기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면 이미 지급된 선급금은 그때까지 발생한 기성대금에서 순서대로 정산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순서를 건너뛰고 "선급금은 선급금대로, 기성대금은 기성대금대로" 따로 계산하려다 다툼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발주자는 "이미 준 선급금이 있으니 기성대금은 안 줘도 된다"고 주장하고, 시공사는 "기성대금은 별도로 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두 금액은 하나의 계산 순서 안에서 자동으로 얽혀 있습니다 — 기성대금을 먼저 확정한 뒤 그 안에서 선급금을 충당하고, 남거나 모자란 차액만 별도로 주고받는 것이 정확한 순서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선급금 자동충당의 법리와 기성고 비율 산정 공식
공사 중단 시 선급금과 기성대금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선급금의 법적 성질입니다. 대법원은 선급금을 공사대금과 별개의 돈이 아니라, 자금 사정이 어려운 수급인이 공사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급인이 장차 지급할 공사대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하는 것으로 봅니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7다31211 판결). 즉 선급금은 별도의 채권이 아니라 "선지급된 공사대금"입니다.
여기서 핵심 법리가 나옵니다. 도급계약이 해제·해지되거나 선급금 지급 조건을 위반하는 등 수급인이 선급금을 반환해야 할 사유가 발생하면, 별도의 상계 의사표시 없이도 그때까지 발생한 기성대금 중 미지급액이 당연히 선급금으로 충당됩니다(대법원 1999. 12. 7. 선고 99다55519 판결). "당연히 충당된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 발주자가 "상계하겠다"고 별도로 통보하지 않아도, 계산 순서상 자동으로 선급금부터 빠지고 남은 금액만 주고받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충당의 대상이 되는 기성대금 자체를 어떻게 산정하느냐가 다음 쟁점입니다. 공사가 도중에 멈춘 경우, 기성대금은 단순히 "약정 공사대금에서 미시공 부분 비용을 뺀 금액"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이미 완성된 부분에 들어간 공사비와 미시공 부분을 마저 완성하는 데 들어갈 공사비를 합친 전체 공사비 가운데, 완성된 부분에 들어간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기성고 비율)을 먼저 산정한 뒤 이를 약정 공사대금에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17. 12. 28. 선고 2014다83890 판결). 약정 공사대금에서 기시공 부분 비용만 공제하는 방식은 미시공 부분 비용을 부풀려 수급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습니다.
계산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성고 비율 = 기시공 부분 소요 공사비 ÷ (기시공 부분 소요 공사비 + 미시공 부분 소요 공사비)
기성공사대금 = 약정 공사대금 × 기성고 비율
정산 잔액 = 기성공사대금 − 이미 지급된 선급금
숫자로 보면 감이 잡힙니다. 예를 들어 약정 공사대금이 5억 원이고 계약 당시 선급금으로 1억 원을 지급받은 뒤 공사가 중단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감정 결과 기시공 부분에 소요된 공사비가 2억 원, 미시공 부분을 마저 완성하는 데 소요될 공사비가 3억 원으로 산정됐다면, 기성고 비율은 40%(2억 ÷ 5억)이고 기성공사대금은 2억 원(5억 × 40%)입니다. 여기서 이미 지급된 선급금 1억 원이 자동으로 충당되므로, 발주자가 시공사에게 추가로 지급할 기성대금 잔액은 1억 원입니다. 반대로 공사가 더 일찍 멈춰 기성공사대금이 8천만 원에 그쳤다면, 선급금 1억 원 중 충당되지 않은 2천만 원은 시공사가 발주자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이 반환 의무의 법적 성격은 부당이득입니다(민법 제741조). 정산 결과 시공사가 초과 수령한 선급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발주자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소송으로 갈 경우 이 채권에도 지연손해금이 붙습니다 — 소장 송달 전까지는 민법상 법정이율 연 5%, 소장 송달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에 따른 연 12%가 적용됩니다. 반대로 발주자가 정산 잔액 지급을 미루면 시공사 쪽 기성대금 채권에도 같은 이자 구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지막으로 계약 중단의 원인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발주자가 수급인의 귀책 없이 임의로 공사를 중단시키는 경우 도급인은 언제든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만(민법 제673조), 이때는 기성대금 정산과 별개로 수급인이 입은 손해(예상 이익 상실분 등)에 대한 배상 문제가 추가로 발생합니다. 반대로 수급인의 귀책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우에는 정산 잔액과는 별도로, 잔여 공사를 다른 업체에 맡기는 데 든 초과 비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기성고 실사부터 정산 통보, 소송까지 다섯 단계
쟁점과 계산 원리가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공사 중단 시점의 기성 부분부터 객관적으로 확정 — 현장 사진·동영상, 작업일보, 자재 반입 내역 등으로 중단 당시 실제로 시공된 범위를 최대한 상세히 남겨야 합니다. 다툼이 예상되면 건설감정 경험이 있는 감정인을 통해 기시공·미시공 부분의 소요 공사비를 산정받는 것이 이후 절차의 기초가 됩니다.
기성고 비율에 따라 기성공사대금을 계산 — 감정 또는 상호 합의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성고 비율을 산정하고, 이를 약정 공사대금에 곱해 기성공사대금을 확정합니다. 이 금액에서 이미 지급된 선급금을 자동으로 충당한 뒤 정산 잔액(추가 지급 또는 반환)을 계산합니다.
정산 결과를 내용증명으로 통보 — 계산 근거와 정산 잔액, 이행 기한,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로 진행한다는 취지를 명시해 발송합니다. 구두나 문자메시지로는 나중에 정산 기준일과 금액을 다툴 때 증거로서 힘이 약합니다.
불응 시 지급명령 또는 소송, 재산 도피 우려 시 가압류 — 다툼의 여지가 크지 않으면 지급명령이 간단하지만, 기성고 산정 자체가 쟁점이 되는 사안이라면 처음부터 공사대금(또는 부당이득금)청구소송으로 가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자력이 불안하다면 소송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재산을 먼저 가압류해야 합니다.
선급금 보증서가 있다면 보증기관에 병행 청구 — 계약 시 이행(계약)보증보험증권이나 선급금보증서를 받아두었다면, 시공사를 상대로 한 반환청구와 별개로 보증기관에 대한 보증금 청구를 함께 진행해 회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정산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손해로 남는 이유
공사가 멈춘 뒤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자"며 계산을 미루는 사이, 기성 부분의 흔적(자재·설비·작업 상태)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감정으로도 되짚기 어려워집니다. 상대방의 자력이 나빠지기 전에 기성고부터 객관적으로 확정해 두는 것이 정산의 출발점입니다.
공사 중단으로 선급금과 기성대금 정산 문제를 겪고 있다면, 기성고 비율 산정부터 정산 순서까지 짚어보고 필요한 절차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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