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손해배상 — 인과관계 입증책임 완화와 개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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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실 손해배상 — 인과관계 입증책임 완화와 개연성 

강대현 변호사

의료과실로 손해를 입었다고 확신해도, 정작 소송에서 발목을 잡는 것은 과실 자체가 아니라 인과관계 증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 과정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고 관련 기록도 대부분 병원 쪽에 있어, 환자가 의학적으로 완벽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균형 때문에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의료소송에 특화된 증명책임 완화 법리를 발전시켜 왔고, 2023년에는 그 기준을 한 단계 더 낮추는 판결까지 나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과관계 증명이 어떻게 완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개연성을 실제로 뒷받침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의료과실 손해배상, 인과관계 입증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의료과실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환자 측이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또는 제390조의 채무불이행 요건에 따라 의료진의 과실, 손해, 그리고 그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문제는 인과관계입니다. 진료 과정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영역이고, 진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기록과 정보는 사실상 의료기관 쪽에 전부 있습니다. 환자는 수술실이나 처치 과정을 직접 지켜본 것도 아니고 의학 지식도 부족한 상태에서, 오로지 사후에 남은 진료기록과 결과만으로 그 과실이 손해를 일으켰다는 점을 밝혀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이런 구조적 불균형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손해배상 소송과 동일한 증명 기준을 요구하면, 실제로 과실이 있었던 사건에서도 환자가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소하는 경우가 속출하게 됩니다. 의료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증명하라는 요구는, 애초에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는 실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오래전부터 의료소송에 특화된 증명책임 완화 법리를 발전시켜 왔고, 그 핵심 축이 바로 개연성 판단입니다.

여러 의료소송 실무 해설에서도 정작 패소하는 사건의 상당수가 과실 자체를 못 밝혀서가 아니라 인과관계 증명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갈린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소송에 나서면, 과실 정황을 아무리 꼼꼼히 정리해도 정작 승패를 가르는 인과관계 단계에서 준비가 부족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과실 소송을 검토할 때는 처음부터 '과실을 어떻게 증명할까'만이 아니라 '그 과실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어떤 수준으로 증명해야 하는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의료행위의 특수성 때문에 환자가 인과관계를 자연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이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판례가 증명책임을 완화해 온 이유다.

민사소송의 증명 기준 — 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닌 경험칙상 확신

인과관계를 완화한다고 해서 아무 증거 없이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원래도 형사재판처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수준까지 요구하지 않습니다. 확립된 판례 법리에 따르면 민사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증명은 자연과학적으로 만에 하나의 의문도 없이 명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확신, 즉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의학적으로 100% 확실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것과 법적으로 충분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의학적 소견이나 감정 결과가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쓰더라도, 다른 정황과 종합했을 때 통상인이 납득할 만한 확신에 이른다면 법원은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의료소송에서 대법원이 별도로 발전시킨 완화 법리는, 바로 이 일반 원칙을 의료행위의 특수성에 맞춰 한 단계 더 구체화한 것입니다.

종전 판례 법리 — 과실과 다른 원인 배제를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한다

의료소송에서 증명책임 완화의 뼈대를 놓은 판례는 대법원 1995. 2. 10. 선고 93다52402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환자 측이 (1)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2)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예컨대 진료 전에 그런 결과를 일으킬 만한 기왕증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기관 측이 그 결과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반증을 하지 못하는 이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법리는 환자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지만 한 가지 현실적인 벽이 있었습니다.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라는 것은 결국 환자에게 소극적 사실, 즉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여서, 기왕력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원인이 복합적인 사건에서는 여전히 이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의료소송에서 과실 정황은 뚜렷한데도 다른 원인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과관계 추정이 깨지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이를테면 수술 후 감염이 발생한 사건에서 소독·처치 과정의 과실이 상당히 의심되더라도, 환자에게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었다면 '기저질환이 아니라 과실 때문'이라는 점을 환자 측이 별도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종전 법리는 과실 증명과 함께 '다른 원인이 없었다'는 소극적 사실까지 증명하라고 요구해, 환자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었다.

2023년 대법원 판결 — 다른 원인 배제 없이 개연성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은 이 문턱을 다시 낮췄습니다. 이 판결은 환자 측이 상식 수준의 과실이 아니라 해당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종전 법리와 비교했을 때 핵심 차이는 분명합니다. 종전에는 과실 증명에 더해 다른 원인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별도로 증명해야 했지만, 새 법리에서는 그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켰을 개연성—높은 가능성—만 증명하면 됩니다. 다른 원인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부담이 빠진 것입니다. 감정의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과실이 이런 결과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취지로 소견을 낸다면, 그 자체로 인과관계 추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전에는 이런 소견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로 다른 원인의 부존재까지 입증해야 했던 사건들도, 새 법리 아래에서는 개연성 소견만으로 인과관계 추정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물론 이렇게 인과관계가 일단 추정되더라도 의료기관 측이 그 결과가 전적으로 다른 원인—환자의 특이체질, 예상치 못한 합병증 등—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반증하면 추정은 깨질 수 있습니다. 개연성 법리는 환자의 증명 부담을 낮춘 것이지, 의료기관의 반박 기회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닙니다.

개연성 법리의 핵심은 '다른 원인이 없다'는 소극적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과실이 손해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한다는 것이다.

개연성을 증명하려면 — 실무에서 준비해야 할 자료와 절차

개연성을 뒷받침하려면 결국 구체적인 자료와 절차가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은 진료기록입니다. 의료법 제21조는 환자 본인이 의료기관에 자신에 관한 기록의 열람 또는 사본 발급을 요청할 권리를 인정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는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소송을 검토하는 단계라면 진료기록·간호기록·수술기록·마취기록 등을 최대한 빠짐없이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진료기록 자체의 상태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의료법 제22조는 의료인에게 진료기록부 등을 갖추고 진료 경과를 상세히 기록할 의무를 부과하는데, 기록이 부실하거나 사후에 수정된 흔적이 있다면 그 자체가 과실이나 은폐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확보한 기록을 토대로 소송이 시작되면 법원은 여러 증거조사 절차를 통해 개연성 판단의 근거를 축적합니다.

  • 진료기록감정촉탁 — 다른 의료기관이나 의사협회에 진료 경과·처치의 적절성을 묻는 절차. 쟁점이 정리된 뒤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

  • 신체감정 — 사망 사건이 아닌 경우 후유장해·손해 범위를 가늠하기 위한 절차.

  • 사실조회 — 특정 기관·전문가에게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 신청 취지와 대상기관을 명확히 특정해야 채택 확률이 높아진다.

  • 진료기록 열람·사본 요청은 소송 제기 전, 이상 증상을 인지한 직후 최대한 빨리 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 개연성을 다지기도 전에 시효가 지날 수 있다

인과관계를 개연성만으로 증명할 수 있다 해도, 애초에 청구권 자체가 시효로 소멸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이 조문의 적용을 받습니다.

문제는 '안 날'이 언제인지가 의료과실 사건에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수술 직후 이상 증상을 느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시점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 보지는 않고, 그 손해가 의료진의 과실로 발생했다는 사정을 인식한 시점을 기준으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과거 시술의 문제를 알게 되는 경우처럼, 기산점 자체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기산점 다툼에만 기대는 것은 위험합니다. 진료기록감정에 통상 수개월 이상 걸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시효 만료가 임박한 상태에서 소송을 준비하다가는 개연성을 뒷받침할 자료를 채 갖추기도 전에 시효 항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시효 완성이 임박했다면 내용증명 발송이나 조정신청, 소 제기 등을 통해 먼저 시효부터 중단시켜 두고, 그 뒤에 감정·사실조회 절차로 개연성을 다져가는 순서가 안전합니다.

개연성을 증명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감정에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시효중단 조치부터 챙겨야 한다.

그래도 증명해야 하는 것 — 개연성 법리의 한계

개연성 법리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 법리가 완화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부분이지, 애초에 진료상 과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구체적 행위가 무엇인지부터 특정하지 못하면, 개연성을 논할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감정 결과가 오히려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명확히 지적하거나, 환자에게 뚜렷한 기왕증·특이체질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개연성 판단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 추정은 법원이 여러 증거를 종합해 판단하는 결과이지, 특정 요건만 채우면 기계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결국 소송의 승패는 초기에 얼마나 정확한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쟁점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리해 감정 절차를 이끌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개연성 법리가 도입되면 예전 판례는 이제 안 쓰이나요?

A. 두 법리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전 판례의 과실·다른 원인 배제 요건도 여전히 참고되지만, 2023년 판결 이후로는 다른 원인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못하더라도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켰을 개연성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받을 여지가 넓어졌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건마다 법원이 어느 법리에 무게를 두는지는 다를 수 있어, 진행 중인 소송이라면 어느 요건에 맞춰 자료를 준비할지 담당 변호사와 함께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진료상 과실 자체를 못 밝히면 개연성 법리도 소용없나요?

A. 그렇습니다. 개연성 법리는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증명만 완화할 뿐,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구체적 행위의 존재는 환자 측이 별도로 증명해야 합니다. 과실 자체가 불분명하면 개연성을 논할 단계에 이르지 못합니다.

Q. 병원이 진료기록 열람을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의료법 제21조에 따라 환자 본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열람·사본 발급을 거부당할 수 없습니다. 거부당한 경우 소송 전 증거보전신청을 통해 법원에 기록 보전과 열람을 강제하는 절차를 검토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는 거부 자체가 이후 소송에서 병원 측에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Q. 진료기록감정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면 소송은 끝인가요?

A. 감정 결과 하나로 결론이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감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감정·사실조회를 추가로 신청해 다투는 경우가 많고, 법원은 감정 결과 외에 진료기록 전반과 정황을 종합해 판단합니다.

Q. 의료과실 소송은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A. 사안마다 다르지만 진료기록감정·신체감정 등 절차가 순차로 진행되는 특성상 통상의 손해배상 소송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고, 1심만 1년 이상 소요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습니다. 감정 결과에 이의가 제기되어 재감정까지 이어지면 기간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쟁점을 명확히 정리할수록 절차가 단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Q. 소송을 고민 중이라면 언제 상담을 받아야 하나요?

A. 이상 증상을 인지한 직후, 진료기록이 수정되거나 폐기되기 전이 가장 좋은 시점입니다. 기록 확보와 쟁점 정리를 미리 해둘수록 이후 감정·소송 절차에서 개연성을 뒷받침하기가 수월해집니다.

맺음말

의료과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인과관계 증명은 오랫동안 환자 측에게 가장 높은 문턱이었습니다. 2023년 대법원 판결로 다른 원인을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지고,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켰을 개연성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만 이 완화는 과실 자체의 존재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고, 청구권 자체가 소멸시효로 사라지지 않도록 기한을 챙기는 문제와도 별개입니다. 결국 진료기록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고, 쟁점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리하며, 시효 관리까지 함께 챙기느냐가 소송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의료과실 여부를 두고 상담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진료 경과에 의문이 있다면 기록이 남아 있는 시점에 최대한 빨리 관련 자료부터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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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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