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인이나 사업자의 부탁으로 토지사용승낙서에 도장을 찍어 주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내 땅 위에 남의 건축허가가 붙어 있는데 사업은 멈춰 있고, 땅을 팔려고 해도 매수인이 꺼리는 상황. "그때 승낙은 없던 걸로 하겠다"는 말이 통할지가 토지 소유자들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승낙을 되돌릴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그리고 애초에 안전하게 써 주는 방법까지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 정리했습니다.
Q. 승낙서를 써 줬는데, 마음이 바뀌면 철회할 수 있나요?
마음대로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건에 따라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승낙서는 당사자 사이의 약속이어서, 상대방이 그 승낙을 믿고 건축허가를 받고 비용을 들였다면 일방적으로 철회할 경우 오히려 손해배상을 다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가 없이 기간도 정하지 않고 써 준 승낙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법원은 이런 무상 사용 허락을 '사용대차'에 가깝게 보는데, 사용·수익에 충분한 기간이 지났다면 빌려준 쪽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609조·제613조 제2항). 승낙서에 무엇이 적혀 있고 무엇이 안 적혀 있는지가 출발점입니다.
민법 제613조(차용물의 반환시기) 제2항 — 시기의 약정이 없는 경우에는 차주는 계약 또는 목적물의 성질에 의한 사용, 수익이 종료한 때에 반환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용, 수익에 족한 기간이 경과한 때에는 대주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Q. 이미 건축허가까지 났습니다. 내 땅을 되찾을 방법이 없나요?
있습니다. 건축주가 토지를 쓸 권리를 잃었다면, 허가의 철회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건축주가 토지사용승낙서로 건축허가를 받았다가 착공 전에 자신의 귀책사유로 토지 사용 권리를 상실한 경우, 허가의 존재 때문에 소유권 행사에 지장을 받는 토지 소유자가 행정청에 건축허가의 철회를 신청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내 땅에 남의 허가만 껍데기처럼 남아 있는 상황을 법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전제는 '건축주의 사용 권리가 이미 사라진' 경우이고, 철회는 건축주가 입을 불이익과 비교해 공익상 필요가 더 클 때 허용되므로, 언제든 마음만 바꾸면 철회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4두41190 판결 — 착공에 앞서 건축주의 귀책사유로 해당 토지를 사용할 권리를 상실한 경우, 건축허가의 존재로 말미암아 토지에 대한 소유권 행사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 토지 소유자로서는 그 건축허가의 철회를 신청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의 위와 같은 신청을 거부한 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
Q. 이 땅을 팔면, 산 사람도 그 승낙에 묶이나요?
묶이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승낙서는 등기되는 물권이 아니라 승낙한 사람과 상대방 사이의 채권적 동의일 뿐입니다. 부동산에 관한 권리는 등기해야 제3자에게 효력이 미치므로(민법 제186조), 토지를 매수한 새 소유자는 전 소유자가 써 준 승낙에 당연히 구속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는 뒤집어 보면, 내 땅에 남의 건축허가가 살아 있는 상태로는 매수인이 인수를 꺼려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매각을 계획한다면 그 전에 허가 철회 신청 등으로 권리관계를 정리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민법 제186조(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 —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
Q. 승낙서를 써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써 줘야 안전한가요?
범위·기간·용도를 한정해서 써 줘야 합니다. 백지에 가까운 승낙서 한 장이 가장 위험합니다. 사용 목적(예: 건축허가 신청용)과 승낙 기간, 사용 범위(전체가 아닌 특정 부분)를 명시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착공하지 않으면 승낙이 실효된다는 조항을 넣어 두면 예상보다 긴 사용을 감수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무상으로 해 줄 이유가 없다면 사용료를 정해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반대로 아무 조건 없이 써 준 승낙서는, 분쟁이 생겼을 때 그 해석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게 되는 씨앗이 됩니다.
꼭 기억하세요
토지사용승낙서는 한 번 써 주면 마음대로 거둘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묶이는 것도 아닙니다. 건축주가 토지를 쓸 권리를 잃었다면 허가 철회 신청으로 내 땅을 정리할 수 있고, 무상·무기한 승낙은 사용대차 해지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써 주기 전에는 기간·용도·실효 조항으로 범위를 좁혀 둘 것, 이미 분쟁이 시작됐다면 승낙서의 문구와 상대방의 권리 상실 여부부터 따져 볼 것. 이 순서로 접근해야 소유권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은 상담이 필요합니다
승낙서를 써 줬는데 사업이 틀어져 내 땅에 남의 건축허가만 남아 있는 분
토지 매각을 앞두고 과거에 써 준 승낙서와 건축허가를 정리해야 하는 분
승낙서 작성을 요청받고 기간·용도·실효 조항 등 조건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인 분
※ 위 내용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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