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는 임원이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 그 돈이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에 근거한 것인지부터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감사의 보수와 퇴직금은 근로자의 퇴직금과 달리 회사가 임의로 정해 주는 대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상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만 청구권 자체가 발생하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차를 건너뛰고 이사회 결의만으로, 혹은 아무 결의도 없이 받은 퇴직금은 나중에 부당이득 반환은 물론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고 해도 금액이 회사 사정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임원 퇴직금이 왜 절차를 요구하는지, 결의가 없거나 부실했을 때 어떤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이사·감사의 퇴직금은 왜 '주는 대로' 받을 수 없나 — 상법 제388조
주식회사 이사의 보수는 상법 제388조에 따라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않았다면 주주총회의 결의로 정해야 합니다. 감사의 보수 역시 상법 제415조가 이 규정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어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에는 월급이나 상여금만이 아니라 퇴직금, 퇴직위로금까지 명칭을 불문하고 이사의 직무수행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모든 금원이 포함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태도입니다. 즉 퇴직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이 절차에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이 규정이 강행규정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사는 회사의 업무집행권을 쥐고 있어, 자신의 보수나 퇴직금을 스스로 정할 위치에 있으면 이해상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관이나 주주총회라는 주주 전체의 의사결정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강제해, 이사가 자기 몫을 임의로 부풀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정관에도 없고 주주총회 결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이사회 결의만으로, 혹은 대표이사 단독 결정으로 정해진 퇴직금 약정은 그 자체로 무효라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이사·감사의 퇴직금은 명칭을 불문하고 재직 중 직무집행에 대한 보수의 일종이며, 정관에 정함이 없으면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비로소 지급청구권이 발생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법리다.
임원퇴직금지급규정이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 이사회 결의의 한계
실무에서는 많은 회사가 정관과 별도로 '임원퇴직금지급규정'을 만들어 운용합니다. 문제는 이 규정 자체가 유효하게 성립했는지입니다. 정관이 퇴직금 산정을 별도 규정에 위임하는 형식을 취했더라도, 그 규정이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제정·개정된 것이 아니라 이사회가 임의로 만들었거나 실무 관행으로만 존재해왔다면, 그 규정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받을 근거는 부족합니다. 회사가 임의로 규정을 제정했거나 일부 그에 부응하는 사실관계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정관이나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의 총액이나 한도만 정하고 개별 이사에 대한 구체적인 배분을 이사회에 위임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그러나 이사의 보수에 관한 사항 전체를 이사회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퇴직을 앞둔 임원이 스스로 이사회를 주도해 퇴직금 규정을 신설하거나 유리하게 개정한 뒤 이사회 결의만으로 통과시켰다면, 절차 자체에 하자가 있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정관에 퇴직금 액수나 산정기준이 직접 규정되어 있는지
임원퇴직금지급규정이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제정·개정되었는지
이사회 결의만으로 규정이 만들어지거나 바뀐 것은 아닌지
정관·주주총회가 총액·한도만 정하고 세부 배분만 이사회에 위임한 구조인지
정관이 퇴직금을 '별도 규정에 의한다'고 위임했더라도, 그 규정 자체가 주주총회 결의로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았다면 이사회 결의만으로는 지급 근거가 될 수 없다.
결의 없이 받은 퇴직금의 민사적 결말 — 부당이득 반환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 없이 지급된 임원 퇴직금은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한 이익, 즉 부당이득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회사, 혹은 새로 취임한 경영진이나 소수주주, 파산관재인이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해 전직 임원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이때 결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급받은 이사 쪽이 증명해야 하는 사항으로, 결의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사후에 형식만 갖춘 정황이 있다면 반환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이 부당이득반환청구는 형사책임과는 별개의 절차입니다. 형사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민사상 반환청구만으로 이미 지급받은 퇴직금 전액, 혹은 절차상 정당화되지 않는 초과분을 되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금액이 크고 경위가 석연치 않을수록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가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뒤에서 살펴볼 횡령·배임 혐의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결의 없이 지급된 임원 퇴직금은 회사에 대한 부당이득이 되고, 이사가 결의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면 반환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형사책임의 갈림길 — 횡령이 되는 경우, 배임이 되는 경우
민사상 반환책임과 별개로, 절차 없이 받은 퇴직금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다시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 횡령죄(형법 제355조 제1항, 업무를 이용한 경우 제356조의 업무상횡령죄)는 회사 재산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정당한 권원 없이 그 재산을 자기 소유처럼 처분하거나 영득할 때 성립합니다. 대표이사나 이사가 결의도 없이 정한 금액을 회사 계좌에서 직접 인출해 자신에게 귀속시켰다면, 애초에 그 금액에 대한 정당한 청구권 자체가 없었던 셈이라 불법영득의 의사가 인정될 경우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배임죄(형법 제355조 제2항, 업무상배임죄는 제356조)는 임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절차를 무시하고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한 측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실무에서는 자금의 흐름과 임원의 처분 권한 범위에 따라 두 죄명이 함께 검토되거나, 주된 죄명에 다른 죄명이 예비적·택일적으로 추가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득액이 5억원을 넘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어, 이득액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됩니다.
회사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직접 이체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했는지
결의가 없었음을 알면서도 회계장부에 정당한 보수·퇴직금인 것처럼 기재했는지
문제 제기 이후 자진 반환 의사를 보였는지, 아니면 계속 자금을 사용했는지
동일한 방식의 지급이 반복적·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
회사 자금을 정당한 권원 없이 자신의 것으로 가져간 측면이 부각되면 횡령으로, 절차와 권한을 남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측면이 부각되면 배임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상법 제622조 특별배임죄 — 이사에게 별도로 적용되는 조항
임원의 배임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형법상 업무상배임죄 외에 상법 제622조가 정한 특별배임죄가 함께 검토됩니다. 이 조항은 발기인, 이사, 감사위원회 위원, 감사, 청산인 등이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법정형은 형법상 업무상배임죄와 같지만, 회사의 이사·감사 등 특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임무위배행위를 별도로 규율한다는 점에서 실무상 함께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이사가 회사와 맺은 위임관계에서 갖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취한 경우를 무겁게 다스리려는 데 있습니다. 절차 없이 스스로 퇴직금을 부풀려 책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임원의 행위는, 회사에 대한 임무위배와 손해 발생이라는 요건이 충족되면 이 특별배임죄로 의율될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 수사·재판 실무에서는 이 상법상 특별배임죄와 형법상 업무상배임죄가 함께 검토되어 하나의 사건에서 나란히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어느 한쪽 조항만으로 사건이 간단히 종결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어도 남는 문제 — 과다·부당한 퇴직금
형식적으로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퇴직을 앞둔 임원이 주도해 퇴직금 지급규정을 새로 만들거나 유리하게 고친 뒤 주주총회 승인까지 받았다 하더라도, 그 액수가 회사의 재무상태나 경영성과에 비추어 지나치게 과다하다면 회사재산의 부당한 유출을 야기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는 사정만으로 그런 위법행위가 유효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단의 핵심입니다.
즉 주주총회 결의는 퇴직금 지급의 절차적 요건을 채워줄 뿐, 그 금액이 회사 사정에 비추어 상당한 것인지까지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배임죄의 본질이 회사에 대한 재산상 손해라는 점에서, 결의의 유효성과는 별개로 손해 발생 여부가 다시 문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적이 악화되는 시기에, 혹은 퇴직을 코앞에 두고 급하게 퇴직금 규정을 신설·상향한 경우일수록 사후에 이 문제로 다시 다퉈질 위험이 큽니다.
실무에서 법원이 퇴직금의 과다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하는 지표는 여러 갈래입니다. 근속연수와 최종 보수월액에 통상적으로 곱하는 배수를 크게 초과하는지, 동종 업종·규모의 다른 회사들이 정한 퇴직금 수준과 현저히 차이가 나는지, 퇴직 시점의 회사 당기순이익이나 재무상태에 비추어 그 지급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 그리고 퇴직 직전 갑작스럽게 규정을 신설하거나 배수를 올린 정황이 있는지가 함께 고려됩니다. 이런 사정이 겹칠수록 결의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임 혐의를 벗기 어려워집니다.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 과다한 퇴직금 지급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 회사의 재무상태에 비추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라면 결의를 거쳤어도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1인회사·가족회사의 예외적 취급과 그 한계
실질적으로 주주가 1인이거나 그에 가까운 소규모·가족 회사에서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주주총회 의사록이 따로 작성되지 않았더라도, 임원퇴직금 지급이 사실상 1인 주주 내지 실질적 지배주주의 결재와 승인을 거쳐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면 그 규정에 대해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형식보다 실질을 보는 이 법리는 서류 정비가 미흡한 중소기업·가족회사에서 실제로 자주 원용됩니다.
다만 이 예외는 무조건 적용되지 않습니다. 실질적 1인 주주에 해당하는지, 그 주주가 명확히 승인했는지가 먼저 확인돼야 하고, 형식상 주주가 여러 명이거나 다른 가족 주주가 그 지급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 예외로 민사상 지급 근거가 인정되더라도, 앞서 살펴본 '금액이 과다한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남습니다. 회사 채권자 보호의 관점에서, 1인회사라 해도 지나친 재산 유출은 다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질적 1인 주주의 명확한 결재·승인이 있었는지
다른 가족 주주가 지급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묵인했는지
회사의 재무상태에 비추어 금액이 과다하지는 않은지
사후에 의사록 등 서류만 뒤늦게 정비한 것은 아닌지
자주 묻는 질문
Q. 대표이사가 자기 퇴직금을 이사회 결의만으로 정해 받았다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인가요?
A.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정한 퇴직금은 상법상 근거가 없어 무효이고, 회사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책임이 먼저 문제됩니다. 다만 그 금액을 실제로 인출해 가져간 경위, 금액의 과다성, 불법영득 의사 유무에 따라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 이어질 수 있어 사안마다 다르게 판단됩니다.
Q. 임원퇴직금지급규정이 회사 내규로 이미 있다면 그대로 받아도 문제없나요?
A. 그 규정 자체가 정관의 위임이나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유효하게 성립했는지가 먼저 확인돼야 합니다. 이사회가 임의로 제정했거나 퇴직 임원이 주도해 만든 규정이라면,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지급의무가 당연히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Q.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퇴직금을 지급받았는데도 배임으로 문제될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법원은 결의를 거쳤더라도 회사의 재무상태·경영성과에 비추어 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면 회사재산의 부당한 유출로 보아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절차를 지켰다는 사정만으로 금액의 정당성까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Q. 소규모 가족회사인데 관행적으로 대표 퇴직금을 정해온 경우도 문제가 되나요?
A. 실질적으로 1인 주주에 가까운 회사가 그 주주의 명확한 승인을 거쳐 관행적으로 지급해왔다면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다른 가족 주주가 지급 사실을 몰랐거나 회사 재무상태에 비추어 금액이 과다하다면 이 예외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Q. 횡령과 배임 중 어느 쪽으로 처벌받는지는 무엇으로 정해지나요?
A. 회사 자금을 정당한 권원 없이 자신의 것으로 가져간 측면이 부각되면 횡령으로, 절차와 권한을 남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측면이 부각되면 배임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실무에서는 두 혐의가 함께 검토되거나 예비적으로 추가되기도 합니다. 이득액이 5억원을 넘으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될 수 있습니다.
Q. 회사가 뒤늦게 결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우선 전직 임원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금액과 경위에 따라 형사 고소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소멸시효나 증거(결의록, 회계자료) 확보 여부에 따라 대응 방향이 달라지므로 사실관계부터 먼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맺음말
임원 퇴직금은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라는 절차적 근거가 없으면 애초에 청구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사회 결의만으로, 혹은 그마저도 없이 지급된 퇴직금은 회사에 대한 부당이득이 되고, 경위와 금액에 따라 횡령이나 배임 혐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 금액이 회사 사정에 비추어 지나치게 과다하다면 배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임원 퇴직에 앞서 정관·규정·결의 절차를 미리 점검해야 하고, 임원 입장에서도 퇴직금을 받기 전에 그 근거가 되는 결의가 실제로 유효하게 존재하는지 확인해두는 편이 나중의 분쟁을 줄이는 길입니다.
이런 임원 배임·횡령 사건은 고소·고발 이후 수원지방검찰청 수사 단계에서 쟁점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초기 단계부터 정관·의사록·회계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해두는 것이 이후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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