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반환이 막혔다면, 기망 입증이 관건입니다
사건 개요
전세계약 만료일이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상담을 청해 옵니다. 사정은 제각각입니다. 임대인이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경우도 있고, "세입자가 새로 들어와야 돌려줄 수 있다"며 계속 시간을 끄는 경우도 있으며, 등기부를 떼어 보니 근저당권이 잔뜩 잡혀 있어 매매가보다 채무가 더 많은 이른바 '깡통전세' 상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차인들은 대개 "이건 사기 아니냐"며 형사고소부터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기서 절반 이상이 막힙니다. 보증금을 못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임대인의 단순한 자금 사정 악화(민사상 채무불이행)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이나 능력 없이 속여서 받은 것(형사상 사기)인지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두 경우는 겉보기에 거의 같아 보이지만, 법이 다루는 방식과 회수 가능성은 완전히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보증금을 못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계약을 맺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임대인에게 기망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구성해 내는가입니다.
핵심 쟁점
사기죄(형법 제347조)가 성립하려면 ①기망행위 ②상대방의 착오 ③그에 따른 처분행위(보증금 교부) ④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흐름이 이어져야 하고, 여기에 편취의 고의(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합니다)까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맺으면서 자신의 재산상태를 알리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곧바로 기망이라 단정하지 않습니다. 임대차의 본질은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하고 보증금을 지급받는 관계일 뿐이어서, 재산상태 미고지 자체를 사기로 보면 사실상 모든 임대인이 잠재적 피고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임차인이 알았더라면 계약을 맺지 않았을 정도의 사정—이미 설정된 근저당권·가압류, 임박한 경매 절차, 자기자본 없이 여러 채를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 구조 등—을 임대인이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 인정됩니다. 그리고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가장해 계약을 맺었다면, 계약 이후 실제로 임차인을 입주시켰는지와 무관하게 편취의 고의는 인정됩니다. 결국 이 사건의 승패는 '계약 체결 당시' 시점으로 돌아가 임대인의 상태와 인식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가에서 갈립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계약 체결 '그 시점'의 기망을 재구성하기
형사 고소가 힘을 받으려면 "지금 돈이 없다"가 아니라 "계약 당시 이미 돌려줄 수 없는 상태였거나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을 시간순으로 세워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 단계에서 다음을 확인합니다.
1) 계약 체결 시점의 등기부등본을 확보합니다.
현재 등기부가 아니라 계약 당시의 등기부(폐쇄등기부 포함)를 열람해, 그 시점에 이미 존재하던 근저당권·가압류·전세권 설정 여부와 채권최고액을 확인합니다. 계약 당시 이미 매매가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는 채무가 잡혀 있었다면, 임대인이 반환 능력을 애초에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맺었다는 정황이 세워집니다.
2) '무자본 갭투자·동시진행' 구조인지 확인합니다.
임대인이 매매계약과 전세계약을 같은 날 또는 근접한 시점에 체결해 자기 자본 투입 없이 전세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을 치른 구조인지, 짧은 기간에 다수의 주택을 유사한 방식으로 사들였는지를 등기부와 계약 일자 대조로 확인합니다. 법원은 이런 구조에서 반환 능력 없이 계약을 강행한 정황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이 패턴 자체가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3) 임대인의 확인·안심 발언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계약 전후로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가 "근저당은 곧 말소한다", "문제없는 집이다"라고 말한 내용을 문자·통화 녹취·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로 확보합니다. 실제와 다른 안심 발언은 그 자체로 적극적 기망 정황이 되고, 반대로 아무 설명 없이 특약사항도 비워 둔 채 넘어간 경우라면 고지의무 위반(부작위 기망)의 근거가 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자금흐름과 다수 피해자 정황으로 고의를 뒷받침하기
계약 당시의 정황만으로 고의를 다투기 버거울 때는, 그 뒤로 돈이 어떻게 흘렀는지와 다른 세입자들의 사례를 함께 세워 고의를 보강합니다.
1) 보증금의 실제 사용처를 추적합니다.
수사기관의 금융계좌추적을 통해 임차인이 낸 보증금이 임대인의 기존 채무 상환이나 다른 주택 매입, 또는 다른 세입자에게 지급할 반환금으로 돌려막기 되었는지를 확인합니다. 신규 보증금이 구 세입자 반환에 그대로 흘러간 정황이 확인되면, 임대인이 애초부터 정상적인 반환 자력 없이 '돌려막기'로 사업을 유지해 왔다는 구조가 드러나 편취 고의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됩니다.
2) 동일 임대인의 다른 피해 세입자를 결합합니다.
같은 임대인·같은 건물 또는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입은 다른 세입자들의 진술과 계약서를 모아 함께 고소장에 담습니다. 한 건이면 우연한 자금 사정으로 다투어질 여지가 있는 정황도, 다수의 세입자에게 반복된 동일한 패턴으로 제시되면 계획적 편취였다는 점이 훨씬 분명해지고, 수사기관의 강제수사 착수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와 별개로 임대인 명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등 채권보전 조치를 형사 절차와 병행해, 재산이 빠져나가기 전에 회수 기반을 먼저 확보해 둡니다. 아울러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따른 경·공매 절차상 지원 제도도 함께 검토합니다.
결론
전세보증금을 못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임대인을 사기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면에서 계약 체결 당시부터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는지, 임차인이 알았다면 계약을 맺지 않았을 사정을 숨겼는지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해야 비로소 형사 사건으로서 힘을 갖습니다.
등기부 이력, 계약 경위, 자금흐름, 다른 피해자의 존재—이 조각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모아 두었는가가 결과를 가릅니다. 지금 보증금 반환이 막힌 상황이라면, 단순한 채무불이행인지 형사상 기망에 해당하는지 그 경계를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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