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상대가 사실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배신감과 함께 억울함이 남습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미혼이라고 잘라 말했거나, 결혼 여부를 물어도 얼버무리며 사실을 숨겼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작 배우자로부터 상간자 소송을 당할까 걱정하는 이야기만 많이 다뤄지고, 반대로 속아서 교제한 사람 스스로가 자신을 속인 상대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기망행위로 인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별도의 법리가 있어, 속은 쪽이 오히려 청구인이 되어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어떤 경우에 이 청구가 인정되고, 소송을 준비하려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상간자 소송과는 다른 이야기 — 속은 쪽이 청구인이 되는 소송
흔히 알려진 '상간자 위자료 소송'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배우자, 즉 본처나 본남편이 원고가 되어 그 상대방(제3자)을 피고로 삼아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에서 제3자는 늘 피고 자리에 있고, "몰랐다"는 사정은 자신을 방어하는 항변으로만 쓰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루는 상황은 이 구도가 정반대입니다. 자신이 미혼인 줄 알고 교제했던 사람이 실은 기혼자였고,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면, 속은 사람 스스로가 원고가 되어 자신을 속인 그 기혼자 본인을 피고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고는 그 사람의 배우자가 아니라, 나를 속이고 교제·성관계에 이르게 한 상대방 본인입니다. 법적 근거도 상간자 소송과는 다릅니다. 상간자 소송이 혼인관계 침해(부부공동생활의 평온과 유대에 대한 침해)를 이유로 하는 반면, 오늘 다루는 청구는 기망행위로 인해 원고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습니다. 청구원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소송은 당사자도 다르고 입증해야 할 사실관계도 다릅니다.
상간자 소송은 배우자가 제3자를 상대로 거는 소송이고, 오늘 다루는 소송은 속은 사람 본인이 자신을 속인 상대방을 상대로 거는 소송이다 — 원고·피고가 뒤바뀐 별개의 청구다.
이 구분을 헷갈리면 실제 상담에서도 자주 오해가 생깁니다. "나는 몰랐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반대로 상간자 소송에서 방어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해 정작 자신이 입은 피해를 배상받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두 소송이 별개라는 점을 정확히 이해하면, 상간자 소송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자신을 속인 상대방에게 별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법적 근거 —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불법행위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행위를 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같은 법 제751조는 신체·자유·명예 외에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배상 책임이 있음을 규정합니다. 이 조문을 바탕으로 법원은, 상대방이 결혼했는지 여부는 교제 상대와 성관계 여부를 선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판단 요소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속여 교제·성관계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가단5116392 판결(2019. 12. 6. 선고)은 기혼자인 피고가 원고에게 미혼인 것처럼 행세하며 교제·성관계를 지속한 사안에서, 혼인 여부를 숨기고 구애한 행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며 위자료 500만원의 지급을 명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 법원이 공통적으로 짚는 요건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상대방의 고의적인 기망행위, ②그로 인한 원고의 착오, ③그 착오가 없었다면 사회통념상 교제나 성관계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없어졌지만 민사책임은 남는다
과거에는 혼인할 의사가 없으면서 혼인하겠다고 속여 성관계를 가지면 형법으로 처벌하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9. 11. 26. 선고 2008헌바58, 2009헌바191(병합) 결정에서 이 조항이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후 해당 조항은 삭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없어졌으니 이제 배우자가 있으면서 미혼 행세를 해도 아무 책임이 없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위헌 결정의 취지는 국가가 형벌권을 동원해 사인 간의 애정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것이지, 기망당한 사람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개인 대 개인으로 배상받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형사처벌과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완전히 다른 트랙입니다. 형법상 처벌 규정이 사라진 지금도, 기망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사람은 민법 제750조·제751조에 근거해 별도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유형의 하급심 판결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소수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혼인빙자는 상대방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기망행위이므로 형사적으로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수의견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국가형벌권으로 사인의 애정관계에 개입하는 방식'이 과도하다고 본 것이지, 기망행위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형사처벌이라는 수단이 사라진 자리를, 개인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대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청구가 인정되려면 — 기망의 고의성과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모든 미혼 행세가 자동으로 위자료 청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이 가장 무겁게 보는 지점은 기망행위가 적극적이었는지 여부입니다. 상대방이 "저는 미혼입니다", "아직 결혼한 적 없어요"처럼 명시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라면 기망행위가 비교적 뚜렷하게 인정됩니다. 반면 상대방이 먼저 나서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원고 쪽에서도 굳이 묻지 않은 경우라면, 법원은 만남의 경위·대화 내용·동거 여부 등 정황을 더 꼼꼼히 따져 기망의 고의성을 판단합니다.
여기에 더해 원고의 과실도 함께 고려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방의 소셜미디어나 주변 지인을 통해 혼인 여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게을리했다면, 손해배상 액수를 정할 때 과실상계로 반영되어 위자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결혼반지를 빼고 다니거나 미혼 전용 소개팅 앱에 미혼으로 프로필을 등록하는 등 적극적으로 미혼임을 가장한 정황이 뚜렷하다면, 원고의 확인 소홀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평가됩니다.
고의적 기망행위 — 명시적 거짓말이거나, 물어도 계속 숨긴 적극적 은폐.
착오로 인한 교제·성관계 — 기망이 없었다면 관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
인과관계 — 기망행위와 정신적 고통 사이에 직접적 연결고리가 있을 것.
원고의 확인 노력 — 손쉽게 확인 가능했는지 여부는 과실상계에서 참작.
예를 들어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나 미혼 인증까지 마친 상대와 6개월간 교제하며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는데, 이후 상대방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우연히 보고서야 혼인 사실을 알게 된 경우라면 위 세 가지 요건이 비교적 뚜렷하게 갖춰진 사례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SNS에 배우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관계를 지속했다면, 법원은 원고가 그 시점부터는 의심할 만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 손해배상 범위를 그 이후 기간으로 제한하거나 과실상계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증거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런 유형의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미혼"이라고 말했거나 그렇게 믿게 만든 정황을 객관적 자료로 남기는 일입니다.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대화 중 결혼 여부를 언급한 부분,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의 미혼 프로필 화면 캡처, 상대방이 스스로를 미혼이라고 소개한 정황을 아는 지인의 진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상대방의 혼인관계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를 원고가 직접 발급받기는 어려우므로, 소송이 시작된 뒤 법원에 사실조회신청이나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관공서로부터 직접 확보하는 절차를 활용하게 됩니다.
교제 기간과 만남의 빈도, 성관계 여부와 그로 인한 부수적 피해(임신·중절 등)가 있었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병원 진료기록도 위자료 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료입니다. 언제, 어떤 경로로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도 시점을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는 데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혼인 여부를 언급한 문자·카카오톡 대화 캡처.
소개팅 앱 프로필, 만남 경위를 보여주는 자료.
기망 사실을 아는 지인의 진술이나 목격 정황.
기혼 사실을 알게 된 정확한 시점 정리.
위자료 액수와 소멸시효
위자료 액수는 정해진 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망의 정도와 지속 기간, 교제 기간, 성관계 여부, 임신·중절 등 부수적 피해가 있었는지, 원고가 입은 정신적 충격의 정도를 종합해서 정해집니다. 앞서 살펴본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가단5116392 판결처럼 500만원 선에서 인정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기망이 계획적이고 장기간 지속되었거나 임신·중절 등 부수적 피해가 겹친 사안에서는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이 인정되기도 합니다. 액수를 가늠할 때는 특정 판결의 금액을 그대로 자신의 사안에 대입하기보다, 자신의 사정에 해당하는 요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먼저 정리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교제 기간이 짧더라도 상대방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해 거짓말을 반복했다면 기망의 정도가 무겁게 평가되고, 반대로 교제 기간이 길었더라도 기망이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청구권 행사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안 날"은 통상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시점으로 보게 되므로, 그 시점을 뒷받침할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이후 소멸시효 항변에 대응하는 데 중요합니다.
배우자의 상간자 소송과 동시에 얽혔다면
실제 사건에서는 두 소송이 동시에 얽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배우자가 "내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했다"며 원고를 상대로 상간자 위자료 소송을 걸어오는 동시에, 원고 자신은 그 상대방을 상대로 기망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상황입니다. 이 둘은 당사자도 다르고 청구원인도 달라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되며, 하나의 결과가 다른 소송의 결론을 자동으로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두 소송은 사실관계를 상당 부분 공유하기 때문에, 한쪽 소송에서 정리한 증거가 다른 쪽 소송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간자 소송에서 "혼인 사실을 몰랐고, 몰랐던 데 과실도 없었다"는 항변이 받아들여지려면 그렇게 믿을 만한 정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정황은 곧 상대방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망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간자 소송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은 자료를, 상대방을 상대로 한 기망 손해배상 청구에서도 함께 활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진행 순서도 미리 고려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상간자 소송에 대한 답변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반소나 별소로 기망 손해배상을 함께 청구할지, 상간자 소송이 마무리된 뒤 그 결과(특히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근거로 별도 소송을 낼지에 따라 입증 부담과 소송 기간이 달라집니다. 두 소송을 함께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간자 소송 답변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변호사와 함께 전체 그림을 잡아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교제만 하고 성관계는 없었다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나요?
A. 지금까지 인정된 사례들은 대부분 성관계까지 있었던 경우를 전제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인정해 왔습니다. 성관계 없이 교제만 한 경우에는 인정 폭이 좁아지고, 기망의 구체성과 정신적 고통의 정도를 별도로 더 세밀하게 따지게 됩니다.
Q. 상대방이 이혼 소송 중이었다고 하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A. 법률상 혼인관계가 아직 유지되고 있다면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결론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진행 상황을 원고에게 알렸는지, 숨겼는지에 따라 기망의 고의성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제가 먼저 혼인 여부를 물어보지 않았다면 청구 자체가 불가능한가요?
A. 스스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청구가 원천적으로 막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단순히 먼저 알리지 않은 정도였다면, 법원이 과실상계나 기망의 고의성을 판단할 때 이를 참작할 수 있습니다.
Q. 위자료 소송과 별개로 형사고소도 가능한가요?
A. 혼인빙자간음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어, 미혼 행세 자체만으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문서위조 등 별도의 범죄행위가 결부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독립적으로 형사 문제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Q. 배우자가 저에게 상간자 소송을 걸어온 경우, 저도 맞소송을 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배우자가 제기한 상간자 소송에서는 몰랐다는 사실을 항변으로 방어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속인 상대방을 상대로 기망에 의한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두 소송은 당사자와 청구원인이 달라 독립적으로 진행됩니다.
Q. 위자료 청구는 언제까지 할 수 있나요?
A.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청구할 수 없습니다. 기혼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을 정확히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맺음말
배우자가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속이고 교제한 상대방에게, 속은 사람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상간자 소송이 배우자가 제3자를 상대로 거는 소송이라면, 오늘 다룬 청구는 방향이 반대로, 속은 사람 자신이 원고가 되어 자신을 기망한 상대방 본인을 상대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를 구하는 절차입니다.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이런 기망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송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기망이 고의적이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실제로 착오에 빠져 교제·성관계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를 증거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배우자 쪽에서 먼저 상간자 소송을 걸어온 상황이라면, 방어와 청구를 함께 준비하는 편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입니다. 대화 기록이나 정황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고, 소멸시효가 지나기 전에 청구 여부를 판단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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