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대법원 2026. 7. 9. 선고 2026도2156 판결은, 피해자가 마시던 커피잔에 몰래 자신의 정액을 넣어 이를 마시게 한 행위. 언뜻 보면 '음료라는 물건에 대한 행위'처럼 보이는 사건에서, 이를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 즉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은 이른바 '기습추행'에서 요구되는 폭행의 의미와 정도, 그리고 추행의 판단기준을 다시 한 번 정리한 것으로서,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바, 아래에서 간단한 해설을 하고자 합니다.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피해자가 커피를 마시던 컵에 몰래 자신의 정액을 넣어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검사는 이 행위가 피해자의 재물을 손괴함과 동시에(재물손괴, 형법 제366조)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것(강제추행, 형법 제298조)에 해당한다고 보아 기소하였습니다.
원심의 판단 - 강제추행은 무죄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마시던 컵에 몰래 정액을 넣은 행위를 두고, 이를 피해자에 대한 '폭행 또는 협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강제추행의 점에 대해서는 이유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행위의 대상이 피해자의 '신체'가 아니라 '컵과 커피'라는 물건이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대법원의 판단 - 파기환송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 그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제추행죄의 구조와 '폭행'·'추행'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법원이 밝힌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과 '추행'의 의미
1. 강제추행죄의 유형 - 기습추행에 대하여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다음 두 가지 유형을 모두 말합니다.
먼저 상대방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로,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 강제추행죄에 해당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래 형법상 범죄에서의 '강'(강도, 강요 등), '강제'는 폭행 또는 협박에 기한 항거 곤란 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판례가 강제추행죄에서 특별히 인정하는 '기습추행'도 있습니다. 이는 폭행행위 자체가 곧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로, 대법원은 강제추행죄가 이 같은 기습추행행위도 포함함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은 별도의 선행하는 폭행행위 없이 '정액을 음료에 넣은 행위' 그 자체가 문제된 사안이므로, 두 번째 유형인 기습추행의 범위에 이 같은 행위도 포함되는지가 문제된 것입니다.
2. 기습추행에서 요구되는 '폭행'의 정도 —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기습추행에서 요구되는 폭행은 그 강도가 크지 않아도 됩니다. 대법원은 이때의 폭행이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종래 확립된 판례의 입장으로(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등 참조), 기습추행에서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는지가 관건이지 그 세기 자체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3. '폭행'의 개념 - 신체에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유형력의 행사'란 무엇일까요. 폭행죄(형법 제260조 제1항)에 관한 대법원의 일관된 법리는, 폭행이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며, 반드시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불법성은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류,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도9302 판결 등 참조).
이 법리는 이 사건 판단의 핵심입니다. 신체에 대한 직접 접촉이 없더라도, 또 외형상 물건을 매개로 한 행위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피해자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폭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추행'의 의미와 판단기준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 양태,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등 참조).
5. 이 사건에의 적용
대법원은 위 법리를 이 사건에 다음과 같이 적용하였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외형상으로는 피해자의 '물건(컵·커피)'에 대한 행위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실질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액이 섞인 커피를 마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는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나아가 정액을 피해자의 체내에 투입시키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유발할 수 있는바, 이처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다면, 이는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한 것입니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매개물을 통한 간접적 침해도 '폭행'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음료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였더라도, 그 실질이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평가된다면 강제추행죄의 폭행 요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의 '외형'이 아니라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원심이 행위의 대상을 형식적으로 '물건'으로 파악한 것과 달리, 대법원은 행위의 목적과 결과, 즉 정액이 피해자의 체내에 투입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한다는 실질에 주목하였습니다.
기습추행 법리의 적용범위를 구체화하였습니다.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인 기습추행에서, 폭행 개념이 신체 접촉이나 물리적 강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실제 사안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래 요구되던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라는 기준을 폐기하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또는 해악의 고지)'로 그 기준을 완화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문제된 기습추행 유형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이면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완화된 기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 판결은 그 확립된 기습추행 법리를 새로운 유형의 사안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강제추행죄 성립 여부는 환송 후 원심에서 다시 심리·판단됩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죄의 '폭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원심의 법리오해를 지적하였을 뿐, 유죄를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은 강제추행죄에서 '폭행'을 신체에 대한 직접적·물리적 접촉으로 좁게 이해해 온 통념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매개물이나 간접적 방법을 이용한 성적 침해 사안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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