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의사·한의사·약사 등 전문자격자의 개원 자금 대출과 관련하여,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을 피해자로 하는 대규모 사기 사건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원 컨설팅 업체나 이른바 '대출상담사'를 자처하는 브로커가 보증 신청 서류를 대신 만들어 주고, 그 과정에서 잔고증명서나 계약서가 허위로 작성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에서 브로커뿐 아니라 대출을 받은 전문직 본인도 함께 피의자로 입건된다는 점입니다. 수사기관에 출석 요구를 받고 나서야 "내가 왜 사기 피의자인가"를 묻는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유형의 사건에서 의뢰인을 변호하여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제도의 구조와 법리를 먼저 설명하고, 실제 사례를 익명화하여 소개하겠습니다.
2. 신용보증기금 예비창업보증 제도의 구조
신보는 담보능력이 미약한 기업의 채무를 보증하여 자금융통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신용보증기금법에 의하여 설립된 비영리 특수법인입니다. 신보는 창업 단계별로 구분한 맞춤형 보증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데, 그중 '예비창업보증'은 의사·한의사·약사 등 전문자격을 보유한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창업 전에 보증한도를 심사·통지하고, 통지 후 일정 기간 내에 최종 승인된 보증금액을 기준으로 신용보증서를 발급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보증한도'의 산정 방식입니다. 보증한도는 ① 자기자금 한도, ② 소요자금 한도, ③ 사업성 평가점수별 보증한도 중 가장 적은 금액으로 정해집니다. 따라서 보증금액을 늘리려면 자기자금과 소요자금을 함께 부풀려야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 두 가지 조작이 등장합니다.
- 허위 잔고증명 : 자기자금을 증명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차입한 돈을 계좌에 넣었다가 빼거나(이른바 '펀딩'), 소액 이체 내역의 숫자를 편집하여 잔고를 부풀리는 방식입니다.
- 허위 계약서 : 소요자금을 증명하기 위하여 실제 거래 의사가 없는 의료기기 매매계약서 등을 작성하는 방식입니다. 계약서를 쓴 뒤 곧바로 해지하거나, 아예 자금이 형식적으로만 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3. "빌린 돈을 다 갚았는데 왜 사기인가"
가장 흔한 오해입니다. 상담 과정에서 "실제로 개원에 다 썼고, 이자도 밀린 적 없고, 지금은 전액 상환했는데 무슨 사기냐"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법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처벌합니다. 신보를 상대로 한 보증 사기에서 취득하는 '재산상의 이익'은 대출금 자체가 아니라 신용보증금액 상당액입니다. 대법원은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서 발급이 기망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로 인하여 취득한 재산상 이익은 신용보증금액 상당액이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7도1274 판결).
나아가 대법원은 기금 관리기관을 속여 신용보증서를 발급받은 경우에는 "그 당시 신용보증서를 담보로 하여 대출받은 자금을 상환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 여부를 불문하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도6026 판결). 또한 보증제도의 목적과 대출금의 용도에 반하는 사정을 숨기고 보증을 신청한 행위 자체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3도4450 판결).
위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허위 잔고증명서나 허위 계약서가 신보에 제출되어 보증서가 발급된 이상 그 시점에 이미 사기죄는 기수에 이릅니다. 이후 대출금을 성실히 상환하였는지, 실제로 개원 자금으로 사용하였는지는 범죄 성립 여부가 아니라 양형 내지 처분 수위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상환 사실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작동하는 국면이 '무죄'가 아니라 '처분'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한편 보증금액이 커지면 적용 법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를 가중처벌하며,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보증금액 5억원은 결코 넘기 어려운 금액이 아니므로, 보증 규모에 따라 사건의 무게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4. 실제 사례 — 사기 혐의 기소유예 처분
가. 사안의 개요
의뢰인은 수련 과정과 봉직의 생활을 마친 뒤 처음으로 개원을 준비하던 의사로, 개원 관련 실무 일체를 개원 컨설팅 업체에 맡겨 두었고, 추가 자금이 필요해지자 그 업체로부터 "은행 대출상담사"라고 소개받은 사람과 연결되었습니다.
해당 브로커는 개원대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자였고, 의뢰인에게 신보 예비창업보증 신청을 대행해 주겠다며 필요 서류를 안내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 거래가 없는 3억 원대 의료기기 매매계약서가 작성되었고, 자기자금과 소요자금이 부풀려진 사업계획서가 신보에 제출되었습니다. 잔고증명과 관련하여서는, 브로커의 안내에 따라 가족 명의로 소액을 여러 차례 이체한 내역을 브로커에게 전달하였는데, 브로커는 이를 편집하여 1억 원 상당의 허위 잔고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서류를 통해 신보는 3억원의 신용보증서를 발급하였고, 의뢰인은 약 1주일 뒤 시중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았습니다. 대출금은 인테리어 잔금, 의료장비 대금, 각종 개원 비용 등 실제 개원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브로커에 대한 대규모 수사가 개시되면서, 대출을 받은 전문직 수십 명이 함께 입건되었고 의뢰인도 사기 피의자로 경찰의 출석 요구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 변호 방향과 실제 수행한 조치
이 사건은 위 3.항에서 본 법리상 혐의 자체를 다투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사안이었습니다. 이에 본 법무법인은 무죄 다툼이 아니라 처분 수위를 낮추는 데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하였습니다.
- 피의자조사 이전에 대출금 전액 상환을 완료하였습니다. 의뢰인은 보증부 대출금 3억원 전액을 변제하고 대출약정 자체를 해지하였으며, 그 영수증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조치는 경찰의 피의자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조사 자리에서 "갚을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이미 완제 증빙을 손에 들고 조사에 임하는 것은 수사기관이 받는 인상이 전혀 다릅니다.
- 상환에서 멈추지 않고 신용보증관계 자체를 종료시켰습니다. 대출금을 갚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신보의 보증채무 부담 위험이 서류상 완전히 소멸하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검찰 단계에서 신용보증 해지 증빙서를 별도로 발급받아 제출하여, 신보가 부담하던 위험이 남김없이 소멸하였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이 처분에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됩니다.
- 가담의 경위와 정도를 구체적으로 소명하였습니다. 변호인의견서를 통해, 의뢰인이 브로커가 주도한 절차에 소극적으로 편승한 지위에 있었을 뿐 기능적 행위지배를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없다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공동정범의 성립요건과 종범과의 구별에 관하여 대법원 1996. 1. 26. 선고 95도2461 판결 참조). 특히 허위 잔고증명서는 의뢰인이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브로커가 단독으로 작출한 것이고, 일부 계약서에는 브로커가 의뢰인의 서명을 임의로 기재하기까지 하였다는 점을 자료로 뒷받침하였습니다.
- 대출금 사용처 전부를 증빙과 함께 정리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계좌 거래내역을 항목별로 대조하여 대출금이 인테리어, 의료장비, 부대설비 등 실제 개원 용도로 사용되었고 타 용처로 유출된 부분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다. 처분 결과
검찰은 의뢰인에 대하여 기소를 유예한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경찰 출석 요구를 받은 시점부터 최종 처분까지 약 1년 3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검사가 밝힌 이유입니다. 결정서는 피의사실 자체는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① 피의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② 피의자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보증부 대출금을 전액 상환하여 신용보증기금의 채무부담 위험을 소멸시킨 점, ③ 형사처벌 전력에 관한 사정 등을 참작한다고 적시하였습니다. 특히 ②의 표현이 중요한데 검사는 '대출금을 갚았다'가 아니라 '신보의 채무부담 위험을 소멸시켰다'라고 기재하였습니다. 저희가 상환 증빙에 더하여 신용보증 해지 증빙까지 확보하여 제출한 취지가 그대로 처분 이유에 반영된 것입니다.
5. 마치며
기소유예는 검사가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의 조건, 즉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처분입니다(형사소송법 제247조).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에서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사실상 최선의 결과이며, 전문직 면허와 직결된 사건에서 그 의미는 각별합니다.
다만 기소유예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하는 사정을 수사기관이 인정할 수 있는 형태의 증빙으로, 적절한 시점에 만들어 제출하여야 비로소 처분에 반영됩니다. 이 사건에서 검사가 처분 이유에 명시한 문구가 저희가 제출한 자료의 취지와 정확히 일치하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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